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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달의 목련

올해도 어김없이 핍니다

by 숲속의조르바



몇 해 살았던 아파트 단지에는 꽤 많은 목련이 심겨 있었다.


겨울 끝, 한기가 채 다 가시기도 전에 목련들은 잎보다도 먼저 꽃망울들을 터트려댔다.


양지바른 곳에 자리 잡은 키 큰 목련들은 풍성한 가지 끝마다 수많은 꽃망울들을 한껏 탐스럽고 우아하게 피워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집으로 드나드는 현관 옆의 목련은 다른 나무들에 비해 키도 많이 작고 가지도 엉성했다.



응달에 심긴 탓이다.



양지의 나무들이 흰 불꽃을 한껏 뽐내고 널브러져 스러져 갈 때까지도 응달의 목련은 작은 봉우리조차 게워내지 못하고 있었다. 주민들이 탐스럽게 핀 꽃들을 사진 찍을 때, 나는 응달의 목련을 더 궁금해하고 응원했다.


양지 목련들의 화려한 잔치가 모두 끝난 한참 후에서야 응달의 목련은 기어이 작지만 야무진 꽃을 피워 냈다.


현관을 드나들 때 기특해하며 쓱 바라보았다. 체감하기로, 분명 그 꽃들은 양지의 것들보다 훨씬 더 오래갔던 것 같다.


새 봄에도 응달의 목련은 분명 고군분투할 것이다.



응달에 스스로 심긴 존재는 없다. 응달의 모두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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