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3호. 연결이 끊겼습니다

고시원 와이파이

by 이음

고시원 복도마다 CCTV가 있다. 하지만 그건 녹화용이 아니라 억제용이다. 실제로 뭔가를 기록하거나 확인하는 사람은 없다. 여긴 그렇게 철저한 곳이 못된다. 그래서 오히려 더 숨기 좋다. 503호는 여전히 조용하다. G503 신호는 더 이상 잡히지 않는다. 그 방 문 아래로 새어 나오는 푸른빛도 멈췄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내 노트북 팬이 스스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전원은 꺼져 있는데, 내부는 무언가에 반응하고 있었다. 누군가 ‘다녀간’ 것일까? 아니면 ‘여전히’ 있는 걸까? 며칠 뒤, 복도를 지나다가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낡은 바퀴 소리. 늦은 밤 고시원에 이사 오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복도 끝, 누군가 505호 앞에서 캐리어를 끌고 섰다. 나는 문틈 너머로 조용히 살폈다.


체크 셔츠, 운동화, 커다란 백팩.

마스크 너머로 눈매가 또렷한 여자 대학생이었다. 관리인이 말을 걸었다.


“학생이야? 학교 근처인가?”


“네, 이번 학기부터 다녀요. 혼자 살 곳 찾다가…”


“고시원은 처음이지? 여긴 조용한 편이야. 조심해서 지내.”


그녀는 짧게 인사를 하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 다시 정적.

그 순간, 내 노트북이 켜졌다.

부팅음도 없이, 화면이 밝아졌다.

[G503 신호 감지됨]
[사용자 수: 2명]

나는 눈을 의심했다.


‘2명’?

누구지?


그날 밤, 경찰이 다시 고시원에 찾아왔다.

사이버수사팀이라고 했다. 검은 바지에 회색 셔츠, 목에 출입증을 건 남자가 관리인과 함께 복도를 돌았다.

그는 503호 앞에 섰다. 그리고 장비를 꺼내더니 말한다.


“여기서 신호가 나왔습니다.”


“저 방은 장기투숙자예요. 얼굴 본 사람이 거의 없어요.”


그는 노트북을 꺼내 뭔가를 확인했다.

그리고 혼잣말처럼 말했다.


“희한하네. 접속 로그가… 지금도 있어요.”


하지만 방은 굳게 닫혀 있었다.

도어락에는 이상이 없었고, 내부엔 아무런 소리도 없었다.


새벽 2시 40분.

나는 다시 Wi-Fi 목록을 열었다.

[G503 / 사용자 수: 3명]

이젠 나조차도 확신이 없다.

503호에 그가 있는 게 맞을까?

아니면 지금… 누군가 우리 모두의 방을 사용하고 있는 걸까?


다음 날, 복도에 붙은 포스트잇 하나.

‘혹시… 인터넷 느리신가요?’

505호 김OO 드림


나는 메모를 한참 바라보다가, 노트북을 닫았다.

그리고 벽에 귀를 댔다. 얇은 석고보드 너머로, 아주 작고 일정한 리듬.


‘탁탁, 탁, 탁’


키보드 소리.

아직도… 누군가는 접속 중이다.

503호에서 시작된 그 불빛은 이제 복도 전체로 번지고 있었다.


며칠 전부터 고시원 복도에 낯선 가방이 하나 놓여 있었다. 회색 바퀴가 닳은 여행가방.

503호 문 앞도, 504호 문 앞도 아니었다. 딱 그 사이 벽의 한 가운데에. 관리인에게 물으니 고개를 끄덕였다.

“506호에 여학생 한 명 들어왔어요. 조용하고 말 없는 학생이더라고요.”


‘여학생’. 고시원에선 성별보다 방음이 더 중요하고, 나이보다 출입소리가 더 민감하다. 나는 누군가의 '입실'이 누군가의 '침입'처럼 느껴지는 이 공간이 어쩐지 낯설지 않았다.


그날 밤, 2시 40분.

기억하고 싶지 않은 시각이 또다시 다가왔다. 노트북을 열었지만, 이번엔 아무런 Wi-Fi 신호도 잡히지 않았다.

G503은 물론, G504도, 아무것도.


그런데 벽 너머, 타닥타닥 소리가 들렸다. 얇은 벽 한 장을 사이에 둔,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 503호가 아니라, 506호 방향에서.


순간, 목 뒤가 서늘해졌다. 기억 속 그 리듬. 같은 박자, 같은 템포. 불현듯 떠오른 생각. 혹시… 방을 옮긴 걸까?


나는 조심스럽게 침대 밑을 뒤졌다. 지난밤, 배달음식 봉지를 치우다 떨어진 무언가가 있었다. 플라스틱 카드. 얇고, 검은색, 무늬 없는 카드. 하얀 글씨로 단 한 줄만 쓰여 있었다.

G: Guest / C: Control / I: Inside

그리고 QR 코드 하나. 스마트폰으로 비추자, 잠시 화면이 깜빡이더니 이렇게 떴다.

"당신의 구역은 여기가 아닙니다.
접속 권한이 없습니다."

내가 지금 있는 곳이 내 방이 아니라는 말일까?

다음 날, 복도에서 처음으로 그녀를 마주쳤다. 후드 모자를 깊게 눌러쓴 마른 체형. 나와 눈을 마주치자 그녀는 아주 작게 고개를 숙이고 지나갔다. 그 순간, 그녀의 손에 들린 검은 노트북이 눈에 들어왔다. 낯이 익었다. 어디서 봤더라. 바로, 503호 문틈 사이로 새어나오던 그 파란빛. 그건 그 노트북의 백라이트였다.

