하루치의 따뜻함 19
아침 출근길, 나는 아파트를 청소하시는 아주머니를 자주 만난다.
오랜 시간 함께한 분이라 서로 마주칠 때면 자연스레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안녕하세요? 요즘 날씨가 정말 무더운데, 힘드시죠?”
“아니에요. 할 만해요.”
그분의 말투에선 고된 기색이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즐거움과 행복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어떻게 고되고 힘든 일을 하시면서도
저토록 밝은 얼굴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을까?
땀방울이 이마를 타고 흘러내려 마치 땅속으로 스며드는 흙빛 물방울처럼 발끝까지 닿지만, 그분의 얼굴에는 여전히 햇살 같은 미소가 잔잔히 피어 있다. 문득 그런 생각이 스친다. 행복은 먼 바다 건너의 보물이 아니라, 내 손 닿는 자리, 숨 쉬는 공기 속에 이미 머물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행복(幸福)의 사전적 의미는 '외부 조건이나 내면 상태가 긍정적이고 만족스러워 기쁨과 평안함이 함께하는 심리적 상태'를 뜻한다. 행복의 정의는 짧지만, 그 울림은 사람마다 다르다. 예전에는 부와 명예, 권력이 마치 높은 산의 정상처럼 보였고, 그곳에 오를 때 행복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행복의 기준은 완전히 달라졌다. 과거의 행복이 다른 사람의 잣대 위에 세워졌다면, 오늘의 행복은 나만의 체온으로 측정된다.
여러분에게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은 무엇인가요?
어느 날 수업 시간에 아이들에게 이렇게 물어보았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가족, 친구, 반려견이라고 답했지만, 한 아이의 대답이 유독 인상 깊었다.
“전 금요일이요.”
가족도 친구도 아닌 ‘금요일’이라는 대답에 의아해 이유를 물었더니, 그 아이는 주중 내내 학원을 네 곳이나 다닌다고 했다. 그래서 모든 일정이 끝나고 맞이하는 금요일 저녁이 그렇게 행복하다고 말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은, 그저 마음이 놓이는 시간. 그 아이의 금요일은 ‘해방’이자 곧 ‘쉼’이었다.
비슷한 질문을 학교 교직원 대상 컨설팅 자리에서도 던진 적이 있다. 선생님들 대부분은 아이들과 비슷한 대답을 했지만, 한 선생님의 대답은 또다시 나를 멈추게 했다.
“저는 프로야구요.”
직관도 좋지만, 아무도 없는 거실에 앉아 경기를 보는 그 시간이 본인에겐 최고의 행복이란다. 그리고 월요일이 싫다고 했다. 그날은 야구가 없기 때문이다.
이 두 이야기를 통해 다시 한번 느꼈다. 행복의 대상은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 누군가에겐 가족이, 또 누군가에겐 금요일 저녁이, 야구 한 경기나 소파 위의 고요한 밤이 전부일 수 있다는 것. 행복은 저절로 오지 않는다.
어느 행복학 교수는 행복을 ‘에어컨’에 비유했다. 여름에 에어컨을 켜면 바람이 시원해지지만, 겨울에 에어컨을 끈다고 해서 방이 저절로 따뜻해지는 건 아니다. 겨울에는 반드시 히터를 켜야 한다. 마찬가지로, 근심이 사라진다고 해서 행복이 저절로 피어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스스로 기쁨의 불씨를 켜고, 즐거움의 바람을 불어넣어야 한다.
얼마 전 읽은 소설 『꾸뻬 씨의 행복 여행』속 주인공인 꾸뻬 씨는 세상 어느 곳보다 풍요로운, 정신과 의사가 가장 많은 파리 중심가 한복판에 진료실을 열고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자신 역시 진정한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진료실 문을 닫은 뒤 전 세계로 여행을 떠난다. 그 책은 말한다. 모든 여행의 궁극적인 목적지는 ‘행복’이라고. 책 속에 많은 행복의 사례가 등장하는데, 그중 눈길을 끈 것은 11번째 배움이었다.
“왜 이곳 사람들은 도시에 사는 사람들보다 더 행복해 보이는 걸까요?”
“시골에서는 채소밭과 닭 몇 마리만 있어도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거든요. 그리고 가족과 함께 살며 서로를 지탱해 주니까요.”
결국, 행복은 ‘집과 채소밭을 갖는 것’이라는 말이었다. 행복은 이미 우리 곁에 흩어져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가족과 함께하는 저녁 식탁 위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물, 좋아하는 일에 몰입해 잠시 시간을 잊는 순간 속에 숨어 있다. 직장에서도 다르지 않다. 행복은 먼 곳에 있지 않다. 나를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미소 속에, 땀방울에 젖은 평안함 속에 있다. 지금 이 순간, 가까이에 있는 작은 기쁨을 알아차리고 감사할 때, 우리는 이미 행복의 한가운데 서 있는 것이다.
행복은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곁에 머물던 것을 비로소 알아보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