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리를 먹다가 두 가지 이상 서로 다른 색이나 모양의 젤리가 나오면 조막만 한 손에 한가득 올려두고 온 가족을 찾아다니며 물어본다.
"아빠 (엄마, 누나) 어떤 게 좋아?"
"음... 아빠는 노란색."
"그래. 그거 먹어."
젤리만이 아니다. 색칠 놀이를 하다가도 누가 옆에 있으면 색연필이나 크레파스를 가리키며 물어본다.
"어떤 게 (어떤 색이) 좋아?"
자기 전에 읽어주는 자연관찰책도 들고 다니며 온 가족에게 물어본다. 마치 식당에서 메뉴를 들고 다니며 주문을 받는 사람처럼 한 사람 한 사람 찾아다니며 책을 펴두고, 예를 들어 "개"에 관한 책이면 맨 뒷장에 여러 종류의 개 사진을 가리키며, "어떤 게 좋아?"
공룡놀이를 하다가도, 여러 종류의 공룡을 죽 늘어놓으며 "아빠 어떤 게 좋아?"
무엇이든지 두 가지 이상의 선택지가 있으면 주변 가족에게 꼭 어떤 것이 좋은지 물어보고, 그것을 함께 나눌 기회를 준다. 그게 먹을 것이든, 장난감이든, 그림을 그리는 색연필이든, 전혀 가질 수 없는 책 속의 상어나 개, 고양이도 모두 "원하는 것"으로 나눠주며 자기와 "함께"하기를 요청한다.
나는 내 개인 소유물에 대한 집착이 매우 강한 편이라 내 것을 누군가와 나누어 쓰는 것을 싫어한다. 특히 내가 아끼는 문구류나 디지털기기의 경우 무엇이든 손만 대면 고장을 내는 "마이너스의 손" 아내와 아이들조차 절대 접근금지다. 어릴 적부터 누나도 그랬기에 남들 다 그런 줄 알았는데, 우리가 좀 특이한 거였다. 그런 나에게 둘째는 정말 신기하고 놀라운 존재다.
그런데 마냥 무조건 잘 나누어 주는 것은 아니다.
둘째도 어떤 게 좋으냐고 물어볼 때 은근히 자기가 마음속에 골라둔 것이 있다. 그리고 상대방이 그것을 고르지 않기를 바라면서 물어본다. 예를 들면 공룡 장난감 중에 티라노사우르스와 스테고사우르스가 있다.
"아빠 어떤 게 좋아?"
"공룡의 왕 티라노지!"
하며 덥석 티라노를 집었더랬다. 그랬더니 세상 서운하고 속상한 표정과 목소리로
"아빠 내가 티라노 좋아하잖아.
그것도 몰라. 우엥."
(아니, 넌 파키케팔로사우르스가 가장 좋다며.)
"어 그래 그럼 아빠가 스테고 할게,
아들이 티라노 해."
언제 그랬냐는 듯 울음을 그치고
"그래, 그럼 이거 같이 놀자."
하며 손에 스테고사우르스를 쥐어준다. 그러면 꼼짝없이 최소 5분은 놀아줘야 한다. 열정적으로. 스토리라인도 살려서. 스토리도 내가 짜고 목소리도 거의 내가 내고 심지어 내가 육식 공룡이든 수장룡이든 익룡이든 손에 뭘 쥐고 있든지 아들이 들고 있는 공룡한테 먹히든, 꼬리에 맞아 죽 든, 부리에 쪼여 죽든, 결말은 제 맘대로다.
젤리도, "아빠 어떤 게 좋아?"
"아빠는 사과맛 초록색!"
"내가 초록색 좋아하잖아~~ 우엥."
"그냥 다음부터는 네 거 골라놓고 물어보던지 그냥 너 다 먹던지 할래?"
답.정.너. 인 셈이다. 그런데 그 답이 매일 조금씩 바뀐다. 마치 여자 친구가 "자기야, 나 뭐 달라진 거 없어?" 하는 느낌인 것이다. 귀여운 나눔이 아니고, 얘가 요즘 뭐가 좋다고 했었는지를 기억해야 하는 기억력 테스트이기도 하다.
