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었어도 4월 16일 기억하기
누구에게나 잊히지 않는 순간이 있다.
순간순간이 너무 생생해서 잊히지가 않는 기억. 그날의 날씨, 장소, 덕분에 함께 있던 사람까지 끝없이 기억나는 그런 날.
내겐 4월 16일 그랬다.
대학 캠퍼스 어느 커다란 교양 강의실에 앉아 지금은 서먹한 동기와 함께 뉴스를 봤었다. 교수님 몰래 둘이서 화면을 보며 대수롭지 않게 ‘곧 다 구할 거야’, 넘겨짚었다. 수업이 끝나고, 밥도 먹고, 친구들과 깔깔 수다도 떨다가 그렇게 집으로 갔을 것이다.
그러곤 그날 밤, ‘엄마 나 왔어’하며 봤던 배가 반쯤 잠긴 화면이 아직도 잊히지가 않는다. 모든 게 지워졌어도 그 화면은 생생하다.
나에게 4월 16일은 처음 소식을 들었던 강의실을 시작으로 거실에 선명하던 티비 속 화면으로 남아있다.매년 4월 16일이 돌아올 때마다 그 순간순간이 생각난다. 파편화됐지만 선명한, 흐려지지 않는 기억들.
다른 사람들의 4월 16일은 어땠을까 궁금해해 본 적이 있었다. 기억나지 않는다던 사람, 모진 말을 쏟아내던 사람, 무관심한 사람, 마음을 다해 애도하던 사람들 모두 각자의 4월 16일을 간직하고 있을 테다.
“선생님, 오늘 4월 16일이에요.”
심장이 철렁했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이상하게 그날임을 인식하면 심장이 웅웅거린다. 문득 주위를 둘러보니 한 아이의 필통에 때 묻지 않은 노란 리본이 대롱대롱 달려있었다.
올해의 4월 16일도 여느 때처럼 훅 찾아왔고,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오늘은 4월 27일, 잔인한 사월도 가고 있다.
아직은 애도가 끝나지 않았다. 어쩌면 이미 우리 사회의 상실로 자리 잡았을지도 모른다. 상실은 떼낼 수가 없다.
16일에서 10일 하고도 하루가 더 지난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게으른 글쓴이이지만, 무튼 이날을 조금 더 충분히 기억하고 싶다. 보내주기엔 너무 어렸던 아이들을 기억한다. 글로 쓰기만 해도 눈이 시큰해지는 그날을 위해 여전히 마음 한켠을 마련해 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