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 만드는 자들의 묘비명

책을 쓰려는 이유

by 숲속의조르바



2023년 튀르키에 일주를 계획하고 여행 출발을 고대하고 있었는데, 출발하기 사흘전 쯤인가 커다란 지진이 나버렸다. 나라 전체가 큰 충격에 빠진 상황에서 과연 여행을 하는 것이 맞는가하는 고민에 빠졌다. 비행기표를 바꾸기도 힘든 시점이라 일단 이스탄불로 가서 분위기를 보고 결정하기로하곤 이스탄불로 향했다.지진이 난지 얼마 안되는 상황이라 식당이건 호텔이건 구조 상황을 알리는 생방송이 밤낮으로 티비를 채웠다. 이 상황에서 이 나라를 여행을 하는 것은 아니다 싶어서 가까운 그리스로 향했다.


그리스로 향한 이유는 그리스인 조르바를 쓴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을 언젠가는 직접 보고싶다는 소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었으나 비수기인 겨울에 그의 묘가 있는 미코노스섬으로 가는 동선이 마뜩치않아 그 소망은 다음으로 미루게 되었다.



Δεν ελπίζω τίποτε.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Δεν φοβʊμαι τίποτε.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Είμαι λεύτερος.
나는 자유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이다. 내가 죽더라도 당연히 묘비는 세워지지 않을 것이 분명함에도 그의 묘비명을 소환하는 명백한 이유가 있다.







오래전 어느 날, 도서관에서 책의 제목과 저자들의 이름을 훑어보다가 문득, 책의 제목은 묘비명, 저자의 이름은 무덤의 주인을 알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가마다 반듯하고 꼿꼿이 서 있는 책들이 작가들이 직접 쓴 묘비명이 새겨진 일종의 묘비처럼 보였다.

무엇인가를 만들는 자들, 작가들이 분투하는 나름의 소명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스스로 해 보았다.



엉성한 생각의 부스러기들을 모아서 나름의 내 묘비를 스스로 세우고 싶다는 마음으로 막연히 책을 내고 싶었는지 모른다. 엉겁결에 출판이 되었던 책이 부끄러워 어찌보면 다시 무른 손으로 망치과 정을 들었는지도 모른다. 보잘것없는 한 권의 책이 어느 도서관의 서가의 틈에, 나를 아는 누군가의 책장 한 구석에서 조용히 내 묘비가 되어줄 수 있기를 바래 본다.






20여년 넘게 어질러두었던 사진들을 갈무리하며 90여 꼭지의 잡문을 브런치에 끄적여보았습니다. 부족한 글에 꾸준하게 기웃거려주신 몇분들께 감사를 전합니다.


모든 작가님들이 근사한, 덤덤한, 먹먹한, 흥겨운 묘비를 세우시기를 응원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