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가 알려주는 교직생활 비법서 27
요즘처럼 햇볕이 뜨겁게 내리쬐는 계절이면, 아이들과의 관계도 조금은 따뜻해지고 가까워질 줄 알았어요. 하지만 이상하죠. 바깥 날씨와는 달리, 제 교실 안의 공기는 자꾸만 차갑게만 느껴집니다. 아이들 사이를 걷고 있는데도, 어쩐지 혼자 바람막이 속에 갇힌 사람처럼 느껴질 때가 많아요.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은 분명히 있는데, 그 마음이 닿지 않는 느낌이랄까요. 학생들의 반응이 무미건조하거나, 수업 시간에 집중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 ‘혹시 내가 싫은 건 아닐까’, ‘내가 교사로서 자질이 부족한 걸까’ 하는 생각이 자꾸만 스며듭니다. 처음엔 ‘부족한 게 당연하지’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려 했어요. 하지만 반복되는 작은 실패들에 점점 지치고, 어느 순간부터는 수업을 준비하는 손이 망설여지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선배님도 이런 순간이 있으셨나요? 아이들과 마음이 멀게 느껴질 때, 수업이 엉망이 된 날, 혹은 스스로가 너무 작게 느껴지는 날이요. 제가 진짜 궁금한 건, 그럴 때마다 ‘다시 내일 교실에 서야지’라는 마음을 어떻게 만들 수 있었는지입니다. 그 용기와 꾸준함의 근원이 무엇인지, 그걸 잃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선배님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지금 저는 ‘잘하고 싶다’는 마음보다 ‘계속해도 괜찮은 걸까’ 하는 마음이 더 크게 느껴지거든요. 이 마음을 꺼내놓을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조금 위로가 됩니다. 언젠가 저도 후배에게 조용히 말해줄 수 있는 날이 오겠지요. 그때까지, 오늘 하루를 어떻게든 건너보겠습니다.
편지를 읽으며 오래전 제 모습이 떠올랐어요. 처음 교실 앞에 섰던 날, 설렘보다는 긴장이 앞섰고, 아이들의 작은 말 한마디에도 흔들렸던 그때가요.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아직 어색하고, 내가 이 교실을 책임져도 되는 걸까 매일 되묻던 시절이었어요. 지금 당신이 느끼는 마음, 저도 정말 잘 알아요. 그 시절의 저에게 누군가 이렇게 말해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어요.
“완벽하려 애쓰지 않아도 돼. 그 불완전함도 충분히 의미 있어.”
그래서 지금의 저는 당신에게 그 말을 꼭 전하고 싶습니다. 아이들과 가까워지고 싶어 하는 그 마음만으로도 이미 교사로서의 시작은 충분히 단단합니다. 많은 후배 선생님들이 수업을 잘하고 싶다고 말합니다. 저도 그랬어요. 그런데 수업이란 게 꼭 기술로만 되는 건 아니더라고요. 아이들의 눈을 마주치고, 이름을 불러주고, 짧게라도 안부를 묻는 그 순간들이 쌓이면서 교실의 온도는 아주 서서히 변해갑니다. 그렇게 관계가 만들어지고, 아이들이 마음을 열 준비가 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되죠. 수업이 마음처럼 되지 않는 날도 당연히 있어요. 집중하지 않는 아이들, 흐트러진 분위기, 예상치 못한 질문들 앞에서 순간적으로 당황할 때도 여전히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날도 무의미하지 않다는 걸 시간이 지나며 알게 되었어요. 되돌아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계속 배우고 있는 거니까요.
저는 수업이 끝나면 자주 제 마음을 메모합니다.
잘된 점보다는 어색했던 순간, 멈칫했던 말투, 아이들의 표정이 더 오래 기억에 남아요. 그걸 짧게라도 기록해두면, 나중에 나만의 작은 성장 일지가 되어 있어요. 매일의 성찰이 쌓이면, 그것만큼 값진 교재도 없더라고요.
그리고 하나 더, 아이들과의 관계를 생각할 때 저는 ‘이름’을 가장 먼저 떠올려요. 아이들의 이름을 먼저 외우는 것, 단순한 것 같아도 그 아이의 존재를 인정하고 존중한다는 강력한 신호가 됩니다. “얘들아 조용히 해”가 아니라 “지훈아, 잠깐만 기다려줄래?”라고 말하는 순간, 교실은 조금 달라집니다.
수업 자료도 최대한 간결하고 명확하게 준비하려고 노력했어요. 이미지 중심으로, 판서는 키워드만. 지나치게 많은 정보보다, 하나라도 명확하게 전달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었거든요. 또, 질문을 던졌다면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반드시 줬어요. 말이 늦게 나오는 순간이 오히려 더 깊은 생각의 시작이라는 걸 자주 느낍니다.
교직은 생각보다 외로운 길입니다. 저도 복도에서 혼자 숨을 고르던 날이 많았어요. 그럴수록 저는 ‘관계는 인사에서 시작된다’는 걸 잊지 않으려 했어요. 짧은 눈인사, 커피 한 잔, 복도에서 마주친 동료에게 “오늘 좀 힘들지?”라고 건네는 말. 그런 것들이 쌓여서 제 교사 생활을 버티게 해줬습니다.
행정 업무가 버겁게 느껴질 땐, 학기 초에 파일 폴더를 나누는 습관부터 시작했어요. [학급운영], [공문], [가정통신문], [회의록]처럼 나누고 저장하는 습관만으로도 마음의 정리가 되더라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모를 땐 모른다고 말하는 용기, 그것이 제일 필요했어요. 선배든 후배든, 우리는 모두 누군가에게 처음이니까요. 혼자서 모든 걸 해내려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주저 없이 물을 수 있는 사람이 결국 더 빠르게 성장하니까요.
지금 선생님이 충분히 잘하고 있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어요. 아이들과 더 가까워지고 싶어서 고민하고, 수업을 더 잘하고 싶어서 스스로를 돌아보는 그 마음 자체가 교사로서 가장 중요한 자질입니다. 그 따뜻한 마음만은 잃지 마세요. 언젠가 당신도 지금의 고민을 지나온 사람으로서, 또 다른 누군가에게 이렇게 말하게 될 거예요.
그때 참 힘들었는데, 그래도 버텨보길 잘했어.
그 말을 언젠가 스스로에게 해줄 수 있을 때까지, 너무 멀리 가지 말고, 오늘 하루를 한 걸음씩만 걸어가도 괜찮아요. 저는 당신이 이 길을 잘 걷고 있다는 걸 알고 있어요. 그리고, 참 다정하게 응원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