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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탄산 Oct 19. 2021

1. 맛집 네비게이터가 된 사연

맛집 찾는 법








합정에 있는 출판사에 근무하던 시절부터 친구들은 나를 '맛잘러'로 불렀다. 탄산이 가자고 해서 찾아간 음식점은 절대 실패하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나는 초록창의 검색을 통해 수많은 합정 맛집 등을 검색했었고, 몇 번의 실패를 통해 찐맛집을 고르는 나름의 기준을 몇 가지 가지고 있다. 이렇게 맛집의 기준이 까다로워진 데는 나름의 사연이 있다.


내 첫 직장은 파주에 있는 출판사였다. 거기다 출퇴근 시간을 아끼기 위해 파주에 월세방에서 살고 있었다. 합정역 n번 출구에서 파주로 향하는 2200번 버스를 탈 때마다 나는 유배지로 끌려가는 느낌을 받았다. 


그도 그럴 게 파주 출판단지를 조금만 벗어나면 주변은 산과 강과 논밭이었고, 파주출판단지에 가까운 빌라촌은 휑하기 그지 없었다. 자차가 아니라면 어디 가기조차 힘든 유배지. 거기서도 학교 근처거나 주택단지가 밀집해 있는 번화가를 벗어나면 밤새 동네에서 살인사건이 있었다고 해도 믿을 만큼 휑한 곳이었다. 교수님이 집 근처 사진을 보시고는 어디 외국이냐고 언급할 정도였다. 날이 좋을 때는 도보로 퇴근을 하기도 했는데 바람을 따라 흔들리는 벼를 보고 있자면 <살인의 추억> 같은 영화가 떠오르곤 했다.


그 당시 내 인생의 낙은 천사 같은 최애 덕질과 주말마다 출판단지를 벗어나 만나는 친구들과 찾아가는 맛집이었다. 어느 정도였냐면 특정 동네에 찾아가는 이유가 그 맛집이 있기 때문이었다. 어디 초밥이 밥 양은 적고 회는 엄청 두툼하고 크게 썰어준다더라, 화로구이 무한리필이 있는데 그렇게 맛있다더라, 마카롱 신상 맛집이 생겼다더라 하면 굳이 그 음식점에 가기 위해 약속을 잡았다.


다행히도 그때 자주 본 친구들은 맛집 투어에 흔쾌히 어울려 주었고 한식, 중식, 일식, 양식에 이어 디저트까지 가리는 것도 없어 오만 걸 먹으러 다녔다. 이유도 가지각색이었다. 30년 넘게 장사한 동네 노포라서, 족발을 이렇게 썰어주는 데는 여기밖에 없어서, 먹방 어느 연예인이 극찬한 집이라서 등등. 전국의 맛있는 디저트가 다 모여 있다는 백화점 식품관에 미쳐 파주로 돌아가는 길에 디저트를 바리바리 들고 가기도 했다. 평일에는 주로 집밥, 회사 식당에서 주는 밥을 먹고, 주말에만 맛집을 찾아다니며 먹었다. 하도 돌아다녀서 특별히 몸무게에 큰 변화도 없었다.


맛집 투어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길이면 늘 숨이 턱 막혔다. 2호선을 타고 당산에서 합정으로 넘어가는 그 풍경을 나는 지지리도 싫어했다. 다들 예쁘다 하는 풍경이 내 눈에는 그렇게 지옥같을 수가 없었다. 2200번 광역 버스에 오르는 것 역시 너무나 싫었다. 유배지로 복귀하는 그 기분. 하지만 파주에서 벗어나면 나 역시 출퇴근 시간 동안 이 버스에 낑겨 다녀야 할 터였다. 그건 파주에 사는 것보다 더 끔찍했다.


죽을 것 같아서 퇴사하고 난 후, 파주출판단지를 그렇게 싫어하지는 않게 되었지만, 굳이 출판사들을 파주로 몰아넣은 국가의 지원 정책에 대해서는 할 말이 아주 많다. 사옥을 짓고, 몇 년간 세금을 감면해주는 등 대충 주워들은 몇 가지 지원(노동자에게는 전혀 없고 회사 사장들에게만 좋은)이란 이름하에 출판노동자들은 날마다 지옥같은 버스를 타고 있었다. 몇 년 후에 2층 버스가 생기고 버스 배차가 바뀌고 셔틀 버스가 생기는 등 교통 문제가 개선되었다고는 하지만 이제 파주로 출근하지 않기 때문에 알 수가 없다.


