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원 와이파이
504호의 방 안은 늘 조용했다. 누군가 벽 너머를 듣고 있다는 감각에 익숙해진 이후부터, 나는 기침 하나조차 눈치 보며 하게 되었다. 그날도 새벽 2시 40분. 잠들지 못한 채 노트북을 열었지만, 와이파이는 잡히지 않았다. 'G503'도 'G504'도, 그 어떤 신호도.
그 순간, 뉴스 속보 알림이 떴다.
[속보] K은행 본사 해킹 당해... 고객 2만 명 출금 오류 발생
정부, ‘사이버비상사태’ 선포
나는 얼어붙었다. 뉴스 앵커는 계속 말했다. 출금이 중단된 고객들의 분노, 광역 데이터망이 손상됐다는 정황, 그리고 전국적으로 동시다발적 접속 시도.
“... 국가정보원은 해당 해킹이 국내 인터넷 회선에서 발생했을 가능성을 언급했으며, 특히 일부 지역 고시원의 IP가 추적 대상에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고시원. 인터넷 회선. IP.
그 단어들이 뼛속으로 박혔다.
나는 곧장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컴퓨터공학과 2학년. 어릴 땐 ‘해커가 될 거야’라고 장난처럼 말하던 애였다.
“형, 진짜 와이파이 문제야? 아니면 누가 들어온 느낌이야?”
“둘 다야. 뭔가 계속 켜지고 꺼지고, 팬이 혼자 돌아…”
“알겠어. 그대로 있어.”
두 시간 뒤, 동생이 도착했다. 편의점 봉투에 음료수와 과자를 사 들고 왔다. 내 방에 들어서자마자 노트북부터 확인했다.
“이거… 시그널이 안 끊긴다. 꺼져 있는데도.”
“무슨 뜻이야?”
“전원은 꺼졌지만 내부 센서는 살아 있어. 백도어일 가능성이 있어.”
동생은 화면을 사진으로 여러 장 찍었다. CPU와 MAC 주소, 포트 정보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정확한 건 과형이랑 봐야겠어. 이거, 좀 이상한데.”
“형, 당장 바꾸긴 힘들지?”
“응, 당장 돈도 없고…”
그때였다. 복도에서 택배 기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시원 506호! 택배 왔어요!”
"506호 없는 거 같은데요?"
"고가제품이네요. 노트북인데요. 대신 받으시고 사인 좀 해주시겠어요?"
나는 506호 여학생의 택배를 대신 받아주었다. 상자엔 고급 브랜드의 새 노트북이 들어 있었다. 묘하게 낯익은 감촉이었다. 전에 봤던 503호의 파란 불빛과 같은 빛이, 틈 사이로 새어 나왔다.
며칠 후, 동생이 과 친구를 데려왔다. 안경을 쓴 친구가 내동생보다 똑똑해 보였다. 둘은 노트북을 꺼내 들고 속을 뜯듯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서로 주고받은 말.
“이거, GC-X 프로토콜 비슷한데?”
“그건 폐기된 시스템 아니었냐?”
“그게 아니라… 복원된 것 같아. 클론.”
“근데, 주목적이 뭐지? 해킹인가? 감청인가?”
“잘 모르겠어. 근데 메인 경로가 독립 IP야. 그리고 이 방에 연결돼 있어.”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래서… 지금 써도 돼?”
동생은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위험하긴 한데… 형, 뭐 털릴 것도 없고. 노트북 바꾸긴 힘드니까 그냥 써. 대신 조심해.”
그 순간에도, 그들은 그들의 대화를 다 듣고 있었다.
그날 밤, 고시원에 지하실이 있다는 걸 사람들은 거의 모르고 있었다. 평범한 보일러실처럼 꾸며졌고, 관리인만 출입 가능하다는 푯말이 걸어났다. 안에는 다른 구조로 방음 처리된 벽, 셀 수 없이 얽힌 랜선들, 그리고 한쪽 벽에 붙은 24인치 모니터 여덟..
그 화면 속에 떠 있는 건, 이 고시원 내 각 방의 접속 상태였다.
[503호: 권한 상실. 시스템 전환 중.]
[504호: 수신 중. 감청 레벨 2]
[506호: 접속자 활동 중 - 분석 대기]
검은 모자를 눌러쓴 인물이 키보드를 두드렸다.
다른 한 명이 조용히 말했다.
“504호, 의심 중. 감지 불가 노드 접촉.”
“형, 이거… 그냥 중계망이 아니야.”
“그래. 이 방은 단순한 중계 지점이 아니야. 접속자 선정 구역이야.”
방 천장에는 작은 구형 마이크가 천천히 돌아가고 있었다. 504호의 목소리, 동생의 목소리, 노트북 타닥이는 소리까지. 모두 실시간으로 녹음되고 있었다.
며칠 후 나는 점점 익숙해져 가는 와중에도, 무언가 찜찜한 감정을 지울 수 없었다. 낮엔 괜찮았다. 하지만 밤마다 Wi-Fi는 끊기기 시작했다. 정확히 새벽 2시 40분마다. 그리고 그 시간, 벽 너머의 여자가 활동을 시작했다.
타닥타닥
동일한 리듬.
다시 시작된 G503의 템포.
그녀는 정말 506호에 입실한 ‘여자 고시생’일까?
