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분은 왜 나의 롤모델이 되었을까?

선배가 알려주는 교직생활 비법서 29

by 전태영


누군가의 뒷 모습이 나에게 방향이 되어줄 때
안녕하세요. 저는 이제 막 교단에 선 초등학교 1년 차 교사입니다. 첫 발령을 받고 한 달, 두 달. 어느새 한 학기를 채우고 나니 몸도 마음도 조금은 지친 느낌이 들어 이렇게 글을 씁니다. 처음엔 아이들만 잘 가르치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교무실에서의 관계, 학교 행정, 회의, 일정 조율... 가르치는 일 외에 챙겨야 할 것들이 생각보다 훨씬 많더라고요. 무엇보다 어려운 건, 제가 어떤 ‘태도’로 이 교직을 오래 걸어가야 할지를 모르겠다는 점입니다.
학교에선 교장선생님, 교감선생님, 선배 선생님들께 보고 드릴 일도 많고, 때로는 도움을 구해야 할 일도 있지만, 괜히 위축되기도 하고 조심스럽기도 합니다. 그분들과 나누는 짧은 대화 한마디에 "내가 뭔가 잘못한 건가?" "괜히 불편하게 느끼셨나?" 스스로를 자꾸 점검하게 되고, 그런 마음이 누적되다 보니 ‘나는 아직 많이 부족한 교사’라는 생각에 스스로 주눅이 드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그럴 때마다 문득, 나도 따뜻한 롤모델을 만나고 싶다는 마음이 들곤 합니다. 조언도 해주고, 실수했을 때엔 나무라기보다 그 실수를 배움으로 바꿔줄 수 있는 그런 선배요. 그런 분이 한 분이라도 곁에 있다면 지금처럼 매일매일이 이렇게 막막하진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선배님, 혹시 저처럼 아직 중심을 못 잡고 흔들리는 후배에게 당신의 교직 첫 시절과, 그때 만난 좋은 어른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그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저는 오늘 하루를 조금 더 따뜻하게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의 이야기를 천천히, 몇 번이고 읽었습니다. 조심스럽게 꺼내놓은 그 마음이 오히려 더 깊게 다가와, 문장 하나하나에 오래 머물게 되더군요. 저 역시 교직에 첫발을 디딘 1987년 3월의 봄, 매일이 낯설고 조심스러웠습니다. 처음 교단에 서는 그 순간의 설렘과 두려움, 아마 선생님도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계시겠지요. 38년 전의 제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초임 시절엔 매일이 도전이었고, 그 안엔 걱정도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그 시간을 지나올 수 있었던 건, 제 곁에 한 사람의 진짜 어른이 계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교육대학교를 졸업하고 첫 발령을 받은 곳은 경북 예천군 풍양초등학교였습니다. 전형적인 농촌 마을의 큰 학교였고, 당시에는 18학급에 720여 명의 학생이 있었지요. 저는 교장선생님이 생활하시던 사택 옆방, 5평 남짓한 셋방살이로 교직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 시절, 제게 가장 큰 영향을 준 분은 바로 제 첫 교장선생님이셨습니다. 교장선생님은 내유외강(內柔外剛), 즉 속은 따뜻하고 부드러우면서도 겉으로는 강단 있는 태도를 지닌 분이셨습니다. 처음엔 솔직히 무서웠습니다. ‘교장실’이라는 문 앞에 서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얼어붙곤 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그 생각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지금도 저는 그분을 제 교직 인생의 롤모델로 떠올립니다.


그분은 정말 따뜻한 분이셨습니다


마치 아버지처럼, 저를 자식처럼 대해주셨습니다. “전 선생님~” 하고 불러주시던 그 다정한 호칭 하나가, 초임 교사였던 제게 얼마나 큰 위안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눈이 소복이 내리던 어느 겨울 새벽, 사모님께서 부침개와 된장을 소반에 담아 제게 가져다주셨던 일이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그 소반 위 보자기에는 눈이 수북이 쌓여 있었고, 그 안의 따뜻한 음식과 정성은 제 마음 깊숙이 스며들었습니다.


그분은 제가 힘든 상황에 놓였을 때 늘 옆에서 조용히 지켜봐 주셨고,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잘했을 때는 아낌없는 칭찬을, 실수가 있었을 땐 단호하되 따뜻한 질책을 해주셨습니다. 당시엔 조금 당황스러울 때도 있었지만, 지나고 나니 그 말씀이 제게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분의 말씀은 교사로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데 꼭 필요한 배움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제가 지금까지도 그분을 깊이 존경하는 이유는 모든 행동의 밑바탕에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가 단지 원칙을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을 향한 애정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시간이 흐를수록 더 선명하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도 그 교장선생님을 저의 교육 인생의 롤모델로 삼고 있습니다. 단단한 원칙과 따뜻한 인품을 함께 지닌 ‘내유외강’의 진정한 교육자. 그런 분을 교직 첫해에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었다는 사실은 제 인생에 있어 큰 축복이었습니다. 그분은 저에게 단순히 관리자나 선배가 아닌, 교사로서의 방향을 제시해준 사람이었습니다. 정년퇴직을 하신 이후에도 가까운 거리에 계셔서, 30년 넘는 시간 동안 한 해도 빠짐없이 찾아뵙고 함께 식사를 하며 지냈습니다. 3년 전, 그분이 세상을 떠나신 후에도 저는 여전히 그분의 가르침을 되새기며 교단에 서고 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그분과의 인연이 없었다면 제가 지금처럼 아이들을 사랑하고, 그들의 성장을 진심으로 응원할 수 있는 교사가 될 수 있었을까 싶습니다.


저는 그분을 통해 교사가 단순히 수업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을 키우는 직업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제 교육 철학인 ‘일보다 사람 중심’이라는 생각도 바로 그때 시작되었습니다. 교장선생님은 그저 상급자나 책임자에 머물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리더로서의 진정한 자세’를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온화한 미소와 낮은 목소리, 그리고 그 안에 담긴 강한 신념. 저는 그 모습을 자연스럽게 닮고 싶어졌습니다.

그분이 제게 보여준 리더십은 제가 교사로, 또 한 사람의 어른으로 성장하는 데 있어 결정적인 기준이 되어주었습니다. 그래서 당신에게도 전하고 싶습니다. 지금 이 시기, 낯설고 흔들리는 시간이 결코 헛되지 않다는 걸요. 언젠가 당신도 누군가에게 좋은 교사, 좋은 어른으로 기억될 거라는 걸요.

KakaoTalk_Photo_2025-07-10-12-17-04 004.jpeg

제가 존경한 교장선생님이 제게 남겨주신 단 하나의 가르침이 있다면, 그것은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었습니다. 그 마음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교직에서 지식을 전하는 사람을 넘어, 사람을 남기는 교사가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혹시 당신 곁에도 그런 사람이 있지 않나요? 아직 가까이 다가가지 못해 몰랐던, 조용히 당신을 지켜보고 있는 어른 말입니다. 때로는 우리가 흔들릴 때 가장 필요한 건 정답이 아니라, ‘그 사람도 그렇게 걸어왔구나’ 하고 느낄 수 있는 한 사람의 뒷모습일지도 모릅니다.


좋은 어른을 만났다는 건, 오래도록 위로가 된다는 것


어쩌면 당신의 교무실 한편에도, 지금 그 길을 먼저 걸어가고 있는 ‘롤모델’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 존재를 천천히 발견해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당신의 첫 시절이 언젠가 누군가의 시작에 다정한 길이 되어주길 바라며, 이 마음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