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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들러 May 25. 2021

내가 알려주지 않는 것들

배움의 발견


아홉 살 딸은 귀엽고 사랑스러운 것만 그리지 않는다. SCP 뭐라고 하면서 손을 당겨 보라는 저 그림도 어찌 보면 흉측한 얼굴이다. 으윽 징그러,라고 말했지만 진짜 살아있는 것처럼 으스스하게 잘 그렸다고도 했다. 유튜브에서 연령 제한을 걸어두긴 했으나 굳이 이런 건 보면 안 돼, 그런 건 그리는 거 아니야- 억제시키고 싶지는 않다. 무기가 등장하고 피가 터지는 영상에 노출된다고 해서 공격적인 아이가 된다고도 생각지 않는다.


어쩌면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내재되어 갈 수도 있다. 설사 그렇더라도, 각기 다른 감정을 접하고 쌓아 가다가 나라는 모양새를 갖게 된다고 본다.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는 은율에겐 묘사의 확장일 수 있고, 그건 사고의 스펙트럼을 넓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익숙함이 지나면 새로운 것을 찾아간다. 넋을 놓고 봤던 뽀로로가 잊혀 가 듯, 주말이면 제발 임포 걸려라 주문을 외웠던 어몽어스 게임도 이제는 하지 않는다. 하지만 둘의 캐릭터는 아이에게 각인되어 여전히 그림에 등장하곤 한다.







어제는 학교에서 조금 늦게 나왔다. 이유를 물으니, 선생님 자리에 있던 칭찬 스티커가 점심 먹고 다녀온 사이 제이의 책상에서 발견되는 바람에 그랬다고 했다. 선생님이 누가 그랬는지 말하랬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았고, 그럼 내일 아침까지 시간을 줄 테니 오늘은 그만 돌아가라 했단다.


은율은 나에게 혹시 제이가 그런 거 아닐까,라고 했다. 제이는 점심 안 먹고 그냥 가는데, 스티커 없어진 거는 우리가 밥 먹고 와서 알았으니까 누가 그럴 리가 없지 않겠냐고. 내일 제이한테 기분 안 나쁘게 웃으면서 물어보면 제이도 아무렇지 않게 답하지 않을까, 라면서. 그건 의심이라 말해줬다. 아무리 좋게 말한대도 기분 나쁠 수 있을 거라고. 그래도 너무 궁금하다는 말에 이 사건은 선생님이 해결하실 거니까 믿고 기다려 보라 일렀다.


이런 일은 누구나의 어린 시절 교실 풍경 같을 거다. 물론 나 역시 비슷한 경험을 했다. 내 지우개가 없어졌었고 나는 그때 아무렇지 않게 평소 장난치며 놀았던 남자 애에게 물었었다. 네가 가져갔지. 내 앞에선 웃으며 아니랬던 그 애는 속이 상했는지, 선생님한테 쟤가 자길 의심했노라 말했다. 그래서 난 겁나 민망하게 혼이 났지. 물론 지우개도 못 찾았고.


아이는 인간 세상에서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며 사회적인 동물이 된다. 배려를 알기도 하지만 의심을 하고 타협을 하기도 하지만 시샘도 한다. 꼭 같이 다녀야 하는 단짝의 한마디에 풀이 죽기도 하고 친구의 요청에 열심히 그린 그림을 기꺼이 주기도 한다. 내가 미처 다 알지 못할, 수많은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렇게 아이는 쪼금씩 쪼금씩 자라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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