노트북을 열었다.
Wi-Fi 목록이 떴다.
[GXXX-Protected]
[503-Resumed]
[504-Observer Active]
‘Resumed?’ 복귀?
나는 소름이 끼쳤다. 503호, 그 방은 분명 아무도 드나들지 않았다. 그런데 신호가 다시 떴다. 무언가 되살아난 것이다. 아니면 누군가가 돌아온 것이다.
그날 밤 나는 화장실로 가는 척 복도를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503호 앞. 그 아래로 아주 미세하게 푸른 불빛이 새어 나왔다. 분명 꺼졌던, 사라졌던 빛.
그리고 옆방, 506호. 그녀는 복도를 나와, 노트북을 들고 정수기 쪽으로 걸어갔다. 나는 본능적으로 숨어서 지켜봤다. 그녀는 정수기 콘센트 아래를 확인했다.
거기엔 이전에 봤던 그 검은 장치가 꽂혀 있었다.
[G-Node: Listening...]
그녀는 USB를 꺼내 장치에 꽂았다.
잠시 후 정수기 본체에서 '삑' 소리가 났다. 마치 기기가 명령을 수신한 듯한 반응. 그 순간, 내 스마트폰이 떨렸다.
[네트워크 경고: 새 장치 감지됨]
[위치: 현재 위치 근처 / GC-Link 활성화됨]
나는 식은땀을 흘렸다. 이건 단순한 노트북 문제가 아니었다. 고시원 전체, 아니 이 지역 자체가 연결된 시스템이었다.
잠시 후, 뉴스 속보
[속보] ‘X해커 그룹’ 활동 경로 추적 중
고시원 내 Wi-Fi 노드에서 ‘GC-프로토콜’ 흔적 발견
드디어 이 퍼즐의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고시원 전체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시스템의 접속자 중 하나였다.
며칠 후, 나는 506호 여학생에게 택배 하나를 대신 받아주었다. 커다란 노트북 박스.
‘GC-Security NX Pro’ — 처음 보는 브랜드였다.
가벼운 인사와 함께 박스를 건넸고, 그녀는 눈을 피하며 말했다.
“감사해요.”
짧고 낯선 톤. 그리고 서둘러 문을 닫았다. 문이 닫힌 순간, 나는 어쩐지 전율을 느꼈다. 그녀의 손가락엔 희미하게 번져있던 프린트 잉크 자국. 그건 나도 겪었던, 노트북 내부를 해부하던 흔적과 같았다.
동생이 다시 왔다. 이번엔 대학 동기 형과 함께. 두 사람은 내 노트북을 보며 속삭이듯 대화했다.
“야, 이거 포트에 스푸핑 흔적 있어.”
“암호화가 풀렸는데… 이상해. 로그가 비어 있어.”
“파일 하나 남았는데, 열리지도 않아. 무슨 바이러스 같은 건 아닌데…”
그들은 조심스레 USB를 뽑고, 노트북 전체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말했다.
“형, 이거 아마도… 누가 잠깐 들렀다 간 거야. 근데, 그냥 써도 될 것 같아. 기록은 없고, 지우려 한 흔적만 남았거든. 바꾸기엔 돈 아깝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모른 척하기로 한 그 결론. 그 말이 지하의 누군가에겐 가장 큰 선물이었다.
지하실
“노이즈 제거 완료. 504호, 장기 관찰 대상 편입.”
“의심 없음. 자발적 무시 상태.”
“파일 잔류 허용. 반응 유도 준비.”
지하의 커다란 화면에선, 504호 내부 카메라와 마이크의 파형 분석 결과가 그래프처럼 오르내리고 있었다.
'공포 없음', '호기심 감도 중', '저항 없음'.
데이터가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506호, 그녀는 노트북을 열고 타이핑 중이었다.
> > /init sync/ node503: status – error
/bypass protocol: G-proxy 4.1
그녀는 503호를 복구하고 있었다. 기억된 모든 프로토콜을 복원하고, 하나의 ‘망’을 재구성하고 있었다. 그 순간, 그녀의 화면에 누군가 메시지를 보냈다.
[화이트 채널 02]
– “위치 노출. 감청자 존재.
– 다시 숨으세요.
– 우리는 관찰 중입니다.”
그녀의 손이 잠시 멈췄다. 그리고 화면 하단, 자동으로 떠오른 로그.
[접속자: GCX_Observer]
[위치: 고시원 지하. IP: 내부 전용 채널 / 감청 레벨 3]
그녀는 모니터를 덮었다.
그리고 속삭였다.
“… 늦지 않게 도착해 주세요. 리더”
그리고 504호, 그날 밤
노트북이 또다시 켜졌다. 화면이 뜨기도 전에, 스피커에서 기묘한 전자음이 흘러나왔다. 정확한 패턴, 반복되는 파장.
나는 본능적으로 Wi-Fi 목록을 열었다.
G503 (Active)
G504 (Accessed)
G506 (Root Permission)
G-Unknown (감지됨)
그 밑, 작게 떠오른 메시지.
“접속 권한: 상실 예정. 대상은 대체 접속자로 이관됩니다.”
숨이 막혔다. 나는 지금 이 방에 살고 있는 게 아니라
‘누군가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던 거다.
그리고 이제 그 원래의 주인이 돌아오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