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품집]
평소엔 신경 쓰이지 않는 유리창의 존재는 비가 오는 날엔 확연히 드러난다. 저것이 사실은 바깥과 나를 나누고, 분리하고 있었지. 비가 묻어 물방울이 맺힌 유리창은 본래의 투명함을 잃고 경계를 확 드러낸다.
비는 평소에 알아채지 못하던 것들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비가 오면 자유롭던 두 팔 중 하나에는 우산이 들려있고, 젖을 일이 없던 바지에 물이 스민다. 고개를 힘껏 들어 하늘을 올려보지 못하고, 햇빛이 없는 방은 전등 없인 어둡다. 당연하다 여기고, 인식하지 못하고, 그래서 감사하지 못했던 것들.
비는 세차게 내리고 땅은 속절없이 젖는다. 온 세상이 흠뻑 젖을 때 나를 둘러싸고 있는 세상이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상기한다. 비를 막아주는 유리창도, 마른 옷도, 자유로운 두 팔도, 화창한 하늘도, 유리창으로 스미던 햇빛도. 많은 것이 유난히 별스럽다.
익숙한 것이 소중한 것이며, 고작이라 여기던 것이 간절하다.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주위를 둘러본다. 편안한 의자와 책상, 비를 막아주는 우산, 3월의 쌀쌀함을 감싸주는 외투, 무릎을 데워주는 담요까지.
비가 오는 날, 생각은 생각의 꼬리를 물고 나는 생각한다. 삶을 긍정하는 것은 비 오는 날의 창으로도 가능하구나!
나의 세계에 감사를 보내는 것은 생각보다 간단할 때도 있다. 그저 창밖의 비를 바라보며 익숙한 모든 것에 경의를 표하고, 별스럽게 느껴본다. 그리하여 감사하고, 삶을 긍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