망원에 자리를 잡게 되면서 피 같은 월세를 내고 살았지만, 그만큼 서울을 돌아다닐 자유가 주어졌다. 주말에만 힘들게 돌아다닐 게 아니라 평일에도 여러 곳에 가볼 수 있는 접근성이 확보됐다. 망원, 합정, 홍대 부근만 해도 가보고 싶은 곳이 널려 있었다. 


먹고 싶은 것이 생기면 며칠 내로 그 음식을 먹어야 하는 일종의 병도 이때쯤 생긴 것 같다. 왜 무언가가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몸에서 그 음식에 포함된 영양소가 부족해서 그렇다는 말이 있지 않나? 나는 그랬다.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없는 음식을 제외하고는 먹고 싶은 게 생기면 당장 같이 갈 사람을 모집했고, 없을 경우엔 혼자라도 갔다. 혼자, 둘, 셋, 넷, 먹을 때마다 인원수는 달랐지만, 


밀가루를 좋아하기 때문에 빵집, 수타면집도 수도 없이 찾아다녔고, 크레페나 마카롱, 치즈케이크, 타르트 등 맛집 리스트는 늘어갔다. 단점은 이 부근은 지역 자체가 트랜드에 민감하고, 땅값도 높은 곳들이라 음식이 맛이 없다면 쉽게 살아남을 수 없는 곳이라 맛집이어도 사라질 수 있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이런 평가들도 전부 개인적인 감상일 뿐. 맛집이라는 평가를 내리기에는 개개인의 편차가 너무나 크다. 프랑스에서 먹었던 마카롱을 생각하면 한국 땅 어디에도 그때의 마카롱을 재현할 수 있는 마카롱은 없다. 그나마 홍대에 있던 마카롱 집에 루벤 셰프가 귀국해버린 후에는 그 맛을 어디서도 찾을 수가 없게 됐다.... 하지만 다수의 사람들이 라뒤레 마카롱이 맛있다며 먹고 스타벅스 마카롱을 좋아하는 사람도 많다. 달지 않아 맛있다고 하는 한국인들이 많지만 디저트는 원래 달기 때문에 맛있는 거라는 그 말 그대로, 입맛에는 개인의 판단이 들어가기 마련이다. 


또한 그런 판단을 하기까지 그가 살아온 역사도 봐야 하지 않을까. 고기만 먹고 살아온 사람이 채소를 먹는다고 신세계를 경험하게 될까? 이것 역시 사람 바이 사람이라는 답을 할 수밖에 없다. 내 입에는 별로여도 다른 사람이 좋아하는 맛일 수 있다. 그리고 꼭 맛있어서만 밥을 먹는 건 아니다. 다이어트를 위해서라는 이유는 흔하고, 사람이 대충 챙겨먹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1인 가구는 밥을 제대로 챙겨 먹기 힘들기 때문에, 해먹는 것보다 배달이 더 싸서 등 사정은 가지각색일 테니까.


그래도 보편적으로 '이런 집을 맛집이라고 해도 괜찮은가?'라는 기준은 있었으면 좋겠다. 하기사 애초에 맛을 그렇게 따지는 사람이면 '맛집'이라는 표현을 아무 데나 쓰진 않을 것 같다.


시대에 따라 달라지지만, 맛집 검색 요령은 갈수록 달라지고 있다. 예전에는 오빠랑 ㅇㅇ 맛집을 애용했다면 점점 바이럴 마케팅에 이 단어를 쓰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이제는 쓸 수 없는 검색어가 됐다. 존맛, 맛집 추천 등의 검색은 써먹을 수 없게 된 지 오래다.


그래서 내 기준 맛집 찾는 법을 적어본다.


맛집 찾는 법


글쓴이가 실제 그 동네에 거주하거나 자주 가는 사람인지 확인할 것.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실생활 반경이 그렇게 넓은 사람은 드물다. 자차가 있다고 해도 사람의 생활권은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일산에 있던 사람이 강남에 가서 밥을 먹고 다음은 부산, 다음은 대전? 홍길동도 아니고. 90% 바이럴이다. 실제 출장이나 이동이 잦은 직무 종사자일 가능성도 있지만, 돈 받고 글 쓸 확률이 매우 높다. 그와 함께 이 사람의 음식 취향이 나와 맞는지 역시 살펴보면 더 좋다.


