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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들러 May 15. 2021

다섯 글자 예쁜 말

나 너 좋아해

사람들과 공부하던 시절에 지겹도록 들은 게 루틴과 원씽이었는데 그게 인이 박혔는지, 이 두 가지를 어떻게 지켜가고 있느냐에 따라 여전히 자기반성도 하고 뿌듯함도 느끼곤 한다. 3박 4일의 짧은 여행이었는데도 오랜만의 장거리라 그랬는지 자꾸 늘어지게 되었는데, 하루 하나씩 글쓰기라는 루틴과 하루 하나씩 아이와 창의적 놀이를 해야 하는 원씽으로 살렸다.


30도에 육박하는 더위라더니 은율과 도서관에 가는데 땀이 송글송글 났다. 다섯 권의 크고 작은 동화책과 소설책을 에코백에 끼워 넣고, 풍선을 사러 마트에 가기로 했다. 장미가 곳곳에 피어나기 시작했는데 내 손을 꼭 잡은 아이의 온기는 질퍽했고 정수리는 뜨거웠다. 그래도 우린 손을 놓치 않고 걸었으나 공중에 매달려 있는 송충이의 출현에 소리소리를 지르며 도망갔다.


풍선만 샀으면 괜찮았을 텐데, 막대 아이스크림도 사고 다른 것들도 좀 더 담아, 내 가방은 물론 은율의 책가방도 빵빵해져 이고 지고 오는 동안 녹초가 되었다. 길을 걸으며 떠올려지는 건, 출퇴근하는 남편 그리고 사람들. 북적북적 땀내 나는 계절의 대중교통 이용은 얼마나 체력을 빨아들이는 일인가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저녁은 묵은지 넣고 목살 넣은, 김치찜이었다. 복분자에 쇠주 섞어 1잔씩도 했다. 남편도 나도 잘 먹었다. 사상 최대 체중을 찍은 남편이지만, 잘 먹는 모습 보면 기분이 좋다. 어제 울고 불고 했던 은율은 아빠가 현관문을 들어서자 점프 허그를 했다. 오늘 뭐하고 뭐했어 조잘대길래, 은율이 어제 아빠 싫다 하지 않았나 했더니, 눈을 흘기며 쉿!이라고.


은율의 다섯 글자 예쁜 말. 그중, 나 너 좋아해가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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