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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탄산 Aug 10. 2022

8. 살고 싶어 퇴사를 결심했다

흔한 출판 편집자 이야기 1

오늘은 출판사를 다니며 겪었던 일 중 하나를 얘기해 보고자 한다.



어렵사리 입사하게 된 회사는 이름만 대면 대다수가 아는 유명한 곳이었다. 제법 유명한 책도 몇 개 보유하고 있어 현상 유지를 하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회사였다. 다만 그러다 보니 발전이라는 것이 없어서, 편집자에게 기획이라는 기회를 주지 않았다. 편집자는 그저 원고만 다듬어서 보내면 끝인 그런 곳이었다. 새롭게 어떤 시도를 해 볼 것도 없었고, 교정 교열 역시 혼자 원고를 보면서 배워야 하는 것이지 신입 교육이나 제대로 된 과정은 전혀 없었다. 교육이 있긴 했는데, 유명무실할 뿐 크게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었고, 교정 교열은 사실 강의를 들으나 마나 본인의 데이터를 쌓아가야 하는 작업이라 더 그럴 수도 있었겠다. 


일만 그렇게 하는 곳이었다면 사실 더 있을 수 있었다. 그런데 퇴사를 결심한 이유는 살고 싶어서였다.


당시 회사에는 모든 사람이 싫어하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그 사람에게서는 특유의 냄새가 났다. 하수구 냄새라고 할 만큼 지독한 악취였다. 씻지 않는 것도 아닌 듯한데 그분만 회사에 들어오면 그렇게 냄새가 났다. 오죽하면 다른 직원은 그분과 함께 차를 탈 때면 코를 틀어막았다. 그리고 그 냄새꼬는 내 상사였다. 이제 그를 냄새꼬라 칭하겠다.


사수인 선배는 따로 있었지만, 중간 확인은 냄새꼬에게 받아야 했다. 첫 번째로 주어진 과제는 A4 한 장 분량도 안 되는 원고를 고쳐 보는 작업이었다. 그런데 아무런 주의사항이나 원칙도 없이 그것만 받아든 나는 뭘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맞춤법 검사기를 돌리고, 혼자서 끙끙거리며 고쳐 보았지만 크게 고칠 문장이 있긴 한 건지도 의문이었다. 한 장의 원고 테스트가 어떻게 끝났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별 의미도 없고 어떻게 고치는지 보고 싶었던 모양인데,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에게서 뭘 기대했던 건지 모르겠다(참고로 나는 중학생 때 낫다를 낳다로 썼던 이력이 있는 사람이다ㅎ)


신입이었으니 당연히 원고를 작업해서 가져갈 때마다 모르는 부분들이 튀어나왔다. 상사분들 작업하시는 데 방해가 될까 봐 노트에 빼곡히 질문을 적어가 한꺼번에 물어보기도 했다.


"우리 회사는 이렇게 작업해요." 


냄새꼬는 잘못했으니 알려주는 거라며 이 회사에서만 쓰는 교정 교열, 원칙을 알려 주었다. 내가 틀린 거라면, 제대로 고칠 수 있는 매뉴얼을 주면 될 텐데. 매뉴얼도 없으면서 왜 이런 걸 교정 다 보고 나서야 가르쳐주는 건지 의문이 생겼다.


냄새꼬는 내가 사수와 함께 있는 걸 못 견뎌 했다. 자신만 빼고 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몰라 한참 편집 중일 때도 내 자리에서, 혹은 사수 자리에서 이야기가 들려 오면 자신이 하던 작업을 멈추고 우리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키보드 소리조차 소음으로 느껴질 정도의 고요한 사무실이었으니 우리가 하는 이야기의 대다수는 냄새꼬의 귀에 들어갔을 것이다.


냄새꼬가 인턴 친구의 자리에서 손짓해가며 이 자리에 앉은 사람 머리가 돌아버렸다는 제스처를 했을 때도 그냥 넘어갔다.


문제는 내가 회사 생활이 힘들다고 느껴질 때쯤 시작됐다.

냄새꼬의 교정교열 피드백이 진정 발전을 위한 조언보다는 그저 반려시키기 위한 무언가에 불과하다고 느껴질 때였다. 금요일 저녁 약속이 있었고, 마감해야 하는 원고가 있어 넘겨야만 했는데 인쇄소에서 급하게 연락이 와 수정해달라고 했다. 어쩔 수 없이 남아서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서 나는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고 냄새꼬는 내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다.


"탄산 씨, 내가 할 테니까 가봐요."