같이 놀아주다 보면,
"난 프테라노돈이 좋아."
할 때가 있다.
그날은 프테라노돈은 무조건 고르면 안 되는 거다.
색은 거의 집착일 정도로 1 픽이 무조건 보라색이라 좀 쉬운데, 선택지 중에 보라가 없을 경우 2 픽은 보통 초록이다. 그래서 빨강을 고르면 "그건 공주님들 먹는 거잖아."
주기 싫으면 고르라고 하지를 말던지.
포인트는 "너 이거 좋아하니까 아빠는 저거 할게."하고 선심을 써주면 실망하기 때문에 엄청 고민하는 척을 하면서 둘째의 애정템을 피해야 하는 연기력이다. 아니면 아내처럼 정말 아무 생각 없이 골라도 되고. 울면 바꿔주면 그만이니까.
나에 대한 모든 것을 아빠는 알고 있을 거라는 믿음 같은걸 확인하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내가 오늘 뭐가 좋다고 했었는지 아빠가 들었을까. 내가 평소에 어떤 색을 좋아하고 어떤 맛을 즐겨먹는지 아빠가 알고 있을까? 둘째의 질문에는 관심과 사랑이 숨어있는 건 아닐까?
또는 둘째의 질문은 일종의 초대다. 영화 매트릭스처럼. 무슨 알약을 고르던 현실은 아들과 놀아주기인 것이다. 젤리를 나누어 먹던, 공룡을 가지고 놀던, 책에 있는 상어를 고르던 "함께하고 싶은 것"이다. 상대방을 자신과 자연스럽게 함께 하도록 하는 아들만의 방법이다. 마치 "네가 원하는 거로 놀게 해 줄 테니 나와 같이 놀지 않을래?" 하는 초대이다.
그래도 젤리가 두 개밖에 남지 않는다 해도 여전히 물어보고 하나를 준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 자기가 먹고 싶은 것은 있어도, 자기만 하고 싶은 것 자기만 먹고 싶은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사랑과 나눔을 실천하는 아이라서 더 사랑스럽다.
엊그제 밤새고 나서 어제는 기운이 없어 책상에 널브러진 나에게 "아빠 이거 좋다고 했잖아."라고하며 누나가 가지고 놀던 티라노 (집에는 티라노가 여럿인데 그중에서도 나는 콜렉타 사에서 나온 미니어처 "깃털 버전 티라노사우르스"를 가장 좋아한다.)를 책상에 슬쩍 놓아두고 갈 때면 정말 너무너무너무 귀엽고 사랑스럽다. 이 맛에 아빠를 한다.
아마도 '이제 그만 일어나서 나랑 놀지 않을래?' 뭐 이런 뜻이었던 것 같지만, 그래도 너무 귀엽다. 그 작은 손으로 아빠가 좋아하는 공룡을 골라오는 조그만 아이의 커다란 마음이 포근하다. 존재만으로 나를 미소 짓게 만드는 저 아이의 사랑스러움이 설렌다.
나는 자식으로서 어떤 매력으로 부모님 두 분을 뼈 빠지게 고생시켰을까. 내 어디가 그렇게 예뻐서 유학도 보내주고 26살이나 먹어서 군대 가는 아들을 뒤따라오며 엄마는 눈물을 펑펑 흘리셨을까.
티 블렌딩을 배운다고 하니 "지금 그런 것을 무엇하러 배우냐"라고 하시면서도 내가 보니 몇 주간이나 이발을 못하더라며 혹시 돈이 부족해서 그러냐면서 봉투를 주시는 아버지. 그 나이에도 공부하는 것이 기특하다며 책값에 보태라고 또 봉투를, 게다가 센스 있게 와이프한테 말하면 빼앗길지 모르니 몰래 가지고 가라던 어머니. 아내들이 다 본인 같은 줄 아시나 본데. 다 그런 것 같습니다.
절대 이해할 수 없을 것 같던 부모님 사랑을, 부모가 되고 나서야 어렴풋이나마 짐작이라도 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감사한 일이면서 정말 큰 짐이다. 알지 못했다면 이렇게 내가 드리는 것에 부족함을 못 느꼈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