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지희 Nov 04. 2024

사이좋게 지내자

무엇이든 꾸준한 게 좋다. 한 번 쉬면, 다음이 두려워져서 또다시 쉬게 되고, 곧 쉬는 게 익숙해져서 다시 하려 하면 큰 용기가 필요하게 된다. 나에겐 글쓰기가 그렇고, 운동이 그렇고, 육아 역시 마찬가지이다. 육아에 있어 내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바로 '기본에 충실하기'이다. 아이가 클수록 이전엔 보지 못하던 모습을 보게 된다. 때론 감격스럽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고, 또 적잖이 당황할 때도 있지만 그렇게 변화하는 상황에만 집중하다 보면 기본을 놓칠 때가 있다. 숨죽여 아이를 기다려주는 것, 늘 변함없는 눈빛으로 아이를 바라봐 주는 것, 요동치 않고 사랑한다는 믿음을 주는 것. 이러한 것들 말이다. 아이의 식판도 마찬가지이다. 먹을 수 있는 게 다양해질수록 이것저것 맛보게 하고 싶지만, 이전에 해주던 건강한 찬들을 주지 않게 되면 아이는 섬섬한 맛들을 잊고 잘 먹었던 것도 먹지 않은 채 간이 센 새로운 음식들을 찾는다.


31개월의 우리 포테이토 칩은 여전히 건강하게 잘 크고 있다. 말도 잘하고 키도 쑥 크고, 무엇보다 나를 헤아리는 그 마음들은 겹겹이 풍성하게 쌓여가기에 나는 그 소중한 마음들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자꾸 나의 시선은 아이에게 머무르곤 한다. 뭐든지 엄마와 함께 하고 싶어 하는 그 마음을 지켜주려 나도 최선을 다하지만, 뒤돌아서면 혼자 조용한 방안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드는 나를 보며 아이에게 미안해지곤 한다. 10년, 20년이 지나도 언제나, 늘, 나만을 찾지는 않을 너이기에, 나는 너와의 이 시간에 더 집중하기로 결단했다.


이번 한 해도 저물어간다. 나는 이번 가을 학기나 내년 봄에 입학할 외국 대학원을 준비했었다. 양가 부모님과 남편은 나를 적극적으로 지지해 주었다. 원서 준비를 위한 진득한 시간들을 낼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가족들의 희생과 헌신 덕분에 나는 준비를 시작할 수 있었다. 에세이와 추천서, 기타 서류들을 준비했다. 그 과정에서 우리 아기가 많이 아팠다. 그때 아이가 할 줄 아는 말은 '엄마'뿐이었다. 봄이 끝나갈 무렵, 많이 아팠던 나의 포테이토 칩은 입원을 했다. '엄마'만을 외치며 한 시간을 발버둥을 치며 울던 너의 모습에 나는 영어 공부를 멈추었다. 가을 학기에 입학하는 것을 뒤로 미뤘다.


여름이 시작되고 아이와 나는 다시 부모님 댁으로 향했다. 또 이른 아침 집을 나섰다. '마지막이다' 생각하고 영어 공부를 했다. 매일 아침부터 오후 한두 시까지 쉬지 않고 공부했다. 그렇게 매일 공부를 하고 아이에게 달려갔다. 열심히 아이와 시간을 보냈다. 잘하면 내년 봄에 아이와 둘이 미국으로 떠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눈앞에 현실로 와닿았다. 몇 발짝만 걸으면, 드디어 십 년 동안 꿈꿨던 미국 유학행을 갈 수 있으리라하는 설렘의 눈물이 앞을 가렸다. '조금만 힘내자!'라고 이 작은 아이에게 늘 토닥였다. 어느새 말이 늘어 '미국!'을 외치는 너의 외침을 나는 응원으로 받아들였다. 영어시험을 앞둔 5일 전, 스터디카페에서 공부를 하는데 머리가 많이 아프기 시작했다. 두통은 내게 익숙하지만, 이렇게 아픈 적은 없었다. 눈앞에 놓인 종이 위에 글씨가 갑자기 보이질 않았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집으로 돌아갔다. 약을 먹고 잠을 자고 일어났는데도 아팠다.