그 말을 철썩같이 믿고 나는 약속에 갔는데, 그게 화근이었다.

다음 주, 출근해서 냄새꼬에게 원고 넘기셨냐고 물었는데 내 말을 씹었다.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상황을 확인할 수 없는 나로서는 편집장에게 갈 수밖에 없었고, 편집장은 대수롭지 않게 '어, 그거 오늘 확인해서 마무리해'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 일 이후에 한동안 냄새꼬는 꽁해 있었다. 그러니까 후에 깨달은 바로는 아무리 그 사람이 도와준다고 말했다 한들, 냄새꼬를 혼자 두고 퇴근해서는 안 되었다는 것. 친구에게 다음에 보자거나 더 늦을 테니 한 시간만 카페에 가 있으라거나 하는 말을 한 후에 남아서 작업을 마쳤어야 했다는 사실이었다. 


냄새꼬는 저 혼자 남기고 간 탄산이 나쁜 놈이라며 삐쳐 있었으나 그때의 나는 그가 삐쳤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했었다. 내 행동에 문제가 있었다면 업무적인 책임을 물어야 했는데 편집장이 다음주에 넘겨도 괜찮다고 한 원고를 트집잡아 혼낼 수도 없으니 감정적으로 나선 것이다.


이러한 일이 한두 번이 아닌 것을 계기로, 나는 냄새꼬의 피드백을 피드백으로 받아들일 수 없게 되었다. 업무적인 면에서 당연히 상사이니 배울 것이 없진 않았다. 하지만 1년, 2년, 3년이 되면서 그 사람이 주는 피드백은 쓸데없는 것뿐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편집장 역시 지금 생각하면 정상이라고 부를 수 없는 사람이었으나 그때의 나는 사회 초년생이라 그것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도, 왜 잘못되었는지도 몰랐다. 지금 그런 사람을 만난다면? 당일 사표 내고 나왔을 것이다.


최종교의 피드백은 편집장이 했고, 원고에서 실수가 나오면 나는 편집장의 자리로 불려가 쌍욕만 아니지 인격모독에 해당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누구를 가르치더라도 자리로 불러가 사무실 한 층이 다 떠나가도록 소리를 치면서 면박을 주는 경우는 없었다. 그런데 그 편집장은 우리 팀에게만 그랬다. 예뻐하는 팀의 그 누구에게도 그렇게 소리치는 경우를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편집장보다도 냄새꼬에게 더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다. 아무리 고쳐도 또 수정사항이 나오는 원고를 보며 답답함에 치를 떨었다. 오탈자는 발견하지 못한 것이지, 어떤 책에든 있다는 말처럼 원고의 수정사항 역시 그런 것이었다. 이걸 이해하기까지도 또 많은 세월이 필요했다.


그렇게 고민하던 차에 편집장이 나를 불러 따로 밥을 먹자고 했다. 1:1로 식사를 마치고 돌아가던 중, 회사에서 힘든 것은 없냐며 물었고, 나는 조심스럽게 냄새꼬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리고 그를 시작으로 편집장은 나를 이용해 냄새꼬가 탄산을 괴롭힌다는 근거를 들어 냄새꼬를 회사에서 쫓아내려 했다. 당연히 회사에서 사람을 쫓아낸다는 건 부당해고와 마찬가지인 일이고 편집장에게 그럴 만한 권력은 없었다. 


그런데도 편집장은 나를 이용하려 했다. 그런 사실을 알려준 게 실장님이었다. 실장님은 내게 "탄산, 그런 이야기 더 안 하는 게 좋을 것 같아"라고 말씀해 주셨고, 회사에서 그 누구도 믿으면 안 된다는 교훈만이 내게 남았다. 이후 편집장이 어떻게 유도신문을 해오더라도 나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고, 냄새꼬를 내보내려던 편집장의 계획은 무산되었다.


이제 와 말하지만 정말 할 말도 못 하게 만드는 회사가 제대로 된 회사인가부터 고민하게 만든 회사였는데. 많은 사람이 경력을 쌓고도 버티지 못해 나가고, 또 나가고, 그런 상황이 반복되는 데다, 윗선은 고인물로 오랫동안 남아 있는 것을 보면 뻔한 회사라는 거지.



내 밑의 후배가 들어오면서 냄새꼬의 괴롭힘 강도는 높아졌다.


너무 조용한 회사의 분위기에 적응을 못 했던 나는 한쪽에는 이어폰을 끼고 작업을 하는 경우가 잦았다. 또 쓸데없이 들리는 대화를 차단하고 싶기도 했다. 재생목록은 모두 한글 가사가 없는 노래들로, 눈으로 보는 원고와 귀로 듣는 언어의 차이가 있어야 교정볼 때 헷갈리지 않기 때문이었다. 또 음악이 유일하게 회사에서 즐길 수 있는 유희기도 했다. 


