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의 제주 한림항
최저 시급이 만원을 넘어섰다는 뉴스가 나온다.
이런저런 원자재 값도 올랐는데 인건비까지 올라서 힘들다고 난리들이다. 연봉으로 수십억을 받는 회장님, 사장님들이 곧 망하게 생겼다며 죽는 소리를 하고, 한 달에 천만 원 이상 국민의 세금으로 세비를 받는 국회의원 나리들은 나라가 망한다며 뜬금 애국심을 발휘한다.
최저 시급이라는 말부터 맘에 들지 않는다. 최저보다는 최소라는 말을 써야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최소한 이만큼은 주어야 한다고 정한 것인데 딱 그만큼만준다. 결국 최저의 임금을 받는 비참한 존재로 낙인을 받는 느낌이 든다.
인건비란 무엇일까?
인건비는 시간에 대한 교환 가치이다. 내 시간을 돈을 받고 파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시간을 돈을 주고 사는 것이다. 그래서 시급이다.
며칠 전 십 년 가까이 출근했던 삼성역과 역삼역 주변의 테헤란로를 15년쯤 만에 걸어보았다. 그곳은 여전히 화려하고 웅장했다. 거리와 식당, 술집에 젊은이들이 넘쳐났다. 그곳을 벗어나는 저녁의 지하철은 발 디딜 틈도 없었다.
요즘 가장 잘 나간다는 판교에서 일하는 후배와 저녁을 먹기 위해 지하철 판교역 앞에서 기다리면서는 1.4 후퇴 때의 중공군들이 저랬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밀려드는 퇴근길 젊은이들을 보았다.
나는 2-30대를 테헤란로에서 보냈다. 가장 화려한 곳에서 가장 싼 값으로 내 청춘을 팔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판교의 그 물결 속에서도 40대와 50대를 보기는 쉽지 않다.
어쩌면 그곳의 화려함은 싱싱하지만 상대적으로 저렴한 젊음의 피로 유지되는 것인가하는 결론에 이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나마 값을 잘 쳐주는 곳일 수도 있다.
웅장하고 큰 빌딩도, 화려한 편의시설 어느 것 하나 내 것은, 그들의 것은 없다. 다만 그들이 누리는 동안은 그들 것이라는 착각 속에 빠져 있을 뿐이다. 라스베가스의 화려한 불빛과 다르지 않다.
제주에서 살 때 앞집 형님에게 심심하고 지루하다 말하니까 고액 알바를 해 볼 생각이 있냐고 물었다.
무슨 일이냐 물었더니 한림항에 들어온 조기잡이 배의 그물에서 고기를 떼는 일이라 했다. 큰 기술은 필요 없고 옆에 사람들과 합을 맞추어 그물을 털면 되고 시급이 2만 5천원~3만원쯤 된다고 했던 듯하다. 혹 할만한 시급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치명적인 조건이 있었다.
배 한 척마다 7~10명이 배정되는데 한번 시작하면 배에 실린 그물들을 모조리 다 털을 때까지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배 한대당 평균적으로 20~30시간 정도라는 것이고 더 걸리는 경우도 허다하다는 것이다. 30시간이라면 아침 9시에 시작했을 경우 다음 날 오후 3시까지이다. 물고기가 많이 잡힌 배의 경우는 2-3일도 예사라고 했다. 물고기가 상하기 전에 빨리 떼야하기 때문에 식사나 참도 급히 먹어야 하고 화장실로 자리를 비우면 옆에 사람이 힘들어지기 때문에 게으름 피울 새도 없는 극한의 체험 삶의 현장인 것이다.
"어떤 할망은 60시간 했단다. 이틀에 180만원 번 거지. 사람들이 돈독이 올라서 70-80시간도 한단다. "
형님이 한마디 보탰다.
"근데 지난주에는 그물 잡은 채로 잠든 줄 알았는데 둘인가 죽었다던데. 어때? 한 번 해봐~ 심심하고 지루하다메? "
고액 알바의 비밀은 그들의 목숨을 담보로, 목숨을 갈아 넣는 것이다.
그런데 한림항의 저들처럼, 대부분의 젊음들이 자신을 갈아 넣어야 만 겨우 일상을 버틸 수 있는 현실에 있는 듯 보인다.
외국의 어느 유튜버가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묻는다.
"지금 10억을 준다면 받으시겠습니까?"
"당연하죠"
"지금 10억을 주는 조건으로 내일 아침에 눈을 못 뜰 수 있다고 해도 받으시겠습니까?"
"에? 아니요!"
유튜버는 당신의 내일은 10억 이상의 가치가 있다. 그러니 비싼 하루를 잘 즐기라고 한다. 소중한 하루를 일깨워주려는 의도를 가지고 제작한 듯 하다.
그 유튜버를 찾아가서 그냥 하루에 십만 원씩, 아니면 한 달에 300만 원씩 십억을 나누어서 줄 수는 없냐고 물어보고 싶다. 따져보니 약 27년쯤이니까 그만한 조건이라면 꽤 받아들일 만하다는 기분이 든다.
De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