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르는 재주

결코 하찮지 않은 능력들

by 숲속의조르바



어떤 사람을 보며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고 말하는 것을 본다.


참으로 시건방진 표현이 아닐까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굼벵이는 썩은 나무의 속이나 나뭇잎이 뒤섞여 썩은 부엽토의 아래, 축축하게 썩은 지푸라기 덤불 속 같은 곳에서 아주 조용하고 은밀하게 살아간다.


이렇게 조용하고 은밀한 은둔자들의 안식처가 발각되었을 경우, 놀라서 본능적으로 웅크려 말린 몸이 공처럼 굴러 떨어지는 것을 보고 굼벵이가 가진 유일한 재주로 쯤으로 비아냥하는 듯하다. 엄밀히 말하면 이것은 재주가 아니라 재앙에 닥쳐 놀란 몸부림일 뿐이다.


굼벵이는 자신을 위협하는 포식자로부터 온전하게 은폐되어 있기에 굳이 빠를 필요가 없다. 그런데 누군가를 느려터졌다며 타박할 때 가만히 있는, 또 죄 없는 굼벵이를 소환한다.


굼벵이가 가진 대단한 재주는 은근과 끈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굼벵이는 빛도 들지 않는 그 어둡고 축축하고 텁텁한 음지에서 인내한다. 그렇게 해서 풍뎅이가 되거나, 근사한 뿔을 가진 사슴벌레가 되고, 하늘소가 되고 여름을 가득 메우는 매미가 된다.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몇 년, 심지어 어떤 매미의 굼벵이는 17년을 땅속에서 버틴다고 한다. 느림은 그 기나긴 시간을 버텨내기 위해 만들어 낸 템포일 수 있다.



그 어마어마한 인고의 시간을 버텨내는 이들을 얕잡아 겨우 구르는 재주라도 있다고 표현하는 것은 분명 인간들의 오만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렇게 긴 시간을 버텨내고 드디어 성충이 되어 밝은 세상으로 나와서는 겨우 보름 안팎으로 밖에 살지 못하고 죽는 서러움도 알아주지 않는다.


그래서 매미는 그렇게 쉴 새 없이 서럽게 우는지도 모르겠다.





불행히도 내게는 굼벵이만큼 인내할 줄 아는 재주도 없고, 심지어 앞구르기도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


재주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일을 남달리 잘하고 타고난 소질, 또는 어떤 일을 남달리 솜씨 있게 하는 기술 ]이다.


전제는 [남달리] 즉, 남과 다르게 이다. 안타까운 기준이다. 남. 만. 큼.이라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더 뛰어날 것 없이 딱 남들만큼만 살고 싶은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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