그때쯤 후배가 들어왔고, 냄새꼬는 후배를 포섭해 그에게 날 가리켜 이렇게 말했단다.


"쟤 편집할 때 음악 듣는 또라이예요. 가까이하지 말아요."


후배는 그 말을 철석같이 믿고 냄새꼬와 붙어 다녔다. 그런데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것 같았다. 우리는 한 팀이었고, 함께 생활했는데 왜 점점 더 냄새꼬가 하는 행동이 이상하게 느껴지지? 분명 탄산이 또라이라고 했는데?? 후배는 내게 업무상의 질문들과 함께 말을 걸기 시작했고, 이야기를 나누던 우리는 냄새꼬 모르게 톡을 주고받으며 전우애를 쌓아 나갔다.


팀으로 묶여 있던 냄새꼬 수하의 직원들은 셋이 단결했고, 금요일 저녁, 회사를 벗어날 때마다 치맥을 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편집장이~~~, 냄새꼬가~~~. 지금 생각해보면 황금 같은 금요일 밤이었는데. 시간을 낸 사람들이 대단했다. 세 사람에게는 그게 유일한 숨구멍이었을지도 모르고.


나중에 들어보니 냄새꼬는 1:1로 후배를 불러다 같이 술을 마시고 혼자 뻗은 적도 있고, 그때마다 뒷수습은 남은 후배가 했으며, 냄새꼬가 취했다고 가족에게 연락하면 '걔 원래 그래요, 택시 태워서 보내세요' 같은 반응이 돌아왔다고 한다. 


또 후배뿐만 아니라 그 뒤에 들어온 다른 팀 사람에게까지 마수를 뻗친 경험도 있었다. 그러니까 멋모르고 들어온 사람들을 불러다 실세처럼 행동하고 그러다 편집장에게 혼나면 잠잠해지만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면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정말 한결같은 냄새꼬였다. 그런 걸 신경 쓸 시간에 냄새부터 해결하면 좋을 것을....


이쯤까지 쓰고 나면 냄새꼬가 지병이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런 문제라면 나무랄 게 아니지 않나 할 수도 있지만, 이유를 알 수 없는 심각한 문제지만 그를 해결하려는 노력으로 향수 같은 것을 뿌렸으나 냄새는 뒤섞여서 더 역효과가 나는 사람이었다. 또 여름철에는 샌들을 신고 와 발바닥에 땀이 난다며 사무실 바닥에 맨발을 대는 등 위생 면에서 여러 안 좋은 모습을 보였으나 이 뒤에 만나게 될 냄새꼬들에 비하면 냄새 면에서는 천사였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to be continued...)


직급을 받은 나는 서서히 삶의 의욕을 잃어 갔다. 출판사 편집자들은 다 이렇게 일하나? 직장생활이 다 이런 건가? 누군가 괴롭히는 사람이 없는 곳은 없나? 그들이 내게 주는 피드백은 내게 도움이 되는 것이 맞나? 내가 만들고 싶은 책은 이런 분야의 이런 책이었나?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 그들이 언제 입사했고, 어떻게 일을 배웠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기획하는 편집자가 되려면 여길 벗어나야 했다. 또 이곳에서 더 배울 것은 없다는 생각이 컸다.


죽고 싶다는 생각이 며칠, 몇 달을 이어졌다. 그렇게 고민하다 보니 사실은 죽고 싶은 게 아니라 살고 싶은 것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살기 위해서 나는 퇴사를 결심했고, 아래와 같은 편지를 본가의 부모님께 전했다. 


===

어머니, 아버지.


대뜸 이런 편지를 남기고 나가서 굉장히 당황스러우시겠지만, 그래도 저는 글이라는 재주로 어떻게든 벌어먹고 살고 있고, 이게 제일 좋은 방법일 것 같아서 편지를 쓰기로 했어요. 두 분 앞에서 입을 열면 뭔가 약해지고 눈물이 날 것 같아 제대로 대화를 할 수 없을 거라고 판단했습니다.


