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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티 May 30. 2021

시험에 떨어졌을 때 부모의 말
"정말 잘됐다!"

정말 잘 된 일들이 참 많다

"정말 잘됐다!"


이 말은 먼저 꺼낸 건 남편이었다. 나도 동조했다. 


"그렇네, 정말 잘됐어!"


이럴 때는 부창부수 박자가 좀 맞는다. 


아들은 3년 동안 세 번 시험을 쳤다. 어릴 때부터 가고 싶었던, 목표로 세웠던 학교에 "떨어졌다"는 소식을 전했는데 부모가 생각과는 다르게, 이상하게 반응했다. 그러니 좀 당황했다.  


"잘. 된. 거. 는. 아닌데요?!?!"


아들의 표정이 엉거주춤하다. 기분이 안 좋으려고 했는데 저렇게 좋아하는 부모를 보니 안 좋은 기분이 사라질까 말까 고민 중인 것 같았다. 실망할 겨를이 없다. 부모 반응이 이러니 좌절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다. 표정이 점점 밝아진다.


우리에게는 한 가지 길만 있지 않다. 

항상 다른 길이 있다. 

다른 길이 더 좋을지 안 좋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기대가 될 뿐이다. 




3년 준비한 학교에 떨어져도


아들은 조금 똑똑했다. 사실 겸양을 떠는 말이다. 내 기준으로는 너무 똑똑했다. 

전형적인 문과형 인간이었던 우리 부부에게 아들을 키우는 것은 신세계에 가까웠다. 아이는 숫자에 관해 엄청나게 관심을 보였다. 발음도 제대로 안 되는 아이가 버스번호를 분별하고 다리 이름은 항상 번호와 함께 말했다. 그전까지는 강 따라 늘어서 있는 다리에 순번이 매겨져 있는지도 몰랐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영재교육을 받게 되었다. 아이가 어릴 때 영재교육진흥법이 만들어졌고 영재교육원, 영재학교가 세워졌다. 초등학교 때부터 지역 대학에서 운영하는 영재교육원에 다니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과학영재학교 가는 게 목표가 되었다. 


지원 자격이 있는 중1 때부터 영재학교에 지원하기 시작했다. 맛보기처럼 아무 준비 없이 그냥 지원했다. 난공불락처럼 모르는 것 투성이라고 했다. 중2 때 다시 해보니 조금 풀 수 있는 것들이 있다고 했다. 일반 과학학원에 다니며 선행학습을 하고 있었는데, 중3 때는 시험을 앞두고 3주 정도 영재학교 입시를 위한 학원에 다녔다. 2차 필기시험을 보고 난 후 "쉽지 않았다. 합격하기 어려울 것 같다"라고 말했는데, 아이가 합격했다. 3차 캠프전형에 다녀온 후 자신감을 보였다. 2차보다는 훨씬 편하고 쉽게 느껴졌다는 것이다. 2차에 어렵다고 했는데도 합격했으니, 3차를 통과하는 최종 합격이 눈앞에 있는 것 같아 보였다. 


3차 캠프에 데려다주고 오는 길에 남편과 나는 절에 들러 정성껏 기도를 했다. 불교신자가 아니면서도 마음을 모일 일이 있으면 절에 가서 초를 켜게 된다. 삼배를 올린 후, 법당에 앉아 오래 마음을 모았다. 종교가 없는 사람이 기도를 하고 싶을 때 찾을 수 있는 곳이 절이고 보면, 불교는 우리에게 민간신앙에 가깝게 되었다. 시험을 본 아이의 반응도 괜찮고, 기도를 했던 우리의 느낌도 좋았기에 좋은 소식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과학영재학교 최종합격자 발표날, 기다리고 기다렸던 말 대신 아이가 던진 말은 "떨어졌어요"였다.


실망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영재학교에 가면 아이는 우리나라 고등학교에서 해야 하는 짜인 수업이 아니라, 듣고 싶은 수업을 마음껏 골라서 들을 수 있고, 카이스트와 연계한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할 것이었다. 다양한 자극과 선택이 있는 학교에 다닐 수 있다면 얻을 수 있는 게 많았다. 


