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팀장이 들려주는 리얼 Q&A 경험담
Ep.13
“외국계 기업에서 일하는 건 어때요?”
글로벌 기업 (MNC), 흔히 외국계 기업이라고 불리는 회사에 다닌다고 하면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있다.
“어때요?”
짧지만 답하는 입장에서는 은근히 무게감 있는 질문이다. 좋은 점만 듣고 싶은 걸까, 아니면 힘든 점까지 궁금한 걸까. 아마도 외국계 기업을 꿈꾸는 사람들의 속마음은 비슷할 것이다. “나도 가보고 싶은데, 괜찮을까?”
나 역시 처음엔 똑같았다.
‘영어는 얼마나 해야 할까? 외국인 상사와는 어떻게 일하지? 성과 평가는 한국기업보다 쉬운 걸까?’
궁금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래서 오늘은 사람들이 가장 자주 묻는 질문을 정리해 봤다. 글로벌회사에서 인사부로 20년 넘게 부딪히고 깨지고, 다시 일어서며 배운 경험으로 답하려 한다.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몸으로 겪으며 얻은 깨달음이다.
그럼 제일 많이 나오는 질문부터 시작해 보자.
A: 영어는 도구일 뿐. 완벽하지 않아도 핵심만 정확히 말하면 된다.
“David가 meeting 때 얘기한 project, 언제까지 submission 해야 하는지 due date 알아?”
처음 들으면 무슨 말인가 싶겠지만, 외국계 직장인들끼리 흔히 하는 대화다. 조사 빼고는 죄다 영어 단어다. 밖에서 들으면 “뭐야, 잘난 척이야?”라고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일부러 잘난 척하려는 게 아니다. 회사 자체가 영어 이름 사용을 장려하고, 직급 대신 이름에 ‘님’을 붙이는 문화가 많다. 또 업무 특성상 외국과 교류가 잦다 보니 영어 단어가 입에 더 빨리 붙는다. 억지로 한국어로 바꾸려 하면 오히려 적절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더 버벅거릴 때도 많다.
나만 해도 매일 각국 사람들과 영어로 회의를 하고 메일을 주고받다 보니, 여기가 한국인지 외국인지 헷갈릴 때가 많다. 한참 회의에 몰입하다 보면 한국 직원과 얘기하다가도 갑자기 영어로 주르륵~ 이어가고, 듣는 직원도 위화감 없이 영어로 답한다.
이렇게 말하면 다들 영어 실력이 대단할 것 같지 않은가? 사실은 그렇지 않다.
나는 스스로를 “0개 국어 구사자”라고 부른다. (ㅠㅜ).
영어도 완벽하지 않아 늘 숙제처럼 부담스럽고, 한국말도 영어 간섭 때문에 순간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멈칫’ 거릴 때가 많다. 이건 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오래 외국계에 다닌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는다. 영어는 어느 순간 ‘언어’라기보다 ‘회사용어’처럼 굳어지고, 그래서 한국인끼리도 조사는 한국어, 핵심 단어는 영어인 국적불명 대화가 곳곳에서 들린다.
그러니 “난 영어가 안 되니 외국계는 접어야겠다”라고 섣불리 결론 낼 필요는 없다.
내 1,2편의 글을 다시 읽어보라. 나는 영어가 안 돼서 청소부 자리에서도 잘렸다!
그래도 외국계 기업 HR로 여기까지 와서 나름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영어? 하면 된다.
요즘은 오히려 어린 시절을 해외에서 보낸 유학생이 많은 탓에 영어는 너무 유창하지만 한국말이 서툴러서 한국어 뉘앙스나 문맥을 놓치고 업무지시를 이해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많다. 일단은 회사에서 한국사람끼리 소통이 되어야 일을 할 것이 아닌가. 그래서 나는 실제로 오히려 영어가 필수가 아닌 직무의 경우 굳이 유학생을 뽑아야 하나 고민한 적도 있다. 결국 직무 적합성과 경험이 고스펙 영어보다 훨씬 설득력 있다.
물론 리더로 올라갈수록 영어는 잘하면 잘할수록 좋다. 메일도 회의도 직급이 올라갈수록 영어가 기본이고, 해외 리더와의 협업이 많아지니 빠르고 정확한 커뮤니케이션이 곧 성과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 하나.
회사 회의는 영어 실력 뽐내는 콘테스트가 아니라는 것.
가끔 영어 된다고 존재감을 드러내려는 사람들이 있다. 회의 주제와 상관없는 얘기를 줄줄 늘어놓는 식이다. 본인은 뿌듯할지 몰라도, 상사는 속으로 '지금 왜 저 얘기를 하지?' 하고 식은땀을 흘린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아무리 영어 잘해도 다음 회의에는 초대받지 못한다.
반대로 발음이 완벽하지 않아도 회의 목적에 맞춰 핵심을 짚고 간결하게 말하는 사람은 “쟤 일 잘하네”라는 평가를 받는다. 결국 중요한 건 영어를 얼마나 잘하느냐가 아니라, 무엇을·언제·어떻게 말하느냐다.
A: 외국인 상사는 당신의 의견을 원한다. 데이터·논리·토론 준비가 필수다.
