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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곰돌이 Jan 08. 2021

아빠의 한 겨울밤의 꿈.

아들의 속사정.

평소 엄마 센서가 달려있는 둘째 (이제 4세, 아직 만 33개월, 아들)는 기가 막히게 엄마가 없으면 자다가 깨서 엄마를 애타게 찾는다. 아무리 내가 달래주어도 엄마가 올 때까지 운다.




왜 그런지는 몰라도 항상 가로로 자는 아이들 덕분에 나는 바닥에서 매트를 깔고 첫째와 자고 아내가 침대에서 둘째와 잔다. 원래는 나의 숙면을 위해 내가 혼자 자려고 내려온 건데, 첫째가 같이 내려와서 잔다. 내가 좋다기보다는 동생이 귀찮게 해서 그런다. 


아내는 준비 중인 자격시험이 있기 때문에 하루 종일 공부를 하고 새벽에도 거실에서 공부를 한다. 그래서 아들은 거의 매일 밤 최소 한두 번은 자다가 깨서 엄마를 찾는다. 오늘 새벽에도 역시나 애타게 엄마를 찾았다.


물을 마시는지 엄마를 찾으러 나갔는지 밖에 나갔던 둘째가 피곤에 절은 칭얼거림을 장착하고 방으로 되돌아왔다. 나는 잠결에도 얼른 둘째를 재워야 아내가 공부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아들 이리로 와" 하며 두 팔을 벌렸다. 아이를 재우려면 침대로 올라갔어야 하지만, 간밤에 유난히 이단옆차기를 해대는 첫째 덕에 나도 너무 피곤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평소 같으면 절대 신경도 안 쓰고 침대로 혼자 올라갔을 둘째가 아빠품으로 쏙 안겨드는 것이 아닌가. 그러고는 아빠와 누나사이에 끼여서 잠이 들었다. 방이 협소하기 때문에 나랑 첫째가 바로 누워도 어깨가 닿는데, 그렇게 셋이서 한 뭉치가 되어서 잠이 들었다.


그 와중에도 나는 이번 주가 둘째 녀석 어린이집 방학이라서 아빠가 독박 육아를 했더니 이제 좀 정이 붙어서 엄마를 덜 찾고 아빠 품으로 와주었구나 생각하며 흐뭇하게 잠이 들기는 개뿔. 엉덩이는 첫째가 차고 머리는 둘째가 박치기하고, 떼어 놓으면 둘째가 얼굴로 올라와서 숨 막히고, 밀어놓으면 누나 머리카락 쥐어뜯고, 사투를 벌이다가 5시 반이 되어서 잠이 깨었다.


방을 빠져나오기 전 마지막 광경도 둘째가 두 다리를 모두 가지런히 누나의 배 위에 올려놓고 있었다. 자세를 바로잡아주고 밖으로 나와 아내와 교대를 했다. 이제 아내가 방으로 들어가 한 시간 정도 자면 내가 깨워주고 첫째 등원 준비를 다 같이 하면 된다.


새벽에 아들의 뛰어듦으로 나는 하루를 그렇게 흐뭇하게 보냈더랬다. 오늘따라 놀아달라는 둘째가 어찌 그리 사랑스럽던지. 힘들면 데려다가 두라는 장모님 말씀에도 괜찮다며 혼자 꾸역꾸역 잘 놀아주고, 집에 돌아온 엄마에게 인계해주었다.




그런데 방금 전, 아내가 침대 패드를 들고 와 나에게 물었다.


"여보 이거 다 말랐나 봐 봐."


그런데 생각해보니 신기한 게, 보통 감각은 여자들이 더 섬세하지 않나? 심지어 나는 다한증도 있는데 꼭 빨래가 다 말랐는지 나보고 확인해보라고 한다. 아무튼 방금 건조기에서 꺼낸 극세사 침대패드는 잘 말라서 부드럽고 좋았다.


"근데 이거 왜 빨았어?"


"어젯밤에 아들이 오줌 쌌잖아.

그래서 자기랑 아래서 잤잖아."


그 뒤로도 아내가 뭐라고 말한 거 같은데 이상하게 먹먹하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렇다 아들은 아빠랑 정이 들어서 기꺼이 아빠품으로 달려든 게 아니고 지가 쉬한 침대에서 자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뭔가 "띠------" 하는 소리와 함께 이성이 끊어졌다가 되돌아오니 아내가 아직도 이야기하고 있었다.


"진짜 웃기지 그렇다고 침대 안 올라가고

거기서 그렇게 끼여서 자냐 그래."


그래 진짜 웃기다. 그런 녀석을 이쁘다고 오늘 내가 그렇게 물고 빨고, 인터넷으로 사달라는 슈퍼윙스 장난감도 냉큼 주문해주고. 아 주문 취소. 하려고 했더니 부지런한 판매자님은 왜 벌써 상품을 발송하셨나. 허허.




오늘은 아들이 낮잠을 자는 사이에 나도 아들 노릇을 좀 했다. 아버지께서 부탁하신 미국의 한 회사 홈페이지를 번역했는데, 요즘 아버지께서 푹 빠지신 분야에서 꽤 선도적인 기업인 듯했다. 농업이나 축산업이 늘 그러하듯이 같은 용어를 써도 일반적인 사전에는 업계에서 통용하는 뜻은 잘 안 나오기 때문에 구글, 네이버, 영한, 한영, 영영 사전 등을 돌아다니고 비슷한 업계의 한국기업도 찾아보고 했더니 제법 시간이 많이 걸렸다.


요즘 늘 아빠이기만 하다가 오늘 아들이 되었더니 기분이 묘했다. 늘 아들인데, 오늘은 목적 있는 아들이었다. 맞아. 나도 아들인데. 아버지에게 사랑한다는 말씀은 언제 해드렸더라? 내가 받는 이 사랑이 오해임에도 이렇게 행복한데, 나는 그 사랑 아버지께 어머니께 표현해드리고 있나?


오늘 나는 아들로 (딸로) 살고 있습니까?

나의 부모님은 나의 어떤 작은 모습에 부모임을 느끼고 행복하실까 생각해본다. 두둑한 용돈만은 아니길.

 

자다가 깨서 아버지 품으로 뛰어드는 4살 아들만큼이나 사랑스러운 아이가 또 있을까? 이런 거 하라고 유학까지 보내줬더니 고거 하루 잠깐 해놓고 이렇게 생색내고 싶어 하는 아들이 또 있을까? 이것도 다 아버지를 사랑한다는 나의 표현이다. 아버지의 사랑 표현은 용돈이면 더 좋고.


이런 이중적인 나. 이게 바로 아빠이자 아들인 나.


오늘도 아빠로 수고했다. 아들로는.... 글쎄.... 분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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