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어쩔 수 없는 날이 있다. 큰언니는 수술하고, 동생은 울고 집을 나오고, 아들은 정신과를 다녀와 속상한 소릴 듣고 오는 날. 속상해 미칠 거 같은 날이 오늘이었다.
오늘은 아들 정신 검사지를 제출하러 가는 날이었다. 나는 시대가 좋으니 내가 다니는 병원처럼 그날 진단이 나오는지 알았다. 근데 이병원은 조선시대인가 결과는 또 담주에 나온다는 것이다. 진단을 받기까지 세 번을 내원하다니 내가 다니는 병원하고 수준차이가 많이도 난다. 남편이 의사 선생님과 상담한 얘기를 들려주는데 기가 막힌 얘기를 들었다.
보통 이런 일이 잦아서 내원을 많이 한다고 한다. 특히 중2가 가장 빈도수가 높은데 이는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 가장 왕성하게 분비되는 때라서 그런단다. 우리 아이가 반에서 리더를 맡고 있는 게 문제일 거라고 추측하셨다고 하는데 너무 화가 났다. 일진들 눈에는 이게 상당히 고까운 일일 거라는 것이다.
내참 살다 살다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혀서 할 말을 잃었다. 그 다른 아이들 수학 못 푼다고 자존심 건드는 친구는 핑계일 뿐이고, 타깃은 우리 아이일 거라고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셨다니 부글부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왜냐면 반에서 일진아이들이 반을 통솔하고 짱을 먹어야 하는데 1학기때 반장이었던 우리 아이의 통솔을 듣는 것이 문제란다.
우리 아이를 꿀리는 게 목적이라는 말에 내 피가 갑자기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일이 악한 것들이 강자인척하는 상황이다.
우리 아이는 매학년 회장을 하고 전 과목을 잘해서 선생님들과 친밀도가 높다, 회장은 청소 면제라도 솔선수범 해야 한다고 청소도 더 열심히 하고 봉사에도 적극적이었다. 한국사, 세계사, 사회, 국어. 중국어, 영어, 한자, 일어, 불어, 과학, 음악, 미술을 좋아해서 이쁨을 많이 받는 편이다. 선생님들은 무조건 2학기 회장이 있어도 1학기 회장이었던 우리 아들을 찾고 계신단다. 이젠 회장도 아니면서 선생님 지시데로 그룹을 인도하고 통솔하는 등등의 모든 일들이 꼴 보기 싫은 거란다.
아, 숨이 막히고 분노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선생님들이 시켜서 하는 거고 아이들이 따르는 게 왜 우리 아들 문제인가? 수시로 대학을 간다고 중학교 와서 배식봉사하랴 밥도 제대로 못 먹고 매번 정신없이 뛰어다녔는데 결국 그게 질투의 이유라니 기가 막혔다.
그러면 자기들도 시간 날 때마다 반을 빗자루로 쓸고, 애들 조용히 시키고, 소외된 애들 챙겨서 공부 가르쳐주고.. 인정을 받을 것이지 왜 힘으로 평정을 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제 딴에는 살이 빠져가면서 그렇게 열심히 살았는데 돌아오는 게 이러니 얼마나 속상할 텐가.
나는 아이를 붙잡고 직접적인 협박 같은 건 들은 게 없는지 물어봤다. 당장 쫓아가고 싶은 심정에 드래건볼이라도 되고 싶었다. 아이는 본인이 당한 건 다리 다쳐서 체육 안 하다고 육두문자로 시비 건 거밖에 없다고 했다.
난 이불에 얼굴을 박고 집이 무너져라 고함을 질러 댔다. 주먹으로 미친 듯이 베개를 치고 죽부인으로 벽을 부술 듯이 후려쳤다. 이렇게 분노를 표출한 게 태어나서 처음인 거 같다. 맘 같아서는 쫓아가서 다 박살내고 싶었지만 건더기가 없으니 속만 타들어 갔다.
왜 우리 아이가 타깃이 되어야 하는가?
아무것도 노력 안 한 너희들의 위치가 그리 중요 한가. 못 댔게 굴면서 인정받길 바라고 자기들을 따르길 바라는 게 말이 안 된다. 안 그래도 우리 아이는 그걸 인식해서 3학년 총학생 회장 선거에도 신청을 안 했다. 얼마나 총학생회장을 하고 싶어 했는지, 노력했는지 모른다. 고등학교 때는 un 토론에도 보낼 생각이었는데 이런 일이 생기니 속이 타들어갔다.
남편과 나는 싸우는 기술을 알려주기 시작했다. 눈빛부터 기죽지 않아야 함을 알려주고 펀치, 가드, 훼이크, 옆돌려차기, 힘으로 안될 땐 무기 만들기를 알려 주는데 속이 너무 상했다.
맞아도 '아' 소리를 내거나 주눅 들면 안 된다고 시범을 보여주기로 했다. 남편이 덩치가 있으니 나한테 맞아보라고 했다. 아픈 티 내지 말고 눈빛은 정면을 응시하면서 살기 있게 뜨고 있으라고 했다.
남편은 자기가 몰라서 그러는데 자기 때리면 엄청 아프다면 죽어도 안 맞는단다. 그리곤 손바닥 끝으로 치면 주먹보다 세다고 아들에게 말해 주길래, 그럼 날 때리라고 어깨를 내어 주었다.
처음 맞았을 때 피가 터져도 주눅 들지 말고 눈빛은 독기로 살아 있으라 했다. 이제 시범을 보여 주기로 했다. 그랬더니 남편이 온 힘을 다해 내 어깨 때렸다. 크크크. 진짜 예정하지 않았지만 맞은 어깨의 반대팔이 순식간에 바로 펀치를 날렸다. 남편은 넋이 나갔고 나는 어깨가 아팠지만 미동하지 않았다. 남편이 왜 때리냐고 그렁그렁한 눈빛으로 바라보는데 어떻게 설명할 수가 없었다. 운동을 다니다 보니 회피와 공격이 습관이 돼서 연신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아이는 너무 놀라 입을 벌리고 벙하게 바라보았다.
이도저도 자신이 없을 땐 한 대 맞자마자 교무실로 뛰어가서 엄마한테 전화하라고 했다. 바로 델러갈테니..
학교는 안 다녀도 된다. 청소년기 경험하라고 보내는 거지 모두가 같은 길을 갈 필요는 없다. 빵셔틀 하며 상처받고 내면이 병드느니 더 큰 세상을 보여주면 된다. 나는 무슨 일이 있으면 죽을 각오로 그놈들과 그놈들 부모와 싸울 것이다.
아, 이런 걸 가르쳐야 한다는 게 개탄스럽기 그지없다. 우리 아이 베프도 우리가 다니는 무에타이를 체험해 보고 싶다고 한다. 위기의식을 심각하게 느끼나 보다.
난 종합격투기나 권투를 좋아했지만 내가 이런 걸 쓸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못했다. 오죽하면 너클을 사가지고 다녀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든다. 나는 내가 온화한 사람인지 알았는데 아닌가 보다. 그 어느 때보다 포악스럽고 미친 어미사자 같다.
나는 아프지만 모성애는 강한 어미이다. 사회의 악을 다 막아줄 수는 없지만 많은 대처 방법을 알려주고 가야겠다. 세상이 미쳐 돌아가니 나도 반쯤 미쳐야 각이 맞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