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고시원 와이파이
고시원 복도는 밤이면 더욱 좁아진다. 불은 주황색등은 겨우 켜져 있고, 사람들은 서로의 얼굴을 모른다. 출입문이 무겁게 닫히고, 소리에 다들 조심스럽다. 마치 이곳은 ‘숨게 만드는 공간’ 밀폐실 같은 구조이다. 나는 504호에 살고 있다. 그리고 옆호실, 503호엔 누가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관리인에게 물어본 적은 있지만..
“그 방은요… 그냥 장기투숙자예요. 말을 잘 안 해요. 불편한 분은 아닌데, 뭐랄까… 좀 묘해요.”
묘하다는 말로 설명될 수 있는 것들은 대개 불편하다. 하지만 문제라는 단어를 쓰는 순간 이 고시원에선 도어락이 바짝 닫힌다. 이곳 사람들은 문제를 감지해도 말하지 않는 긍휼 같은 게 있다. ‘여기서 그건 말하는 게 아니야’라는 분위기. 말 대신 귀를 기울이고, 눈 대신 발소리를 듣는다. 서로가 서로를 가엾이 여기는 건지 동정하는 건지 알 수는 없다. 고시원엔 창이 없다, 결국엔 벽을 통해 서로를 느낄 수밖에 없기에 우리는 얇디 얇은 벽만큼 가엾이 여길지도 모른다. 처음 503호에 관심을 갖게 된 건 단순한 우연이었다.
새벽 2시 30분. 시험공부에 집중이 안 되어 복도 끝에 있는 정수기로 물을 뜨러 나왔다. 조용했다. 다들 자고 있었고, 인기척도 없었다. 그런데 복도 끝, 503호 문 밑으로 은은한 푸른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흰색도 아니고, 주황색도 아닌 모니터 백라이트 특유의 그 파란색. 어쩌면 그냥 노트북을 켜둔 걸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 불빛은 매일 같은 시간, 같은 각도로 반복되었다. 꼭 누군가 그 시간에만 ‘접속’한다는 듯이.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노트북을 켜자 이상한 메시지가 떴다.
[새 네트워크 G503이 감지되었습니다.]
[보안 비공개 / 속도 초고속 / 사용자 수: 1명]
나는 당황해서 공유기 목록을 열어봤지만, 그 이름은 곧 사라졌다. 다시 나타났을 때는 새벽 2시 40분이었다. 그날 밤 나는 책상에 앉아 그 Wi-Fi를 기다렸다. 그리고 정확히 2시 40분, 다시 신호가 떴다.
‘G503’
호기심에 무심코 연결을 눌렀다. 암호 없이 연결되었고, 내 노트북은 이전보다 5배는 빨라진 것처럼 작동했다.
그 순간, 화면에 검은 창 하나가 떴다.
[접속을 환영합니다.]
[우리는 서로를 보지 못하지만, 대화는 가능합니다.]
나는 숨을 삼켰다.
장난일까? 누군가의 해킹일까?
그러다 문득, 이 메시지가 꼭 누군가의 인사처럼 느껴졌다. 진심이 느껴지는, 외롭고 조용한 인사.
며칠 뒤, 고시원 게시판에 안내문이 붙었다.
※ 공지: 경찰 수사 협조 안내
최근 정부기관의 해킹 시도가 발생하였고, 고시원 내부 IP가 사용된 정황이 있어 경찰 수사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입주민 분들은 협조 부탁드립니다.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정부기관 해킹.
고시원.
Wi-Fi.
503호.
나는 내 손에 쥔 노트북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혹시, 그 방에 있던 사람은. 그날 이후, G503 신호는 다시 뜨지 않았다. 503호의 불빛도 보이지 않았고, 배달 음식도 도착하지 않았다. 그 방은 여전히 ‘장기투숙 중’으로 표시돼 있지만, 어쩌면 그는 이 세상 어딘가에서 접속중일지도 모른다.
503호는 여전히 조용했다.
누군가 살고 있다는 흔적도, 떠났다는 낌새도 없었다. 하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그 방은 사라지지 않았고, 단지 모습을 감춘 것뿐이라는 것을. 그날 이후로 G503이라는 Wi-Fi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내 노트북은 가끔, 전원이 꺼진 상태에서도 팬이 혼자 돌기 시작했다. 화면은 꺼져 있는데, 내부는 작동 중인 것처럼. 처음엔 그냥 기계적인 오류라고 생각했지만,
어느 날, 화면이 깜빡이며 잠시 켜졌다. 검은 화면에 희미한 문장 하나가 떴다.
“보이지 않는 대화는, 종료되지 않았습니다.”
숨이 멎을 것 같았다. 누군가 내 노트북 안에서 나를 보고 있다는 느낌. 단순한 접속이 아니라, 동시 접속 중인 느낌. 나는 즉시 포맷을 시도했다. 하지만 시스템은 거부당했다. "관리자 권한이 없습니다"라는 문구만 떴다. 이 노트북의 주인은, 더 이상 내가 아니었다. 며칠 뒤, 고시원 복도에 낯선 사람이 나타났다. 검은 바지, 회색 셔츠, 목에 출입증을 건 남자. 그는 방을 하나씩 두드리며 뭔가를 물었다.
“안녕하세요. 사이버범죄수사팀인데요. 최근 해킹 로그와 관련해 간단한 조사 중입니다.”
그가 503호 앞에 섰을 때, 나는 조용히 복도 끝에 섰다.
문을 두드리는 그의 손이 잠시 멈췄다.
“여긴... 아직 사람이 살고 있는 건가요?”
관리인이 대답했다.
“장기투숙자예요. 거의 안 나옵니다.”
그는 대답 대신 휴대용 장비를 꺼내어 무언가를 스캔했다. 그리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열렸는데요. 신호가... 여기서 나왔는데...?”
503호는 잠겨 있었다.
도어락도 멀쩡했고, 비밀번호는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
그런데 장비는 누군가가 내부에서 접속 중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날 밤, 나는 다시 노트북을 열었다. 배경화면은 바뀌어 있었다. 검은 화면에 Wi-Fi 아이콘 하나.
그리고 그 아래, 파란 글씨.
“당신의 접속은 확인되었습니다.”
내 노트북은 연결되어 있었다.
G503이 아닌, 새로운 이름.
[G504_대기 중]
그건 내 방 번호였다.
누군가, 내 방을 새로운 관제센터로 삼은 것이다.
나는 벽에 귀를 댔다.
얇은 석고보드 너머로 들리는 아주 작고 일정한 리듬.
키보드 소리.
아직도 503호엔 누군가 있다.
파란 불빛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젠 나를 통해 빛나고 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