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질의 착각
과일을 고를 땐 때깔이 예쁘고, 윤기가 좔좔 흐르며 흠집 하나 없는 외관, 즉 껍질을 보고 아주 신중하게 고른다.
껍질의 역할이 두드러지는 순간이다.
그런데 불행히도 일부 과일을 제외하곤 대부분은 껍질을 까고 먹는다. 거친 바람과 비, 먼지 등 온갖 고생을 다 겪으며 거칠어지고 딱딱해지고, 심지어 농약까지 뒤집어쓰며 헌신했지만 결국 쓰레기통으로 향하게 되고, 아무것도 안 하고 편안했던 속살들만 대우받는다. 살다 보면 이처럼 껍질 같은 대우를 받았다고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다.
토사구팽의 순간들이다.
그런데 간과한 것이 있다. 껍질은 자기가 온갖 고생을 다해서 속살을 지켜내고 키워냈다고 생각하지만, 농부의 입장에선 어림 반푼 없는 소리다. 거름 주고 솎아 내고 가지 치고 접 붙이고 잡초를 베어 낸 자신의 노력의 결실의 일부분 일 뿐이다. 그리고 농부의 땅 위에 서 있는 나무의 일부일 뿐이다. 지당한 소리다. 껍질은 그저 생산한 제품 전체의 중요한 일부분, 즉 포장일뿐이다. 아무리 화려하고 고급스러워 보이는 포장지여도 결국 찢기고 버려지는 운명이다.
점심시간 즈음 정자역을 걷다 보면 늠름하게 사원증을 목에 건 회사원들을 종종 본다. 그것을 스스로 껍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제법 값이 나갈 듯, 팔릴만한 , 가지고 싶은 브랜드의 포장이 떠올랐다.
열매는 언젠가는 수확되기 마련이다. 잘 익어서 수확이라도 되면 다행이지만 태풍과 돌풍에 떨어져 버리기도 한다. 때론돈 가뭄에 , 때론 싼 제품의 장마에 밭채 갈아엎어지기도 한다.
요즘 친구, 후배들 만나면 주된 걱정이 이것이다. 열매들의 가장 큰 고민이다.
여하튼 모두 딸기처럼 버려지는 껍질 없이 달달한 과육으로 누려지길 바란다.
품은 씨로 기어이 나무 자체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