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다시 출근

탑골공원의 하루

by 이음


주 4일제에 로봇은 자동화 그리고 무인 시스템. 모든 것이 바뀌었다. 그러나 노인들의 일상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세상이 너무 빨리 달라져서 그들이 따라갈 틈조차 사라진 것이다.

한 세대가 살아온 방식은 이미 폐기되었다. 손으로 기계를 만들고, 땀으로 생계를 지탱하던 시대는 끝났다. 용접 대신 3D 프린터가, 트럭 대신 드론이, 사람 대신 인공지능이 일을 한다. 공장에서도 ‘사람 손’은 더 이상 필요치 않다.
“한때 우리는 손으로 나라를 지었는데, 이제는 손 쓸 데가 없구먼.”
어느 노인의 푸념은 이 시대의 선언 같았다. 기술은 더 빨리 달려갔지만, 삶은 너무 느리게 따라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전히 출근한다. 슈트나 넥타이를 맬 필요는 없다. 지하철 대신 전동 킥보드를 타기도 하고, 무거운 서류 대신 손목에 붙인 파스 하나쯤 챙기면 그걸로 충분하다.

목적지는 ‘게임파크’. 예전에는 PC방이라 불리던 공간이 진화해 이제는 새로운 문화적 성지로 자리 잡았다.
퇴직한 이들이 매일 ‘출근’하는 새로운 일터이자 혹은 마지막 피난처이다.

문을 열면 낯선 풍경이 펼쳐진다. 책상마다 놓인 모니터 앞에 노인들이 앉아 있다. 그들의 얼굴은 구겨진 이력서처럼 주름이 많지만, 손끝의 마우스는 젊은이 못지않게 빠르다. 이곳에선 이들은 직장 대신 ‘접속’을 한다. 로그인은 출근 도장이고, 파티 가입은 팀 배치이다. 오늘의 업무는 간단하다. 살아 있음을 확인받는 일.

카톡은 멈췄고, 전화벨은 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게임 속 친구창은 반짝인다.
“우리 세대는 컴퓨터랑 같이 늙었지. 결국 한평생을 컴퓨터를 마주하네 그려.”
노인의 말에 옆자리에서 고개를 끄덕인다.

이제 그들에게 남은 친구들은 이름이 아니라 아이디다. 현실에선 누구도 찾아오지 않지만, 화면 속 닉네임들은 밤마다 불을 밝힌다. “접속했습니다”라는 알림은, “아직 살아 있습니다”라는 다른 말이 된다. 하루 종일 게임을 하는 것이 오늘의 ‘업무’이자 유일한 소통이다.

이 세대는 산업의 끝을 목격한 사람들이다. 그들이 젊을 땐 용접 불꽃이 삶을 비췄고, 컨베이어벨트의 소음이 생계였다. 그러나 지금은 기계가 말을 대신하고, 카메라가 기록을 대신한다. 그들의 기술은 더 이상 저장할 필요가 없고, 그들의 말은 더 이상 불리지 않아도 된다.

퇴직은 더 이상 해방이 아니고 오히려 인간 고립의 시작이 된다. 집에서도 바깥에서도 침묵뿐이다. 손주가 태블릿을 두드리는 소리 말고는 하루 종일 들리는 소리가 없다. 세상은 점점 더 무인화되고, 인간은 점점 더 무인도가 되어간다.

그래서 그들은 다시 출근을 한다.
누군가와 ‘파티’를 맺기 위해서 이고 죽지 않은 이름을 클릭해 보기 위해서이다. 자기 존재가 여전히 접속 가능한지 확인하기 위해 그들은 클릭을 한다.

탑골공원에서 장기를 두던 노인들은 이제 게임파크에서 마우스를 잡는다. 다른 점이 있다면, 옆자리에 앉아주는 사람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대국을 함께하던 ‘한 수’의 여유는 없어지고 화면 속 채팅창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산업시대가 끝나자, 갈 곳 잃은 이들이 결국 밀려난 곳은 게임공원이었다. 그러나 밀려난 자리에서 그들은 또 다른 세상을 창조한다. 새로운 질서와 새로운 규칙, 그리고 새로운 인간관계가 생겨난다. 게임 속에서라도 다시 일을 배분하고, 길드를 꾸리고, 역할을 나눈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다시 한번 ‘함께 살아간다’는 감각을 붙잡는다.

“삶이란 결국 접속의 다른 이름 아니겠나.”
노인의 말에 누구도 대꾸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침묵이 곧 동의였다.

인구는 줄고, 일자리는 더 줄어간다. 산업은 앞질러 달려가지만, 삶은 여전히 뒤에 남겨졌다.
하지만 뒤처진 자리에선 또 다른 시간이 자라난다. 게임 속이라도 손을 잡고, 새로운 규칙을 만들고, 잊힌 목소리를 다시 부른다.

게임파크의 불빛은 차갑지만, 그 안에서 서로를 클릭하는 순간만큼은 따뜻하다. 그들은 여전히 출근한다. 그것은 패배가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공원이 있었던 것처럼, 이제는 이 게임파크가 있다. 그리고 언젠가, 또 다른 세상도 우리가 만들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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