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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샤넬로 Feb 19. 2022

샤넬로는 실패왕입니다

실패 속에서도 '관계'는 남아있었다



오늘은 진솔하게 나의 짤막한 일대기를 여러분들에게 들려드리려고 한다. 

그렇다고 거창한 성공신화가 있거나 노하우가 있는 것은 아니다. 

내 인생의 1막쯤 되는 시작 부분에서 큰 꿈을 가지고 도전하였고 치열하게 부딪혔고 좌절했고 그리고 내게는 작은 상처로 남은 이야기이다. 


세상에 의미 있는 도전, 스타트업 그리고 시작에듀베이션

내 인생의 1막 1장은 도전 그 자체였다.

나는 어릴 적부터 선한 영향력을 전달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부모님께서는 공무원이 되었으면 하였지만, 나는 누구보다 내 성향을 잘 알고 있었다. 사람을 만나는 것을 좋아하며 호기심이 많고 좋은 일이 있다면 연결해주고 소개해주고 또 다른 커뮤니티를 만들고 이끌어가고.. 한시도 가만있지 못하는 성향이었기 때문에 진득하게 책상에 앉아 수험공부를 해야 하는 공무원은 사실상 내 꿈과는 거리가 엄청 멀었다. 

정해진 답이 있는 곳이 아닌 내가 도전하여 답을 만들어가는 스타트업 환경이 나에게는 정말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스타트업 환경 자체가 누군가에게는 불안해 보였지만 내게는 내 인생 한번 도전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었다. 


더불어 선한 영향력을 빠르게 그리고 다양한 곳에 전달하고 싶었던 나로서는 스타트업 환경만 한 곳이 없었다. 그리고 군대 전역을 한 나는 어쩌면 무모하지만 대담하게도 뜻이 맞는 멤버들과 교육 스타트업 '시작에듀베이션'을 세상에 만들어 내었다. 

시작에듀베이션, 우리가 교육의 혁신의 시작점이고 싶었고 전국을 집어삼킬 정도로 멋진 서비스가 될 줄 알았다. 울산을 넘어 수도권에서도 사랑받는 서비스를 우리는 기필코 만들어낼 줄 알았다.....


무모하면 없던 신화도 만들어 낸다.

 

섭외한 강사님들에게 정기적으로 교육을 진행하였다


시작에듀베이션은 자유학기제/진로특강/진로박람회와 같이 진로교육 시장에 새로운 인적 플랫폼 역할이 되고 싶었다. 사업을 진행하던 2017년에는 한창 중고등학교에서 자유학기제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던 해였고 학교에서는 양질의 강사를 수급해야 하는데 이 부분에서 마땅히 전문적으로 맡아 진행하는 업체나 서비스가 특히 울산에는 많이 없는 상황이었다. 우리는 이 부분을 캐치하고 먼저 그곳에 맞는 서비스 솔루션을 만들기로 하였다. 


첫 번째는 무엇보다도 우수한 강사들의 선정이었다. 그렇다면 우수한 강사의 기준은 무엇인지 우리 팀 자체적으로 가설과 인터뷰를 통해 수립해야 했고 1차적으로 그 기준이 세워지다 보니 우리가 할 수 있는 범위를 설정하였다. 

그리고 2017년 가을 우리는 박카스 몇 통을 들고 다니며 울산의 강사님들을 섭외로 다녔다. 

처음 3개월간은 무식하게 서비스 소개서 ppt 자료를 출력하여 강사님이 있는 곳을 찾아가 미팅을 진행하였고 거절받기 일쑤였다. 그래도 그때는 남는 것이 시간이고 남아 있는 것이 열정이어서 삼고초려를 하면서까지 모셔온 강사님들도 있을 정도였고 4달째 우린 약 120명(부산 및 울산 포함)이 되는 다양한 강사님들을 섭외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별거 없었다. 될 때까지 방문하고 어필하고 비전을 설파하고 진행상황을 공유하고 감사의 인사를 전달하고 또 찾아뵙고 인사드리고... 정말 무모하면서도 무식한 방법이었다, 그만큼 우리는 절실하였기 때문이다. 학교라는 클라이언트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우리 쪽에도 강사풀이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업무협약 체결 6곳, 자유학기재 강사 수급 학교 61곳