'뭐가 잘못된 거지? 아니, 잘못되면 어떻게 하지?' 시험 보러 가기까지 나는 책상에 앉지 않았다. 계속 아기와 쉬면서 머리를 식혔다. 알 수 없는 불안함에 눈물이 흘렀다. 공부를 하면서도 육아를 소홀히 하지 않으려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기의 식판을 보니 이전과 같은 정성이 보이지 않아 눈물이 흘렀다. 쌓여있는 아기의 빨랫감에 또 한 번 내 마음도 헝클어져있음이 보였다. 내가 읽어주지 않으면 읽지 못하는 책들이 며칠간 그대로인 것과 그 옆에 열심히 풀어 쌓여있는 문제집을 보며 잘 포장되어 있었던 나의 욕심들이 눈에 밟혔다.


'이것이 맞을까?' 미국에 가면, 남편이 훗날 늦게 와 우리 둘만 있다 하더라도 나는 너에게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라 확신했다. 그런데 너의 일상에 관하여는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매일의 행복과 그 시간들에 대하여는 아무런 계획을 하지 않았다. 내가 하고 싶은 연구에 관해서만 미래를 그렸다. 시험을 보기 위해 처음으로 2박 3일 아이를 엄마께 맡기고 올라왔다. 올라오는 버스 안에서 나는 내내 생각했다. '이게 맞니?'


시험은 잘 보았다. 학교에서 요구하는 점수는 통과했으니 다행이었다. 아기에게 돌아오는 길에 발걸음은 가벼웠지만 마음이 이상하리만큼 무거웠다. 오랜만에 아기를 보았다. 통화할 때 아기가 너무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 말라는 엄마의 말을 들었었다. 아기를 보았다. 그러나 아기는 나에게 소리쳤다. "엄마는 엄마 집 가서 공부해!!!!!" "엄마는 공부하러 가!!!!" "엄마는.. 엄마 공부해!!!!!" 오열을 하며 나를 때리는 아기를 마주했다.


'그래... 이건 맞지 않지...'


미안해, 미안해. 엄마가 미안해. 아기를 꽉 껴안아주었다. 행복하지 않았다. 더 이상 너의 배웅을 받으며 공부하러 나가고 싶지가 않아 졌다. 방문을 걸어 잠그고 공부하는 일, 문을 두드려도 공부하니 기다리라며 너의 마음을 외면하는 그 순간들에 나도 지쳤고 아이도 지쳤음을 나는 알았다. 나는 결국 모든 준비를 마친 채 원서를 접수하지 못했다. 아니, 않았다. 깜깜해졌다. 고요하리만큼 적막한 가운데 문이 닫힌듯했다. 최대한 덤덤히 그렇게 미래에 관하여 꿈꾸고 준비하던 모든 시간들과 감정들 앞에 나는 홀로 조용히 작별을 고했다.


나에겐 가족이 있다. 남편과 아들이 있다. 이들은 어떠한 이유가 되진 않는다. 가족 때문에 나의 것을 포기하는 것은 적어도 내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다만, 나는 남편과 아들과 함께 하기 위해 최상의 것을 포기하고 최선의 것을 찾으려 한다. 너도 만족하고, 나도 만족하는 하루를 보내기 위해. 내게 있어 눈앞에 보이는 것보다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더 중요함을 다시 한번 깨달으며 길을 찾아보려 한다.


해가 지고 밤이 오니 더욱 공허한 그 자리가 슬프게 느껴지지만 눈앞에 아름다운 나의 아기와 우리가 함께하는 지금의 소중한 것들이 있으니 나는 매일 주어지는 찰나의 기쁨을 맛보는 것에 감사하려 한다. 다시 정성스럽게 식판 한 상을 차려주고, 아기의 옷가지들을 정리하고, 들고 오는 모든 책들을 소리 내어 읽어준다. '조금만 힘내자'라고 말하던 내게, 포테이토 칩은 나를 꽉 안아주며 또렷하게 말한다.

"엄마, 사이좋게 지내자!"


'그래, 사이좋게 지내자, 우리.'


매거진의 이전글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음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