+'이 게시글은 업체로부터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라는 문구가 있는 게시글을 거른다.

뜨기 전까지 맛집이 되고 싶은 가게들이 특정 마케팅을 진행하기도 한다. 하지만 맛집 리스트를 올리는 그 순간부터 당신의 쪽지함과 메일함 등은 지금 바로 지원해보세요!!나 한 달에 150씩 드릴 수 있다는 블로그마케팅에 휘둘리게 된다. 진짜 맛집인데 진행할 수도 있지! 그렇지만 대다수는? 평타, 쏘쏘 정도의 집이지 맛집을 붙일 수 있는 가게가 아니었다.


+동네주민들이 줄 서서 먹는지 확인한다.

코로나로 인해 거의 사라지긴 했지만, 홍대 부근엔 한때 그런 가게들이 즐비했다. 외국인을 상대로 여행업체를 끼고 장사하는 식당들. 외국인에겐 맛집으로 알려졌지만 정작 한국인들은 거의 가지 않는 그런 식당. 여행사와 짜고 치는 고스톱이란 생각이 들지만 홍대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그런 가게에 가지 않는다. 실거주자들이 자주 가는 곳인가? 좋은 가게는 부르지 않아도 사람들이 많이 간다. 


+검색 후 이미지 보기로 같은 사진이 사용된 게시글이 있는지 확인할 것.

비슷한 사진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똑같은 사진은 없다. 같은 사람이 두세 번 촬영하지 않은 이상 빛, 각도, 보정 모두 같을 수는 없다. 중복사진이 있다면 한쪽이 불펌이 아닌 이상, 100% 바이럴.

사진이 너무 많은 경우도 주의해야 한다. 블로그 업로드를 위해 일부러 사진을 열심히 찍었을 수도 있지만, 사진이 20~30장 사이여야 노출이 잘된다는 특정 바이럴 팀의 의도대로일 수 있다. 오히려 찐 맛집을 소개하고 싶은 사람들은 사진은 몇 장 없고 글로 표현할지도 모른다.


게시글 업로드 주기를 확인할 것

핵가족화가 진행되고 1인가구는 대다수 외식과 배달로 연명하는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해도 바깥 음식을 먹는 데는 한계가 있다. 사람이 아무리 먹는 것을 좋아해도 시간적, 공간적 여건상 매일같이 맛집만 찾아다닐 수는 없다. 또 맛집이 아니더라도 개인적인 이야기가 없이 전부 광고만 하는 블로그라면? 볼 것도 없이 거른다.


가게 화장실이 깨끗한지 확인한다.

생각보다 중요하게 생각지 않는 사람들이 많더라. 가게 화장실이 더럽다면 주방은 깨끗할까?란 생각으로 확인해보자. 위생 및 청결에 예민한 친구를 맛집이라서 데려갔더니 먹고 나서 바로 두드러기가 올라온 적이 있었다.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게 아니지만 적어도 보이는 게 깨끗해야 먹는 것도 깨끗할 수 있다. 이건 맛을 떠나서 생각해야 할 문제다. 주의하자.


사람들이 맛집을 찾는 이유는 뭘까? 음식을 먹음으로써 느낄 수 있는 만족감은 다른 것들보다 쉽게 접할 수 있는 행복이니까. 소확행이라고 하기엔 마카롱 하나 가격만 해도 맛있는 음식은 누구나 쉽게 누릴 수 있는 행복이 됐다. 이왕 먹을 거라면 맛있는 걸 먹는 게 좋고 또 좋은 사람과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행복은 더 커지기 때문일 것이다.


맛집 찾는 이야기만 줄줄 늘어놨지만, 나는 집밥도 좋아하고 직접 품을 들이는 요리도 좋아하는 편이다. 조리가 힘들거나 품을 많이 들이는 요리가 아니고서야 집에서 직접 해먹는 경우가 많다. 맛있다는 레시피가 돌아다니면 한번쯤 시도해보기도 하고 또 조합하고 싶은 재료들을 모아 새로이 요리를 만들기도 한다. 그러니 맛집을 외식에만 한정하지는 말자. 집에서도 얼마든지 맛집을 만날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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