외국계에 입사하면 아무래도 외국인 상사와 일할 기회가 많아진다. 한국에서는 상사가 곧 ‘윗사람’이자 ‘어른’의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지만, 외국인 상사는 훨씬 동료에 가깝다. 직급은 위지만, 회의에서 눈치만 보며 듣는 관계는 아니다. (물론 상사의 국적에 따라 이것도 조금씩 다르다. 아시아권의 상사는 아무래도 우리가 이해하는 정서가 있고 유럽계, 인도계, 미국계 등등의 다른 문화권의 상사는 그 나름의 특성이 있다. 이런 경험들도 외국계 기업에서의 하나의 재미일 듯?)
내가 처음 외국인 상사 밑에서 일하며 신선했던 건 “네 생각은 뭐야?”라는 질문이었다. 단순히 지시받은 일을 정확히 해내는 걸 넘어, 내 의견을 요구했다. 준비 없이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답하면 바로 존재감이 사라진다.
물론 목소리만 키운다고 되는 건 아니다. 의견은 데이터와 논리로 뒷받침돼야 한다. 인사 프로그램 도입을 제안했을 때 상사는 “좋은 아이디어야. 그런데 왜 필요한지, 비용 절감 효과는 어느 정도인지 보여줘”라고 했다. 외국인 상사는 한국 사정을 잘 모르기 때문에, 우리가 보기엔 과하다, 질린다 싶은 수준의 근거를 요구할 때가 많다. 그것도 영어로. 그리고 토론은 필수다. 그 과정에서 지치지 않는 게 핵심이다.
가만히 받아 적는 회의는 없다. 스스로 생각하고 데이터를 근거로 방안을 제시하며, 기꺼이 토론에 참여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외국인 상사와 수월하게 일할 수 있다.
A: 강제 회식은 거의 없다. 대신 점심, 저녁 소소한 네트워킹이 더 중요하다.
많은 사람들이 묻는다. “외국계도 회식문화가 있나요?”
정답은,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다.
한국식 의무 술자리는 거의 없지만, 사람 사는 데가 어디나 비슷하다. 친해지면 식사 자리는 생긴다. 다만 대부분은 점심을 함께 먹거나, 약속된 저녁에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간단히 1차 정도 하는 정도다. 2~3차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정말 많이 없다. 강제성은 없는 경우가 많지만, 이런 자리에서 오가는 대화가 의외로 중요한 기회가 되기도 한다.
나도 처음에는 ‘편하네’ 싶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느꼈다. 공식 회식 대신 오히려 이런 캐주얼한 네트워킹 자리에서 얻는 정보와 관계가 훨씬 크다는 것. 그래서 신입이라면 “좋아, 회식이 없네 ”로 끝낼 게 아니라, 스스로 소통할 기회를 만드는 게 필요하다.
A: 더 까다롭다. KPI와 수치가 곧 연봉, 숨을 곳은 없다.
외국계의 평가는 ‘좋다/나쁘다’가 아니라 구체적 수치와 행동 기준으로 기록된다. 내가 본 가장 큰 차이는 투명성이다. 한국 기업 일부는 근속연수와 호봉이 급여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지만, 글로벌 기업은 KPI·목표 달성률·행동 지표가 연봉과 직결된다. 그래서 연차가 낮아도 성과가 좋으면 더 많이 받는다. 억울할 틈은 적지만, 동시에 숨을 곳도 없다.
평가 시즌에는 상사와 1:1로 성과평가 대화를 한다. 처음엔 부담스럽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 시스템이 오히려 내 성장을 밀어준다는 걸 알게 된다.
A: 기회는 많지만 자동은 없다. 스스로 손 들고 도전해야 열린다.
외국계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경계 없는 기회다. 한 회사 안에서 한국을 넘어 다른 아시아국가들, ·유럽·미국등 전 세계와 연결될 수 있다.
나는 한국에서 HR 매니저로 시작했지만, 홍콩·대만을 추가적으로 맡게 되고, 이후 일본·호주·뉴질랜드까지 관리 영역이 넓어졌다. 승진·직무 변동으로 역할이 확장되기도 하고, 국가별 포지션이 열리면 오픈 포스팅 제도를 통해 내부 지원 기회가 먼저 주어진다. 크고 작은 글로벌 프로젝트가 상시 열려 자연스럽게 국가 간 네트워크가 쌓인다.
물론 모든 직원에게 자동으로 기회가 주어지진 않는다. 다만 손 들고 도전하는 사람에게는 길이 상대적으로 많이 열린다. 글로벌 기업에서는 국경을 넘나들며 업무를 진행하거나 프로젝트를 맡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단, 한국에서 입사를 했는데 본국의 지원을 받아 해외 지사로 근무를 했다가 몇 년 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근무할 수 있는 고용이 보장된 형태의 ‘파견’ 근무는 많이 없어졌다. 우선은 코로나시대를 경험하면서 물리적으로 해외에 나가지 않더라도 언제 어디서든 원격의 형태로 근무가 가능하다는 것이 입증되어 출장, 파견의 물리적 횟수가 확실히 줄어든 부분이 있다. 또 외국지사에 지원을 하더라도 한국의 지사에서는 아예 퇴사형식을 밟고 외국의 지사에 채용절차를 밟아 그쪽 회사의 직원으로 계약하여 근무하게 되는 형태가 많아졌다.
