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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들러 Mar 11. 2021

다채로운 초등 생활

하루 동안 생긴 일

1. 동물 애호가

나와 달리 딸은 강아지나 고양이를 매우 좋아한다. 나는 싫어한다기보다 무서워하는 편이라서, 아주 귀여운 녀석이 아니면 근처에 가지 않는데 딸은 안 그런다. 길거리에서 얘들이 지나가는 족족, '안녕'하고 손을 흔들며 인사를 나누고 너무 귀여워,를 되풀이한다. 


피아노 학원 가는 길에 우체국에 들려야 해서 '이제 혼자 갈 수 있지?' 하며 100미터 남은 시점에서 물었다. 약간 섭섭한 눈치였지만 '응, 이따 봐' 하면서 아이는 뛰어갔다. 아직은 혼자 오고 갈 때 무서운지 매번 뜀박질이다. 데려다 줄 걸 그랬나. 괜히 겸연쩍어져서 멀찌기 서서 보는데, 돌연 뛰다 말고 지나가는 강아지한테 손 흔들며 인사를 했다. 저렇게 좋아하는 줄은 몰랐는데. 이미 수차례 강아지나 (특히) 고양이를 키우고 싶다고 말했는데 줄곧 거부하고 있어 미안해졌다. 난 왜 그들을 무서워하게 된 걸까.




2. 할머니의 친구

주말에 자려고 누웠을 때 한 잔 걸친 친정 엄마가 전화를 했었다. 은율이랑 통화하고 싶다길래 바꿔줬는데 얘는 이미 잠이 올랑 말랑 하던 참이라 대답이 건성건성이었다. 그래도 할머니 물음에 꼬박꼬박 대답은 했는데 이런 식이었다. '아, 미안해', '평일에 전화할게' 반대로 우렁찬 친정엄마의 목소리는 나에게도 또렷이 들려왔다. 할머니가 지난번에 문자 했는데 왜 답이 없었느냐, 할머니는 은율이가 보고 싶다, 뭐 그런 내용이 주. 그런 할머니에게 은율이는 투정하는 애인 달래 듯 대답을 했던 것.


아침에 학교 보내주고 운동하는데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이런저런 대화 끝에 엄마는 은율이가 전날에 전화해서는 할머니 뭐해, 할머니 침 맞으면 안 아파, 할머니는 좋겠다 학교 안 가서, 등등의 말을 했다 전했다. 카톡도 보냈다 했다. 지금 피아노 학원 가는 중이야, 놀이터에 이런 꽃이 있어, 하면서 사진을 찍어 보냈다고도. 


결혼하고 나서 아이를 임신할 때까지 거의 7년 동안 엄마한테 하루 한 번씩 전화를 했던 나는, 이제, 가뭄에 콩 나듯 연락을 한다. 엄마가 외로움을 많이 탄다는 걸 알면서 자꾸 잊게 된다. 그런 나 대신 딸이 외할머니를 챙기고 있다.




3. 엄마 부심

학교 끝나고 친구들과 놀이터에 갔다. 요즘 주로 놀고 있는 친구 둘이랑 같이 갔는데, 우연의 일치로 친구 둘은 할아버지가 데리러 오는 아이들이었다. 목례를 하면 했지 같이 서기는 뻘쭘한 그런 보호자들의 관계. 서로서로 떨어져 있다가 어른의 도움이 필요하면 내가 가서 도와주었다. 온전한 내 몫. 뭐 어쩌겠나 그러려니 한다. 이제 집에 가려고 각자 주섬주섬 가방을 챙기는데 딸 친구가 그런다. 너만 엄마가 데리러 왔네? 그러자 은율이 이렇게 말했다. 


- 응! 그래서 우리 엄마는 더더 힘들어.


니가 알아주는구나.




4. 자존심

- 지금 50분이니까 좀만 있으면 8시네. 


목욕하라는 말을 귓등으로 듣고 놀고만 있던 은율이, 시계를 보며 말했다. 하지만 정작 시계는 6시 50분. 짧은바늘의 위치를 정확히 가늠하지 못하길래 시간에 대해 알려 주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시도 & 시도. 모르는 것 같은데 자꾸 알은체를 하길래 급기야 손으로 쓱쓱 동그란 시계를 그려 짧은 바늘과 긴 바늘로 표시해 보라며 채근했다. 어느 즈음 지나 대략 알게 된 것 같길래 마무리하려는데 코가 씰룩씰룩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울먹이며 하는 말.


- 나는 엄마한테 자랑스러운 딸이 되고 싶은데 그렇지 못하니까 속상해.


칭찬만 듣고 싶은 너를 어쩌면 좋니. 아니면 별 거 아닌 일에 내가 또 예민하게 군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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