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적... 훠이 훠이~~
아주아주 오래전, 50년도 더 된... 그야말로 기억이 가물가물한 기억이다. 내가 중학교 2학년 때 일이다.
중2면... 지금으로 하자면 뭐 중2병이니 뭐니 하며 사춘기 대마왕이 극성을 부릴 시절이었지만 그땐 그런 게 있었는지도 모르고 혹 그런 싹이 보인다 싶으면 학교나 집에서 등짝 스매시를 맞을게 뻔하니 티를 낼 수도 없을 때였다. 게다가 나는 빛나지는 않지만 담임에게 이쁨 받고 있는 아이였다. 뭐 그래도 증상은 심하지 않았지만 나름 중2병을 앓았을지도 모르겠다. 중학교 2학년 소풍 때였다.
소풍집합지에 모인 까까머리 중학생들이 까만 교복을 입고 바닥에 앉아 대기를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장소는 어디인지 기억에 없고... 그때 담임선생님이 우리 반 한 녀석을 불러 데리고 가더니 한참 후 어떤 아저씨들과 이야기를 하고는 이번엔 나를 부르는 것이었다. 그리고 담임은 내게 이 아저씨들 따라가서 있는 그대로 다 이야기를 해야 한다며 아저씨들께 나를 넘기는 것이었다. 영문도 모르고 그 아저씨들 차에 타고 간 곳이 경찰서였다. 담임선생님이 그때 그 아저씨들과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경찰서란 곳을 난생처음 중2학생이 간 것이고... 가보니 책상 많은 사무실 같은데 나무 의자에 앉혀 놓더니 경찰 아저씨가 앞에 와서는 무서운 얼굴로 다 알고 있으니 좋게 좋게 다 이야기 하라며 협박인지 뭔지 하여간 그러는데 겁이 나고 부들부들 떨리고... 그리고 나보다 먼저 담임께 불려 나가 이 아저씨들과 만난 우리 반 아이에겐 거의 협박과 호통으로 겁을 주고 있었다. 무슨 일일까... 더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이야기의 전말은 이러했다.
며칠 전 그 아이가 학교에 휴대용 트랜지 스터 라디오를 가져와서 자랑을 했다. 크기는 지금의 핸드폰 크기 일 것 같고 두께는 3~4배는 더 두껍고 투박한 것이지만 당시 휴대용 라이오로선 너무나 작고 이쁜 거였다. 지금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되는데... 그것에 소위 꽂혀서 그게 너무 갖고 싶고...(나는 사실 지금도 작은 전자 제품들을 좋아한다)그렇지만 그걸 살 돈은 없고... 며칠을 고민하고 내 용돈을 확인하고는 그 아이에게 일단 요만큼만 줄 테니 내게 팔아라 그리고 다음에 돈을 더 주겠다... 뭐 그런 식으로 그 아이에게 흥정을 하여 성공(?)을 해서... 그렇게 그 라디오는 내 것이 되었다. 소위 말하는 외상거래가 된 것이었다. 가격은 생각이 안 난다. 몇백 원이었는지 몇천 원이었는지... 그때 물가와 이런 걸 모르겠고 내 용돈 수준이 그때 얼마였는지도 기억에 없다.
아무튼 이제 내 것이 되었고 일부 돈을 주고 나머지는 나중에 주기로 하고 외상 거래지만 말이다. 너무 뿌듯하고 황홀했던 며칠... 사실 집에도 이야기하지 못했다. 이게 왠 거냐... 다그치면서 네가 무슨 돈이 있어 이런 걸 사냐... 고 혼낼 테고 결국 집에서도 그걸 꽁꽁 숨겨 놓았다. 언제쯤 그걸 공개하느냐를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의 혼자만의 행복한 고민은 그렇게 며칠 가지 못했다. 라디오를 산 바로 며칠 후 소풍날 나는 경찰서로 오게 되었으니 말이다. 알고보니... 그 라디오가 세상에~~ 그 라디오가... 장물이었던 것이다. 바로 그 녀석이 그걸 훔쳐서 학교에 가져와 자랑을 하고 내가 그걸 산 것이고 그러니 나는 장물아비가 된 것이었다. 그것도 모르고 나는 작은 그 트랜지스터 라디오에 꽂혀서 덥석 외상거래까지 해가며 내 것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녀석은 간도 크지 그걸 훔쳐 가지고 학교에서 자랑을 하며 그걸 팔 생각하며 애들에게 흥정까지 하고... 더 한심 한 건... 그것에 빠져 덥석 물듯 사겠다고 나선 나 같은 놈이나... 그때 무슨 정신이었는지 모르겠다. 하여간 나는 장물아비로 경찰서에 온 것이고 녀석은 도둑으로 경찰서에 온 것이었다.
경찰서로 온 나는 기가 막혔지만 경찰에게 있는 그대로 다 이야기를 하고 또 질문을 하면 또 똑같은 대답을 하고... 그렇게 몇 번을 똑같은 이야길 했던 거 같다. 그러면서도 나는 이게 집에 알려지면 나는 끝장인데... 이 생각만 했었다. 어린 맘에 이걸로 부모님이 불려 오고 하면 나는 큰일이라 여기서 어떻든 집에 알려지지 않게 끝을 내야 했다. 정말 수 없이 경찰 아저씨한테 나는 그냥 모르고 산 것이었다... 를 백번쯤 이야기하고 어찌어찌 어른들이 불려 오거나 일이 커지기 전 풀려났다. 자세한 기억이 없지만 경찰서에서 심문(?)까지는 아니지만 경찰에게 똑같은 말을 몇 번씩하고 또 하고 종이에도 쓰고 그랬던 것 같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건 경찰서에서 취조인지 사실조사인지를 하던 경찰아저씨가 첨엔 무섭게 이야기하더니 내 이야기를 몇 번 똑같이 시키고 듣고는 내 말을 믿어주는 건지... 담임 선생님한테 무슨 소릴 들어선 지...
나쁜 짓 하지 말고 공부 열심히 해~~라고 하며 보내주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솔직히 무섭기도 했지만 뭔가 좀 억울하기도 하고... 그랬다. 그리고 라디오를 훔친 그 녀석은 아마도 정학을 받았나? (솔직히 그 후 처벌은 기억에 없다) 나는 부모님 소환도 되지 않았다. 얌전하고 소심한 나를 담임선생님이 경찰아저씨한테 말을 했을 것 같은데... 나는 소위 장물 아비임에도(촉법소년이어서 그런 건가?) 무사히 나왔고 학교에서도 처벌을 받지 않았다. 담임 선생님이 손을 쓴 건지... 오래전이라 상세한 기억은 없고... 이 글을 쓰며 생각해도 한숨이 나온다. 그때 왜 그랬을까... 어린것이...
세월이 50년이 넘게 흘렀고... 그때 중2 까까머리 학생은 지금 노년의 문을 연 초로(初老)의 노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