몇 달 전부터 계속해서 한계를 느끼고 있었어요. 그쯤에 저작권 문제(인터넷에서 저자가 긁어온 글을 엮어 책을 만든다는데 윗사람들이 다 문제없다고 반응해 신입이 퇴사한 것)나 일(책 3권 정도가 갑자기 잡혔고, 다 마감이 빠듯한 것들)이 많아서 이것저것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몸에도 점점 이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게, 회사에만 가면 얼굴에 뭔가 일어나서 계속 간지럽고, 자세 때문도 있겠지만 허리도 아프고, 왼쪽 발바닥이 특히 아픈 족저근막염 현상도 심해졌습니다. 가장 최근에는 늘 주기가 일정했던 생리를 한 달에 2번이나 하기도 했고요.


제가 지난번에 자취방으로 나가면서 두 분께 ‘나를 위해서 죽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부모님 가슴에 못을 박은 것 같아 지금도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죽고 싶어도 저는 못 죽을 거예요. 죽을 용기까진 없는 사람이라서. 그러니 자살할 걱정은 안 하셔도 될 거예요. 제 죽고 싶다는 살고 싶다와 같은 말이니까요.


정확히 말해서 30살 때까지 열심히 살아보고 아무것도 변하지 않으면 그냥 죽어버리는 게 나을 거라 생각하긴 했습니다. 근데 이제 그 생각은 바꿨어요. 30까지는 너무 짧기도 하고 그 기간 안에 뭔가를 이룬다면 그야말로 성공한 인생인 것 같으니까요.


왜 이런 이야기를 하냐 하면, 이미 엄마한테는 몇 번 지나가는 말로 말씀을 드렸었지만, 회사 그만두기로 했습니다. 여러 가지를 생각해서 그냥 조용히 말했습니다. 쉬고 싶다고. 너무 힘들다고.


이미 윗분들께 다 이야기를 해 놨어요. 요 며칠 바빴던 건 간단한 수정이었던 일인데, 제가 역자 선생님께 다시 한번 보시는 게 나을 것 같다고 일을 벌이는 바람에 일이 커져서 이번 주에 그만둘 걸 다음 주에 그만두게 돼서예요.


주중에 오너나 선생님, 임원진이랑 같이 식사를 하러 나갔었습니다. 그만두고 집에 돌아가냐고 물어보시기에 여기 있을 거라고 했더니 그럼 계속 있지…하고 아쉬운 듯한 소리를 하더라고요. 그쪽은 더 일해 주길 바라는 것 같았습니다. 그야 불러서 시키면 시키는 대로 일처리 다 빠릿하게 해 놨으니 놓치기야 아쉽겠죠.


참 그래요. 죽고 싶다고 말했듯이 인생 자체에 회의감을 느끼는 것도 있습니다. 나는 분명히 교과서에 나온 대로 착한 학생으로 살았는데, 사회에 나와서 일을 하다 보니 그런 지식은 아무것도 쓸모가 없네요. 열심히 살고, 또 책임감 있게 일하고, 일도 빠르게 진행했는데 그렇게 하면 할수록 더 부려 먹히는 것밖에 없는 그런 세상이에요. 약한 자를 돕고, 착하게 살수록 바보가 되어버리는 세상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어느 회사를 가든 마찬가지라는 건 압니다. 세상사가 다 그렇고 그래도 내가 열심히 하다 보면 아버지처럼 잘살 수 있겠지 하는 것도 압니다. 그럼, 어딜 가든 마찬가지라면 적어도 제가 만들고 싶은 책을 만들고, 근무 시간이 계약서와 다르지 않은, 8시간 근무에 복지도 보장되는 좋은 회사에 가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죽고 싶다는 생각에서 벗어난 건 1월 무렵 회사를 그만두기로 작정하고 나서였어요. 너무 힘들어서. 도저히 안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대로 가다간 제 명이 깎여서 못 살 것 같고, 내 몸이 축난다고 느꼈어요.


어쩌다 보니 주변 사람들에게는 거의 전달했습니다. 며칠 전에 동생A한테 연락이 와서(저번 집들이 때 언제쯤 그만둘 생각이라고 대강 말은 했었거든요) 이야기를 했는데, 그만두고 바로 직장 구하지 말고 몇 달 쉬라는 말이었어요. 또 친구들한테는 워낙에 회사에서 시달린 이야기를 많이 했어서 다들 축하한다는 반응이었어요. 오빠한테는 한 2주 전쯤에 이야기했습니다. 예상대로 오빠는 생각 없이 그만두는 것도 아니고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했어요.