선택지는 많다. 하지만 이것도 개인의 ‘선택’이다.
A: 자유와 책임은 세트. 시간을 어떻게 운영하느냐가 워라밸을 결정한다.
외국계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워라밸 좋다”인데,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리다.
정해진 시간 안에서는 비교적 자유롭다. 칼퇴가 가능하고, 휴가도 눈치 덜 본다. 코로나시대 이후 많은 회사들이 전면 출근을 강조하면서 회사로 돌아갔지만 아직 많은 외국계기업들은 주 3일 회사근무 2일은 재택의 형태로 하이브리드 출근 형식을 취하는 경우가 많다. 대신 일하는 시간에는 강도 높은 몰입이 요구된다. ‘출퇴근 자유’ 뒤에는 “성과만 내면 된다”는 조건이 붙는다.
유연시간근무제가 있어 코어타임(예: 11~16시)만 지킨다면 그 외의 시간은 충분이 조율이 가능한 회사들이 있다. 그래서 오전 일찍 시작해 일찍 퇴근하는 사람도 있고, 시차가 큰 지역과 일하는 경우 오후에 시작해 늦게까지 일하기도 한다. 나는 아이를 키우며 아이를 오전에 챙기고 업무를 진행하는 등 나름 균형을 찾을 수 있었다고 생각하지만, 때론 아시아·유럽·미국 시차가 다른 회의들로 업무가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날이 많다. 어떤 날은 호주와의 미팅으로 아침 7시 30분에 시작해, 저녁에는 미국 미팅으로 밤 12시에 업무를 마치기도 한다.
이런 날은 중간에 쉬었다가 다시 집중하기도 심리적으로 쉽지 않아, 오히려 긴장된 근무시간이 늘어지는 느낌이 들어 피로감이 쌓인다.
일률적 근무시간을 선호하고 일과 삶을 칼같이 분리하고 싶다면, 오히려 어려움을 느낄 수도 있다. 반대로 시간의 유연성을 잘 운영하고, 성과 중심의 리듬을 만들 수 있다면 큰 장점이 된다.
자유와 책임은 세트다. 이를 어떻게 운영하느냐에 따라 외국계의 유연시간근무제는 장점이 되기도, 부담이 되기도 한다.
A: 직무마다 다르고, 생각보다 힘들다. 하지만 그 속에서 작은 모험을 찾으면 인생 경험이 된다.
직무마다 다르다. 한국 비즈니스만 담당하면 해외에 나갈 일이 없을 수도 있다. 반대로 나처럼 리전 역할이나 글로벌 프로젝트들을 맡으면 출장이 잦을 수 있다.
주변에서는 “좋겠다, 재밌겠다”라고 말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호텔-회의실-공항의 반복, 하루 종일 이어지는 회의, 밤에 호텔로 돌아와 노트북을 켜고 낮의 일을 정리하는 패턴. 관광은커녕 햇볕조차 못 쬐는 날이 많다. 돌아오면 피곤함에 며칠이고 몸살을 앓기 일쑤다.
일본 출장 때도 그랬다. 낮에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회의, 밤에는 편의점 주먹밥 하나로 허기를 달래며 혼자 야근을 했다. 넓디넓은 사무실에 불 꺼진 복도와 어두컴컴한 화장실. 순간 ‘일본은 귀신이 많다던데…’라는 생각이 스치자 괜히 오싹해져서, 후다닥~ 화장실을 뛰어갔다 온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런데도 나는 출장이 내 삶을 풍성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작은 모험을 더하면 출장도 특별한 경험으로 남기 때문이다. 미국 플로리다 출장에서 나는 개인 연차를 붙여 바다의 코끼리라 불리는 매너티(Manatee)와의 수영 투어를 했다.
새벽 강 위로 안개가 피어오르고, 크리스털처럼 맑은 물속에서 거대한 바위가 움직이듯 천천히 다가온 매너티와 눈을 마주쳤을 때 – 시간이 멈춘듯했다. 그 순간만큼은, 그 거대한 생명체와 나만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놀라울 만큼 평온하고 경이로운 순간이었다.
출장은 분명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러나 스스로 작은 여유와 모험을 찾아낸다면, 그것이 곧 커리어를 넘어 인생 경험이 된다.
“외국계 기업은 어때요?”라는 질문에 “좋아요” 혹은 “힘들어요”라고만 답할 수는 없다.
내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외국계 기업은 자유와 책임, 기회와 도전, 성과와 성장이 공존하는 무대다. 그 균형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잡아낼 수 있다면 최고의 기회가 되고, 그렇지 못하면 버티기 힘든 곳이 된다.
결국 답은 회사가 아니라, 그 안에서 내가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떻게 서느냐에 달려 있다.
그래서 지금도 누군가 묻는다.
“외국계 기업, 어때요?”
나는 웃으며 말한다.
“글로벌 기업은, 당신이 만들어가는 무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