하지만 좋은 것이 있으면 항상 같이 따라오는 것들이 있다. 책임 부분이다. 어린 나이에 주어지는 선택의 자유를 얼마나 잘 통제할 수 있을지는 모를 일이었다. 컴퓨터 게임을 좋아하는 아들이 자유로운 환경에서 게임에 지나치게 빠지지 않을지, 목표로 한 것들을 시간을 통제하며 스스로 꾸준히 해나갈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영재학교는 너무 가고 싶은 곳이지만, 독이 든 사과일 수도 있었던 것이다. 

  



다 떨어져서 미련 한 톨 없으니


고3에 막 올라간 딸아이가 일본에 유학을 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날은 3월 6일, 딸아이 생일이었다. 생일 축하 외식을 위해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딸아이는 제가 주인공인 그날에 일부러 작정하고 폭탄선언을 했다. 자꾸 친구 얘기처럼 일본 유학 얘기를 하더니, 올 것이 온 거였다. 우리의 첫 반응은 이랬다.


"왜? 하필 일본이야?"


영어권도 아니고 일본으로 왜 유학을 가고 싶은지, 일본어도 못하면서 왜 일본에 가려고 하는지, 일본에 가서 무슨 공부를 하고 싶은지, 어느 대학에 가고 싶은지, 대학 졸업하고 뭘 할지, 유학 가려면 돈은 많이 들지 않는지 등을 놓고 4인 가족이 난상토론을 벌였다. 아이는 게이오대학 경제학부에 가겠다고 명확한 목표를 제시했다. 일본 대학에 대해서 잘 몰랐지만 게이오대학 대학원으로 유학 간 친구가 있어서 이름은 익숙하다. 하여튼 일본 유학 준비를 해주는 학원이 있는데, 거기에 가서 한 번만 상담을 해달라는 게 아이의 요청이었다.


엄마가 되면 눈치 백 단이 되게 마련인데, 딸아이는 "친구가 일본 유학을 가고 싶어 한다"라고 말하면서 자꾸 일본 유학 얘기를 했다. 본인이 관심 있는 게 뻔히 보였다. 그래서 나는 사실 아이의 생일 전에 혼자서 친구의 상담을 받았다. 마침 일본 도쿄에 출장 가게 되었고 게이오대학으로 유학 가서 거기에 정착한 친구를 20여 년 만에 만났다. 친구에게 딸아이가 일본 대학에 관심을 보이는 것 같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물어봤다. 친구는 "할 수만 있으면 괜찮다"라고 말했다. 유학비용은 서울로 대학 보내는 거 하고 비슷할 거라고 한다.


사전 정보를 가지고 우리 부부는 대학생인 아들까지 동원해서 일본 유학 학원에 상담을 하러 갔다. 일본 유학파인 원장은 과장하지 않으면서 상담을 했다. 너무 좋다는 식으로 부풀리지 않아서 신뢰가 갔다. 가장 중요한 부분, '이렇게 늦게 유학 준비가 가능한가'에 대해 아이가 일본어 귀가 트여있어 해 볼 만하다고 했다. 열심히 하면 사립 명문대는 갈 수 있단다. 게이오대학을 나온 원장은 게이오대학의 가능성을 점쳤다. 그래서 시작됐다. 


역시 아이들은 제가 하고 싶은 것, 제가 선택한 것을 해야만 열정이 솟는다. 딸아이는 정말 안쓰러울 정도로 유학 준비에 몰입했다. 11월 시험을 목표로 8개월 정도 주어졌고 그때까지 해야 할 게 산처럼 쌓여있었다. 일본유학시험(EJU) 과목인 일본어, 수학, 종합과목(정치, 경제, 역사 등 종합사회)을 준비하면서 일본어 능력시험을 치고 토플 준비도 해야 했다. 부모가 할 수 있는 말은 "잠 좀 자야지" "빨리 자"뿐이었다. 잠을 서너 시간이나 자는지 모르겠어서 걱정이 앞섰다. 그렇게 정신없이 달리듯 준비하고 난 뒤 일본 유학시험을 보았다. 