정말 많이 힘들었습니다. 뭐가 그렇게 힘드냐고 하실지 모르겠는데 그냥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전부 다요. 다 지쳤어요. 뭐든 열심히 하는 법만 배워서 정작 아무것도 안 하고 몸도 마음도 전부 쉬게 하는 법은 하나도 배우질 못한 것 같습니다. 쉬고 있는 시간에도 뭔가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려요. 편지를 쓰고 있는 지금도 눈물이 납니다. 쉬고 싶어요.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편지를 받아도 두 분이 쉽사리 납득하실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더 못 버티겠어요. 자취방에서 시체로 발견되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가 해야겠다고 생각한 일을 했습니다.


일을 그만둬도 자취방에는 계속 있을 거예요. 어차피 본가에 있는 방은 제 방이 아닌 느낌이고, 지금 두 분이랑 같이 있으면 부딪힐 일이 더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다음 직장도 어찌 되었든 경력을 쌓은 이 일을 업으로 할 테니 어지간하면 이 근처가 아닐까 싶어서요. 방을 빼든 이사를 가든 그건 후의 일로 남겨뒀습니다.


하라는 대로만 살아서 지금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어요. 사회생활 하면서 회사 안에서, 밖에서 여러 사람을 만났습니다. 제가 너무 약한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죽는 것보다는 백번 낫다고 생각해요. 다음 주에 일이 마무리되면 수-목쯤 퇴사할 것 같습니다.


간단히 일하기 싫다는 사실만으로 퇴사를 결정한 건 아닙니다. 많이 고민했어요. 이 일에 대해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저를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또 인정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동안 고생했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저는 있는 그대로 두 분께 소중한 딸이라고. 그리고 이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되면 그때 연락해 주셨으면 합니다. 저는 최선이라 생각되는 선택을 했고, 그 책임 역시 제가 지기로 했으니까요.


지금으로선 남자를 만날 생각도 결혼할 생각도 없습니다. 따로 누군가를 사귈 생각도 없습니다. 부모님께 누가 되는 일은 하지 않을 테니 걱정 마세요. 다음 주엔 알아서 다녀오겠습니다(선 자리 나가는 일이었던 듯함. 지금 같으면 절대 안 나갔음ㅎ이것도 나중에 풀어보겠습니다)


제가 보는 세상은 두 분이 보는 것보다 훨씬 더 삭막하고 차가운 세상이에요. 그래도 가족이 있어서 더 살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랑해요. 이만 줄일게요.

===


편지를 쓰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오글거리겠거니 하고 넘겼는데, 이 편지를 다시 보면서 눈물바다가 됐다. 아마 직접적으로 있었던 일 중 많은 것은 기억속에서 산화되었지만 케케묵은 감정들은 고스란히 내 몸 안에 남아 있었던 거겠지. 몇 년도 더 된 일인데.


놀랍게도 이 편지에 적은 많은 것들에 지금도 공감하고 있다. 타인에게 인정받는 법을 내려두고, 내 자신을 인정하고, 받아들였다면 좀 더 버티기 수월했고 다른 방안을 찾아볼 수도 있었을 거란 생각 역시 든다. 그 외에도 결혼 생각이 없다거나, 현대인들이 모두 쉬는 방법을 잘 모른다거나 하는 이야기들. 그래도 그 회사를 나온 것에 대한 후회는 없다[여기 적은 것이 전부가 아니다. 나는 심각한 문제로 얘기할 상대가 필요해 술을 사달라고 했는데 그를 오해해 내게 좋아하는 사람이 있냐고 물은 사수나 탄산 씨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연차를 너무 많이 쓴다(15일 중에 10일 썼다...)며 관리질하는 인사팀장 등 까도 까도 또 깔 게 나온다. 양파 같은 출판사여!!!!!].


퇴사 후, 작은 자취방에서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며 샌드위치 하나를 먹는 삶에 얼마나 감사했는지 지금도 떠오른다.


시간이 지나고, 마지막으로 그 회사에서 알던 친한 동료마저 퇴사한 후에, 우리는 각기 다른 출판사에 입사해 또 다시 파주출판단지로 왔다. 냄새꼬는 셔틀버스에서 내 동료에게 아는 척을 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 동료가 퇴사할 때 편집장은 "탄산이랑 연락되니? 그럼 나한테 연락 좀 하라고 해"라는 전언을 남겼다고 한다. 내가 왜? 당신 때문에 죽고 싶었는데 대체 왜? 나는 코웃음을 치며 무시했다.


지금도 가끔 출판사 평판조회방에 그 회사에 대한 질문이 나오면 나는 치를 떨며 답해 준다. 절대로 가지 말라고. 정신병을 얻을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이라고.


혹시나 위와 같은 상황에, 혹은 비슷한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면 그게 누구든, 언제든 꼭 더 심각한 병을 얻기 전에 퇴사하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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