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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탄산 Nov 02. 2021

2. 정리와 정신의 상관관계

정리 못하는 병






1인 가구는 자유롭다. 밥은 내가 내킬 때 먹으면 되고, 청소기를 미는 것도, 걸레질하는 시간도 내 마음대로다. 1인 가구는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롭다. 그렇기에 그에 따르는 책임 역시 가구주이자 세대주인 나의 몫이다.


혼자 산 지 어언 10년, 며칠 전 나는 집에 두 사람을 초대했다. 전 회사 팀장님과 대리님. 자주 연락을 주고받으며 주기적으로 만나는 사이라 함께 보드게임을 하고 수다를 떠는 걸 보고 다른 친구들은 어떻게 회사 사람들과 그렇게 지낼 수 있냐는 의문을 표하기도 했다. 그치만 그 회사의 사람들과 분위기는 좋았으니까(사장이 문제였ㄷr). 그리고 방문한 팀장님의 한마디.


"탄산!! 이제 우리가 편해진 거야?! 정리도 안 해놓고!"


네. 편한 건 맞죠. 정리하기도 너무 귀찮고...

이 자리를 빌려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나는 정리를 정말 못한다. 못 한다가 아니라 못한다. 어느 정도냐면 진짜 더럽게 못한다.


책 무더기를 놓고 치우라고 하면 책장에 책을 꽂는 게 아니라 한구석에 차곡차곡 쌓아둔다. 지금은 책을 꽂을 보관 공간이 부족해 정말 방 한구석에 책을 말 그대로 쌓아두고 있다. 추가로 수납될 공간을 찾지 못한 아이들을 어디에 어떻게 넣어야 할지도 잘 모르겠다. 깔끔하게 정리하면 좋을 텐데, 놓을 공간은 부족하다. 종이책보다 전자책 구매를 선호하게 된 데다 월정액 구독 서비스를 이용하는 이유 중 하나기도 하다.


침대에서 일어나 이불을 개는 것도 이해할 수가 없다. 개어놔도 어차피 저녁이 되면 퇴근하고 씻고 놀다가 다시 들어갈 이불 아닌가. 이렇다 보니 밥 먹고 바로 설거지하는 사람은 뭐가 되도 될 사람이라는 말에 적극 공감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1인 가구라는 자유를 얻은 나는 정말 손도 못 댈 상태까지 정리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먹는 것과 관련해서는 또 까다로운데 요리를 해먹는 것까진 부지런하지만 설거지만큼은 도저히 반길 수가 없는 편이다(설거지는 생기자마자 바로바로 하는 게 가장 좋습니다). 특히 개인정보가 표시된 우편물, 약 봉투 등은 버리기 전까지 한참을 모으고 모으다 '아 이제 좀 치워야지' 싶을 때 간신히 버리는 편이다. 택배 송장처럼 종이에 향수를 뿌려서 글자가 싹 지워지면 좋을 텐데.


그렇게 정리되지 않은 공간을 마주할 때마다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지금 건강한가?


나의 정리정돈이 망한 탓과 귀찮음이 합쳐져 이 모양이 된 것인지, 또 정신이 힘들어 도저히 집안일을 할 수 없는 상태라 애써 회피하고 있는 것인지 고민해본다. 회피하고 있다면 무엇을 피하고 있는지, 어떤 것 때문에 힘든 것인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건 병원에 갈 정도의 심각함인가, 아니면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정도인가. 스트레스 때문이라면 어떻게 풀어줄지를 고민해본다. 밖에 나갈 것인지, 조용히 책을 읽을지, 좋아하는 카페에 갈지, 맛있는 걸 먹을지 고민해 심연 같은 내 마음속을 마주한다.


이유가 어찌 되었든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지경(이 기준은 개개인에 따라 다르지만 적어도 TV에 나올 만큼 심각한 수준이었던 적은 없다 Never!...고 생각합니다)에 이르면 강제로라도 정리를 한다.


정리는 주로 시간 여유가 있는 주말에 하는 편이다. 빈 탄산수병을 들어다 비닐과 패트병을 분리수거하고,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오만 것들을 주워 있어야 할 자리에 옮겨둔다(글을 쓰고 있는 지금 생각해보니 우리 집 거실에는 간편 닭칼국수 만들기 한 봉지가 널브러져 있다). 에어프라이어에 남아있던 종이 호일도 처리하고 통도 세척한다. 토스터의 밑바닥에 떨어진 빵 부스러기들과 커피를 내리는 데 썼던 드리퍼와 숟가락까지 전부 싱크대로 넣어버린다. 고무장갑을 끼고 수세미에 주방 세재를 뿌린다. 평일 동안 쌓인 빨래는 전부 세탁기에 돌리고, 그 사이 욕실 청소에 청소기와 걸레질까지 싹 마친다.


이마저도 버거울 때는 정말 정리 업체를 불러서 정리를 해야 하나 싶을 때도 있다. 그럼 수중의 돈과 정리의 가치를 저울질해보다 결국은 스스로 정리하기를 택하고 만다. 누군가를 불러 정리해도 내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고, 생활하다 보면 금방 또다시 어지르게 되어 있다. 그러니 내 정리를 내가 직접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


사람이 정리를 좀 못할 수도 있지! 그치만 정리를 못하는 것과 마음에 문제가 있어 정리할 수 없는 것은 구분해야 할 필요가 있다. 비록 정리해야 한다는 결과는 같을지라도 그 원인을 살펴보면서 내 안에 쌓인 감정들을 정리해나갈 수 있으니까. 그렇게 돌아보다 한번 펑펑 울고 털어내는 것도 아주 좋은 방법이다. 한 달에 한 번 정도의 눈물은 사람의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된답니다. 여행이나 퇴사를 고려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요. 그래도 궁극적으로, 현실적으로 해결이 안 될 때는... 우리 존재 파이팅!


이 글을 쓰면서 책상을 봤는데 내 자리에는 보도자료와 보던 교정지, 펜, 초콜릿, 과자, 귤, 집게, 스테이플러, 핸드크림, 칫솔, 치약, 현금 등 정말 많은 것이 말 그대로 널브러져 있었다. 하지만 대충 어디에 뭐가 있는지는 알고 있다구요~! 그러니까 이해해주세요. 음... 그냥 정리 못하는 병에 걸린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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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지난 글을 올리고 2주째가 되는 날이라 부랴부랴 글을 썼다. 글 쓸 주제가 뭐가 있지 고민하는 것도 생각보다 시간이 꽤 걸리네요. 좀 더 부지런해지겠습니다. -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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