http://www.ksilbo.co.kr/news/articleView.html?idxno=579138


 창업을 결심하고 연말이 되던 시점 우리는 부산 울산 경남을 포함하여 업무 체결한 공공기관 및 단체는 6곳 정도 되었고 자유학기재 강사 수급 학교는 부산과 울산을 포함하여 총 61곳의 학교에 강사들을 파견할 수 있었다. 사실상, 처음에는 우리가 할 수 있을까?!라는 의심이 많았다. 정말 우리의 사업방식은 무식하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때의 무식함과 무모함이 없었다면 내 생애 위와 같은 소중한 성과는 거두지 못하였을 것이다. 

학교라는 곳은 무척 보수적이었고 진입시장이 완고했다. 심지어 우리의 사업계획서가 눈앞에서 버려지는 것도 보았고 잡상인 취급을 받고 쫓겨나기도 하였기 때문이다. 

한 여름에는 하루에 거리가 있는 학교들을 최대 4곳 정도를 돌아다니다 보니 대외협력팀장의 오래된 차가 도로에서 퍼지기도 하였고 늘 삼각김밥을 먹으면서 학교와 공공기관을 돌아다녔던 것 같다. 그래도 행복했다. 학교에서 이론적으로 배우는 것이 아닌 실질적으로 부딪히며 사회를 공부할 수 있었고 돈이라는 것이 어떻게 만들어져 들어오게 되는지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코파운더와 같은 위치로 일을 하면서 월급을 제대로 가져간 적은 없었지만, 그래도 이때만큼은 도전할 수 있고 우리에게 유의미한 성과를 얻을 수 있어서 좋았다. 


우리에게 플랫폼화를 할 수 있었던 기회가 있었더라면...

나는 내 모든 순간에 최선을 다했다. 어설퍼보이고 싶지않았다.


우리의 서비스는 오프라인 및 인적 제공 서비스로는 완고하였으나 디지털 플랫폼으로의 기회를 가져가지 못하였다. 어쩌면 이때 디지털 플랫폼화를 진행하였다면 더 좋은 서비스로 전국 진출을 할 수 있었을 거라는 희망적인 생각도 해보곤 한다. 노동집약적 서비스인 우리의 서비스는 퀄리티는 좋았지만 사실상 확장성에서 실패한 사업 아이템이었다. 창업 2년 차 시점에서 우리는 서로 분열하기 시작하였다. 그때의 내가 조금 더 빠르게 디지털 플랫폼화쪽에 눈을 떠서 새로운 해결책을 모색해보았다면 어땠을까?라는 후회가 아직도 나의 마음 한편에 남아 있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선한 영향력을 계속해서 이어나가려면 좋은 일이 아닌 사업적 관점을 가져가야 한다는 것을... 그때 함께 해주었던 강사님들에게 더 많은 기회의 확장을 못 드린 것 같아 아쉬움도 남는다. 


어쩌면 나는 무섭고 두려워 먼저 도망쳤는지도 모른다...

사실 내가 제일 겁쟁이 었는지도 모른다.


군대 전역 후 오직 열정과 패기만 가지고 도전하였던 스타트업 생태계... 사실 나는 내가 그 당시만 해도 강인한 사람인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철저하게 현실이 가져다주는 경제적 상황적 공포로 인하여 먼저 팀을 버리고 떠난 사람은 아닌가?라고 요즘 들어 나 자신에게 물어보곤 한다. 그때의 내가 제일 겁쟁이 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창업 3년 차가 되던 무렵 나는 대외협력팀장과 대표를 비난하고 있었다. 정말 어리석은 행동이었다, 

그리고 그 당시 나는 뭐가 잘났는지 나만의 독자적인 길을 가겠다고 선언하고 팀을 떠났다. 

