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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이 Mar 14. 2024

살로메, 타오르는 여인의 욕망

의붓아버지 헤롯 왕 앞에서 춤을 추고, 크게 기뻐하는 그에게 세례자 요한의 목을 요구하는 잔혹한 여인, 그의 이름은 살로메다. 신약 성경에 등장하는 이 매력적인 인물은 수많은 예술 작품의 영감이 되었고, 이후 천년이 넘는 시간이 흘러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는 그 유명한 희곡,『살로메』(Salome, 1893)를 쓴다.




1. 살로메, 욕망으로 활활 타오르다.


세례자 요한을 죽게 했다는 점에서 성경의 살로메와 희곡 속 살로메는 동일하지만, 와일드의 살로메는 한층 더 열렬히 자신의 욕망을 드러낸다. 요카난(요한/Jokanaan)의 목소리를 들은 살로메는 그가 젊은 청년임을 직감하고 자신을 사모하는 젊은 근위대장을 꼬드겨 요카난을 불러낸다. 미소년의 모습을 한 요카난을 본 살로메는 걷잡을 수 없는 욕망에 사로잡히고 그의 "백합처럼 하얀"피부와 "어두운 밤"처럼 까만 머리칼을 찬미한다. 살로메는 그와의 입맞춤을 위해서라면 어떤 짓이든 할 수 있는 욕망의 화신이 된다.  


2. 변화하는 여인


와일드의 살로메에 대한 묘사는 시시각각으로 변화한다. 사실 극의 초반 요카난을 만나기 전 살로메는 “너무나 아름다운” 처녀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떠 있는 달에서 "처녀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그녀는 다른 남자에게 자신을 허락한 적이 없다.


그러나 예언자 요카난의 목소리를 듣게 된 살로메는 알 수 없는 호기심에 사로잡혀 그를 자신의 앞으로 데려다 놓기를 명령한다. 시종들이 이 요구를 거절하자 그녀는 자신을 열렬히 사랑하는 젊은 시리아인 근위대장을 이용한다. 정숙한 처녀의 모습을 했던 살로메는 자신에 대한 사랑과 호의를 가차 없이 이용하는 냉정한 여인의 모습이 되었다가, 요카난을 만나고는 열렬한 욕망에 눈을 뜬 사랑을 갈구하는 자가 된다.


전하를 위해 춤추겠어요.


살로메는 헤롯 왕에게서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 위해 춤을 추는 관능적 여인의 모습이 되었다가, 본인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요카난의 목을 벨 것을 요구하는 가혹함을 보여준다. 그녀는 요카난의 머리를 베기를 주저하는 의붓아버지의 고뇌에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살로메는 베어진 요카난의 머리를 보고 기뻐하며 그것에 입을 맞추는 기괴함을 보여주고, 이후 변모한 그녀의 모습에 질색하는 헤롯 왕에 의해 살해당한다.


극이 전개되는 과정마다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살로메는 비록 그녀의 결말이 죽음으로 끝난다고 할지라도 자신의 모습을 하나로 가두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가변적인 존재이다.


3. 선을 넘는 살로메


살로메는 요카난과의 입맞춤을 위해 그를 찬미했다가 모욕하고, 또다시 그를 찬미했다가 모욕하며 간절히 그를 원하지만 입맞춤을 위해 꼭 살아있는 요카난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물론 살로메가 요카난에 광적으로 집착하며 그의 시체까지 소유하려고 하는 것은 그저 육욕에 사로잡힌 것으로 읽힐 수도 있다. 그러나 살로메는 살아 있는 요카난 대신 죽은 요카난의 입술에 입맞춤을 함으로써 삶과 죽음을 포함한 모든 것의 경계를 넘는다.


욕망으로 활활 타오르는 살로메는 기존의 질서가 요구하던 ‘순결한 처녀’라는 고정성에서 벗어난다. 그리하여 그녀는 한계 없는 변화의 가능성을 가진 무시무시한 존재가 되어 신의 심판, 신학 체계 등의 억압에서 벗어난다. 요카난을 참수하라 명한 뒤 시체에 입을 맞추는 살로메의 모습을 본 관객들은 앞으로 그녀의 행동이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갈지 예측하기 힘들다.


이항 대립의 선을 넘은 살로메는 종교적, 가부장적 질서에 사로잡힌 헤롯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결말을 맞게 되지만 자신을 둘러싼 고정성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욕망을 지향하는 유일한 인물이다. 삶과 죽음을 벗어나 요카난을 원하는 살로메의 열정은 그러므로, 이분법에서 벗어나 어디로 튈지 모르는 순수한 욕망을 그려낸 오스카의 문학적 표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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