나는 방으로 돌아오자마자 노트북을 켰다. 이번엔 정말 아무 신호도 없었다. Wi-Fi 아이콘은 텅 비어 있었고, 평소보다 훨씬 느렸다. 그런데 노트북 화면 한 귀퉁이에 익숙한 메시지가 떴다.

[새 장치가 연결되었습니다.]
[장치명: GC-X_506]

‘506?’

내 방도 아니고, 503호도 아니다.

506호… 그 옆방 여학생.


나는 벽에 귀를 댔다. 그녀는 확실히 뭔가를 하고 있었다. 빠르고 규칙적인 키보드 소리. 종종 멈췄다가, 다시 시작되는 리듬. 그 순간, 노트북이 스르륵 꺼졌다. 그리고, 곧장 자동으로 재부팅되었다.


검은 화면에 단 하나의 메시지만 남은 채로.

"접속 권한이 조정되었습니다."
"당신은 이제 관찰 대상입니다."

숨이 막혔다. 누군가 이 고시원의 망 속에서 나를 본다.

그리고, 접속자들은 자리를 옮겼다. 아니, 옮겨진 것이다. 그날 밤, 나는 복도 쓰레기통을 뒤졌다. 503호 앞, 506호 앞, 그리고 복도 끝. 그리고, 누군가가 일부러 찢어 버린 듯한 종이 조각을 발견했다. 검은 펜으로 무언가가 적혀 있었고, 테두리는 바코드가 둘러싸고 있었다. 종이를 맞춰보자 문장이 드러났다.

"GC Protocol – 층간 간섭을 피하기 위해 반드시 한 층, 한 접속자 원칙을 유지할 것."

이게 무슨 말이지?

이 고시원에선, 한 층에 하나의 접속자만 있을 수 있다는 것인가?


그럼 나는, 지금 누군가의 자리를 침범한 걸까?

아니면, 누가 내 자리를 뺏으려는 걸까?

다음 날, 관리인에게 슬쩍 물었다.


“503호, 아직 그대로 있죠?”

관리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아직 장기투숙 중이야. 근데 요즘… 방에 안 들어가더라.”


“…네?”


“거기, 열쇠 안 돌렸어. 근데 전기요금은 나오고 있어.”


누군가 방에 들어가지 않고도 전기를 쓴다? 마치… 방 자체가 장비처럼 작동하고 있는 듯한, 이상한 감각. 그날 저녁, 내 방 도어락이 저절로 ‘삑’ 소리를 냈다.

누가 외부에서 신호를 보낸 듯.


그 순간, 내 노트북이 다시 켜졌다.

그리고 이 한 문장.

"3개의 방이 연결되었습니다."

503호.
504호.
506호.

이제 연결고리가 시작되었다.

하나는 사라지고, 하나는 침묵하고, 하나는 나를 보고 있다.


나는 문득 깨달았다. 내가 그 방을 궁금해하는 동안, 누군가는 내 방을 ‘세팅’하고 있었다는 걸 말이다.

복도는 늘 조용했다. 누군가 숨을 참고 살고 있는 것 같았다. 506호에 새로 들어온 여자 고시생은 여전히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그게 더 이상했다.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 화장실 슬리퍼 끄는 소리, 정수기 버튼 소리 같은 것. 사람이 사는 고시원에서 사라질 수 없는 소음들인데, 그녀의 방에선 아무것도 새어나오지 않았다. 그녀가 입실한 날 이후, 503호의 푸른빛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오히려, 새로운 시작처럼 느껴졌다.

"접속 중입니다."

노트북 화면에 다시 메시지가 떴다.

G503도, G504도 아닌 낯선 신호.

GXXX_Unknown

익숙한 파란 배경.

그리고 그 아래엔 이런 문장이 추가돼 있었다.

“관측은 양방향으로 이루어집니다.”

나는 소름이 돋았다.

누구의 관측?

503호인가? 아니면 506호?

며칠 전, 쓰레기통에서 이상한 것을 주웠다. 누군가 갈기갈기 찢은 문서 조각이었다. 단순한 광고지인 줄 알고 무심코 펼쳤는데, 내용은 달랐다.


IP 전송 경로: local → dynamic MAC mask

Device Name: G-Observer_3

방 번호 코드: #503/#504/#506


나는 숨을 멈췄다. 503호, 내 방 504호, 그리고 여자 고시생의 506호. 모든 번호가 문서에 적혀 있었다.


이건 우연이 아니다.

우린 연결되어 있다.


그날 밤, 정수기 옆 콘센트에 꽂힌 검은색 작은 장치를 발견했다. 손가락 두 마디 정도 크기. 처음 보는 브랜드였다. 그 장치 위엔 조그맣게 쓰여 있었다.

"G-Node: Listening..."

누군가 이 고시원 전체를 듣고 있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지금도 연결되어 있다. 다음날 아침, 여자 고시생을 마주쳤다. 그녀는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목을 살짝 숙이고는 아주 조용히 지나갔다. 그 순간, 그녀의 손에 들린 USB 메모리가 눈에 들어왔다.


작고 흔한 검은색.

그런데, 브랜드가 없었다. 그건 분명, 누군가 일부러 흔적을 지운 것이었다. 그녀는 누구일까. 그리고 왜, 503호가 조용해진 그날 입실했을까. 그날 밤, 내 노트북이 저절로 켜졌다. 화면은 온통 검은색. 그리고 파란 점 하나가, 천천히 반짝였다.

곧이어 메시지가 떴다.

“당신은 누군가의 백업이 되었습니다.

내 숨소리만 방 안을 채웠다. 방 밖은 여전히 조용했다.

하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지금, 누군가가 또다시 ‘접속’하고 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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