나의 비전과 방향성을 따라주는 강사님들을 모아 '콘플래닛'이라는 프로젝트성 팀을 결성하였다. 

정말 대표의 입장에서 보았다면 배은망덕했을 것이다. 그때의 잘못된 열정과 방향성이 다른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었을지도 모른다. 정말 미안하다고 생각 들고 얼굴을 볼 자신이 없다. 

그때의 뜨거웠고 찬란했던 우리의 꿈과 비전을 내가 먹칠한 것은 아닌지... 그때의 나를 만난다면 왜 그렇게 이해심이 많이 없었는지 따지고 싶었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 나는 최고의 선택을 했다.


팀을 나오고 콘플래닛이라는 프로젝트 팀을 약 1년 반 정도 운영하고 모든 사업에서 철수하기로 결정하였다. 

사업을 진행하면서 더 이상 의욕도 그리고 전략성도 잃어버린 내 모습을 발견하였기 때문이다. 

특히, 선한 영향력을 전달하고 싶다는 내 신념에도 먹칠을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실패와 고난 속에서도 잃은 것뿐만 아니라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나만의 자산을 얻었다. 

고객을 대하는 자세, 고객의 니즈를 파악하는 자세, 직접 발로 뛰는 영업 정신, 사업의 전략과 방향성을 세우는 자세 등... 하지만, 이제는 몸으로 부딪히는 경험보다는 조금 더 다듬어지고 전문적 교육을 통해 업그레이드가 되고 싶은 욕구 또한 강하였다. 그래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한동안 관련된 서적과 교육을 받기 시작하였다. 


프로덕트 매니저(PM)로 살아가는 오늘날에 지난날의 나를 보면 정말 당돌하고 무식하였지만 날카로움과 정교함 그리고 깊이가 없었다는 것을 보게 되니 괜스레 민망스러울 지경이다.


 (2018년 나는 내 실패의 경험을 세상에 알렸다)

https://www.facebook.com/photo?fbid=1584175081704644&set=a.165932783528888





모든 순간이 감사함의 연속이었다.


나는 누군가에게는 꿈이 될 수 있는 존재였다. 


누군가 큰 꿈을 가지고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창업을 고민한다면,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해보아라고 하고 싶다. 다만, 그 꿈의 크기에 비례하여 확고함을 가진 상태에서 추천하고 싶다. 

내가 창업 멤버로 도전하고 앞으로 나아갔기 때문에 나는 누군가에게는 진로코칭 선생님이 되기도 하였고 교육 운영위원도 되기도 하였고 교육개발팀장이 되기도 하였으며 교육기관의 자문위원이 되기도 하였다. 

이 모든 것이 무모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큰 꿈을 가지고 지난날 달렸기 때문에 가능하였다고 본다. 

그때는 그 모든 순간에 대한 감사함이 없었다.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오만하기까지 하였다. 

하지만, 실패라는 순간이 내게 오면서 지난날의 순간순간이 정말 감사한 순간의 연속이었음을 느낀다. 




나의 20대는 정말 뜨거웠고 거침없었다. 그러나 누구보다 겁도 많았고 눈치를 많이 보았던 아쉬운 시절의 한 부분이었다. 사업을 한다는 것은 돈을 넘어 큰 가치를 보아야 하는데 결국 나는 돈이라는 작은 부분에 목숨까지 걸었던 미련한 사람이었다. 나는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하였지만, 결국의 다른 사람과 똑같음을 인정한 순간 나의 자존심은 이미 밑바닥을 향해있었다. 그리고 그 긴 슬럼프를 극복하기까지 약 3년의 시간이 걸렸다. 


도전하는 모든 이들에게 말하고 싶은 점은 항상 내일에 있음에 감사하고 비전적이고 낭만적으로 꿈을 꾸되 사업을 할 때에는 현실감각을 잃지 않았으면 한다. 


그리고 지난 20대 부족하고 못난 나와 함께 해준 팀원들에게 용서를 구하며 끝으로 정말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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