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개인적인 결괏값
내가 수고한 모든 것이 다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며,
해 아래에서 무익한 것이로다.
- 전도서 2장 11절 -
밝힘: 특정 종교를 비판할 의도는 없음
IMF가 왔을 무렵 이스라엘을 넉 달 정도 여행하면서 성경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도무지 안될 것 같아 현지 교회에서 성경을 구해 성경 읽기를 시도했었다. 역시나 누가 누구를 낳고 누구를 낳았다는 지점에서 성경 읽기는 멈췄었다.
십수 년 흐른 어느 날, 꽤 지쳐있던 나에게 친구가 전도서를 읽어 보라고 권했다. 친구의 의도는 모든 것이 헛되니 너무 애쓰지 말라는 의도였을 거라 추측한다.
전도서 2장을 읽고 나서 역시나 삐딱한 나는 불온한 생각이 스멀거렸다.
전도서는 그 유명한 솔로몬왕이 노년에 쓴 것으로 가장 화려하고 강력했던 왕이 모든 것을 가져보고 누려보고 즐겨보고 나니 다 헛되다고 하는 내용이었다.
쾌락과 소유의 결론은 허탈함이고 그 허상을 이기는 것은 결국 신으로의 귀의뿐이라는 것으로 이해했다. 자기는 맛있는 거 다 먹어보고 예쁜 여자 다 만나보고 비싼 거 다 가져보고 나서 '"야 그거 다 해 봤는데 의미 없다"라니 못 해 본 자들의 의지와 희망을 꺾는 것 아닌가 싶었다.
한때 "내가 해 봐서 아는데"라며 설치던 설치류를 닮은 자가 있었다. 물론 먼저 경험한 자, 먼저 깨달은 자, 즉 선지자의 경험과 지혜는 시행착오를 줄여주는 지름길이 된다. 그렇지만 그들이 늘 옳지는 않을 수도 있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의 전제는 무엇을 해서 될 경우와 안 될 경우의 두 가지 값 중 하나이고, 저 말을 하는 사람은 그중 하나의 결과치만을 경험했을 뿐이다. 여러 번 안되다가 노력해서 되게 한 사람은 존중한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 이거 된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 절대 그건 안된다"
두 가지 모두 화자의 능력치와 상황에 따른 결과일 뿐이다. 회사를 다니면서나 살면서 나도 종종 저 두 가지 말을 잘난 체하며, 모든 것을 해 본 것처럼 거들먹거리며 했었다. 반성한다.
누군가 저런 말을 한다면, '그건 너님의 경우지요'라고 생각하면 될 듯하다. 무언가를 하고 싶거나 하고 싶지 않거나의 판단은 제 각각의 것이다.
개인적으로 古정주영 회장의 화법이 낫지 않나 싶다. 무모해 보이고 불가능해 보이는 프로젝트에 난감함을 보이는 사람들에게 "해보기는 했어?"라고 하셨다 한다. 해봐서 아는데 보다는 훌륭하는 생각이다.
"해 봤는데 안 되던데요?" 하고 혼나면 된다. 되면 좋고~
그리고 나보다는 모두 뛰어날 그들에게 겸손히 표현할 것을 깨우친 노랫구절을 중얼중얼 해본다.
“너라면 할 수 있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