시험을 보고 난 아이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예상 점수도 모의고사에서 한 번도 나온 적이 없는 낮은 점수였다. 일본은 시험 치기 전에 이미 대학에 원서를 내야 했다. 나온 점수가 아니라 기대 점수를 가지고 원서를 접수한 것이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이 있었다. 굳이 가고 싶지 않지만 안전판 같이 하향 지원한 대학도 있으니 어디라도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합격자 발표날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다. 단 한 군데도 안된 것이다.


그날은 금요일이었다. 유연근무를 하던 나는 일찍 퇴근했다. 딸아이 소식에 남편도 일찍 집에 왔다. 학원 원장이 아이가 울고 집에 갔다고 했다. 우리는 아이를 기다렸다. 마음이 너무 아팠다. 너무 힘들게 고생한 걸 알기 때문이다. 아이가 집에 도착했고, 우리는 어떻게 이렇게 되었는지 분석해봤다. 아무리 고생해도 막판에 컨디션 관리가 안되면, 끝까지 집중하지 않으면 결과가 엉망이 될 수 있다는 큰 교훈을 얻었다. 


30분 동안 분위기가 매우 심각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잘 된 일이었다. 울고불고할 일이 아니라, 새로운 기회였다. 


"야, 너무 잘 됐다! 재수하면 국립대 갈 수 있잖아. 국립대 학비가 싸니까 아낀 학비로 재수한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학교 레벨은 올리고 올리고~"  


분위기가 반전됐다. 좋은 학교 보낼 수 있다는 기대에 미리부터 신난 부모를 보며, 딸아이가 웃었다. 아이가 웃으면, 어깨가 올라가면 다른 세상이 열린다.


그동안 아무리 열심히 해도 국립대를 준비하는 건 버거웠다. 기본 시험 준비에다가, 대학별 시험인 본고사까지 있어서, 아예 쳐다보지도 못했다. 그런데 이제 다 해볼 수 있었다. 시간이 넉넉하니까. 학비는 사립대가 두배가 넘었다. 일본은 국립대가 전체적으로 좋았고, 옛 제국대학으로 불리는 국립대는 어느 대학이든 수준이 높았다.     




너무 잘된 일이 생겨도 좋고 안 생겨도 좋고


요즘 너무 잘 됐다는 일들이 자주 있다. 

두 아이들이 취업준비를 하면서 여기저기 지원을 하고 떨어지는 과정 중에 있기 때문이다.

떨어지면, 잠깐 기분이 안 좋을 수는 있다. 

그래도 너무 잘 된 것이다. 


원서 쓰고 면접 보고 하는 과정에서 경험이 쌓였고, 거기에 합격한다고 꼭 좋다는 보장은 없다. 

다음이 훨씬 더 좋을 수도 있다. 

그건 모를 일이다. 


살아보니 좋다고 한 일이 지나고 보면 꼭 좋지만은 않은 일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반대로 나쁘다고 한 일이 나중에 가면 나쁜 일이 아닌 경우도 많다. 

그때 합격했으면 다른 도전은 없었고, 도전이 없으니까 더 나은 선택의 가능성도 없어진다. 

그러니 뜻대로 안 됐을 때, 떨어졌을 때 우리는 기뻐할 수도 있어야 한다. 

정말 좋은 일이, 정말 잘된 일이 될 가능성이 충분하다. 

다음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말한다. 


"잘됐네, 잘됐어! 그 회사는 정말 좋은 인재를 놓쳤네. 다음엔 어디 지원해?" 


최선을 다했지만 뒤도 안 돌아본다. 

우리에겐 다음이 있다. 

너무 좋은 일이 생길 수도, 안 생길 수도 있다. 

어떤 거라도 상관 없다.



뒷이야기....


과학영재학교 떨어져서 너무 잘 된 아들은 과학고에 갔다. 적당히 통제하는 학교에서 즐겁게 공부했고 원하는 대학에 갔다. 


지원한 일본의 모든 대학에 떨어져서 너무 잘 된 딸은 재수해서 일본 국립대에 갔다. 학비가 1년에 550만 원 정도 되는 좋은 학교에 들어가서 부모에게 유학비용 걱정을 시키지 않고 있다. 



# 앞 이미지 : Pixabay의  Gerd Altmann님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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