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음 Apr 25. 2024

한고비를 넘기고

2024년 기록

불안이:  자?


나: 아니.


불안이: 오늘 중요한 날이었잖아.

좀 어땠어?


나: 너희들 덕분에 잘 넘겼지.


불안이: 그래도 애들이 가만히 있진 않았잖아?


나: 응, 기도한 보람도 있었고, 힘내야겠다는 생각도 필사적으로 들었고. 정신 붙들려고 애를 썼어. 너희도 오늘정도면 많이 참아준 거잖아.


불안이: 그렇긴 한데, 니 내면이 워낙 불균형해서 애들이 뛰쳐나갈라 해서 아주 혼났어. 특히 너 관공서 갔을 때. 블랙아웃 왔잖아. 그때 내가 얼마나 놀랐게.


나: 나도 놀랐는데, 맥콜 따다가 바닥에 쏟아서 방문자들 회유시키고 닦느라고, 정신을 다른 데로  분산시키니깐 오히려 정신이 돌아오더라.

순간을 벗어나는 일도 좋은 거 같아.

숨을 못 쉬겠어서 음료수를 뽑았는데 그게 구사일생이 될 줄이야. 흐흐.


불안이:  속 편한 스타일이야. 그래. 잘 됐네. 새벽에 비 많이 와서 걱정했는데, 비도 그치고. 운 좋았어.


나: 그렇지. 응원해 주시는 분들이 많거든. 비 온 후라 그런지 날이 참 맑고 예쁘더라.

한번 볼래?

불안이: 하늘이 그림처럼 맑네.


나: 그 정신에 이걸 찍고 있었어. 웃기지?


불안이: 아니,  너 워. 늘 여유로운 거. 그래 일은 얼마큼 한 거야?


나: 의 40% 정도, 나머진 서술이 많아서.


불안이: 마음은 좀 어때?


나: 글쎄. 솔직히 마음을 잘 모르겠어. 내가 무슨 기분인지, 내가 무슨 색깔인지, 잘 구분이 안 가.

음, 모르겠는데..

그게 또 괴로워.

그래도 긍정적인 건, 어제보단 오늘이 좀 덜해. 버티고 싶고, 그럴 이유도 충분고.


어느 정신과 샘이 그러더라. 우울증 환자가 잘 못 된 생각을 하고 실행으로 옮기는데 10분 안 걸린데.  난 그 말 뜻을 알겠더라고. 그런데 나에 살아서 하고 싶은 일들이 더 많아. 그래서 그 10분이 오지 않길 적극적으로 방어하고 있는 거지.


불안이:  아침에 보니 몸무게 많이 빠졌더라.


나:  잠깐이야. 컨디션 돌아가면 훅 오를. 안 올랐으면 좋겠다. 나는 북방계로 살고 싶은데, 자꾸 얼굴이 넙데데해져.


불안이: 참 속 편한 소리 한다. 심각할 때도, 이런 쓸데없는 소리하고. 암튼 장난친다는 건 네가 조금 숨 쉴 여유가 생겼다는 거니깐, 나도 숨 좀 쉬고 자겠다.


나:  이야, 니가 그 정도로 내 걱정을 했어?


불안이: 그럼 네가 우릴 주인공으로 책 쓴다는데 좋은 이미지를 남기고 가야 할 거 아니야. 그래야 대대손손 욕을 안 먹지.


나: 결국 내 걱정이 아니라, 니 걱정이었어?


불안이:  니 걱정 내 걱정이 어딨어. 우리 사이에, 내가 잘 나와야 너도 잘되고. 응,  안 그래? 다  거지,


나: 알겠어, 그렇다 쳐. 근데 말이야. 오늘 길가에 부처님 오신 날 등이 걸려 있더라.

나한번도 그런 생각해본 적 없는데 문득, 사월 초파일에 절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

마음속 작은 소망.



불안이: 너 모태신앙이잖아.


나: 그냥 종교 이런 의미로 말고.. 그곳에 가면 안식이 기다리고 있을 거 같은 기분이었어. 난 그 풍경 소리. 산속 바람소리 참 좋아하거든. 절에 무서운 그림만 빼고.


불안이: 그래. 하긴 종교를 구분할 필요는 없지, 알고 보면 교리는 다 같으니깐.

아.. 나 졸리다. 너 괜찮은 거 알았으니 나 잔다.


나:  오늘 고마웠어. 밤새 쭉 자. 자다 깨서 나오지 말고.


불안이: 걱정 마 7,000보 걸어서 나도 넉다운이야.

낼 봐.


나: 낼도 안 봐도 돼~

매거진의 이전글 전소된 날이었어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