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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음 Oct 25. 2024

기다림의 온기

오늘을 씁니다

우울증이 나를 비웃고 사라졌다. 어쩌다 보니 며칠 동안 감정을 잃고 살았다. 아니, 느낄 여유가 없었다. 감기에 휘감겨 다른 생각조차 할 수 없는 날들이 계속 됐다.


이 성가신 녀석, 목감기…

처음엔 감기 다섯 마리가 붙어 있었는데, 이제 겨우 넷은 떨쳐낸 것 같다. 정말로 징글맞게 오래도 간다. 길거리 감기는 내가 다 주워 먹었나 보다.

어제는 소내장탕을 끓였다.

 "매번 다시는 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자꾸만 일을 벌이는 나 때문에 괴롭다. 하루는 내장을 손질하고 씻고, 삶고, 냄새를 빼고, 하루는 산초를 듬뿍 넣고 푹 끓여 간이 베이게 한다. 식혀 냉동실로 입주하기까지 삼일은 꼬박 걸리는데도 또 한 솥을 끓였다.

감자탕은 이틀, 갈비탕도 이틀, 육개장은 고사리를 하루 삶아 재워야 하니 이것도 이틀이 걸린다. 이렇게 우리 가족이 좋아하는 탕 음식은 시간이 적당히 필요하다.

생각해 보면, 사람이 서로를 믿고 돌보는 데는 언제나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이 시간이 진정한 삶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사람 때문이 아닌가? 그러니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와 필요한 시간이 인간의 삶의 본질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나는 탕을 끓이느라 며칠을 기다리는 일도, 아이가 때에 맞게 자라길 기다리는 일도, 당신이 내게 오느라 애쓰는 시간도 마냥 기다린다. 군불 대신 가스를 켜고, 장작 대신 파를 썰며 기다린다.



가을이 스산한지 경량 패딩을 얻어 입고 들어왔다.  얼른 마 조끼 하나 혀야겠다.


아침 제법 쌀쌀해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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