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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이 Dec 24. 2020

인생은 그래도 데구르르 데구르르르

굴러간다 

기말 페이퍼를 작성하느라 정신없는 한 달을 보냈다. 한 해가 다 가는지 안 가는지를 신경 쓸 새도 없이 매일 밤낮을 지새우며 과제를 했다. 과제만 해도 모자라겠지만 나는 풀타임 연구생은 아니다. 직장과 학업을 병행하는 비전일제 학생인 나는 출근도 해야 했다. 설상가상 코로나가 심해져 업무량이 늘어났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냈다. 주말에는 쉬지 못하고 과제를 하고, 짬을 내서 밀린 업무를 하고, 12월은 온통 그런 일상의 반복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과제를 제출했다.


새벽 5시까지 과제와 씨름하다 저장버튼을 눌렸을 때의 짜릿함을 잊을 수 없다. 너무 기뻐서 소리를 지르며 잠깐 잠에 들었다.

하루 이틀 정도 학업에서 벗어나 일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잠은 여전히 부족했다.


얼마 후, 지도교수님께 메일을 보냈다.


교수님께 보내는 메일은 보통 “안녕하십니까, 잘 지내고 계신지요?”로 시작한다.

간단히 안부를 묻고, 찾아뵙고 싶단 말을 하고, 곧 돌입할 논문의 방향에 대해 간략하게 말씀드렸다. 밤을 지새우며 쓴 과제의 일부를 첨부해 논문에 활용할 예정이라고도 말씀드렸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온 답변이 마음을 찔렀다.

연구의 방향을 잘못 잡고 있다는 교수님의 대답이 그 이유였다. 출근 중에 받은 답장이었는데, 마음이 헛헛해졌다.

화를 낸 것도 아니고, 그저 따끔한 조언일 뿐인데.

마음이 아팠다.


그냥 나의 시간을 보상받고 싶은 따름이었다. 밤을 갈아서, 몸을 갈아서 제출한 페이퍼에 상당한 애정을 갖고 있었다. 거기에 교수님께 예쁨 받고 싶었던 마음 한 스푼까지 더해져, 메일을 받은 순간, 마음이 무너져 내린 것이다.  


무너진 마음을 다시 세워 올리는 건 꽤 잘하는 일이지만, 아픈 건 아픈 거다.

 



카뮈의 시지프 신화가 떠올랐다.


시지프가 겨우 산 정상으로 굴려 올라간 바위는 꼭대기에 닿자마자 다시 데굴데굴 내려간다. 시지프에게 주어진 벌은 무용하고 무가치한 일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시지프는 포기하지 않는다. 시지프는 계속 바위를 굴리고, 바위도 계속 떨어진다.


하지만, 누가 시지프에게 ‘너는 불행하니’라고 물어본 적이 있었나?

신들은 왜 시지프가 불행할 거라고 단정 지은 걸까?


굴러내려가는 돌을 보는 시지프가 다시 산 밑으로 내려오는 순간을 생각한다. 시지프가 돌을 굴리고 내려오는 그 휴지의 순간은, 온전히 시지프의 것이다. 시지프에게는 힘든 날도 있겠지만, 행복한 날도 분명 있을 거다. 그래서 나는 행복한 시지프에 대해 생각하기로 했다.


정상에 올려놓으면 다시 데구르르 굴러내려가는 시지프의 바위처럼 내 마음도 한순간에 무너졌다가, 다시 세워 올렸다가를 반복할 것이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는 것은, 그 안에서 행복을 찾는 것이 내가 할 일이기 때문이다.


어떤 일이 생겨도 인생은 데굴데굴 데구르르 굴러가겠지?


그걸 알기에 나는 행복한 시지프이기를 선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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