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님, 오늘 혹시… 일 끝나고 시간 있으세요?”
입사한지 한 달 정도 된 신입 사원이 쭈뼛쭈뼛 한쪽 입꼬리만 올라간 어색한 미소를 띠며 말을 걸어왔다.
“왜요?”
약간 날이 선 눈과 까칠한 목소리로 대답하자 그 신입 사원은 더 주눅 든 목소리로,
“아…그게…모르는 게 있는데…”
하며 우물쭈물 서두가 길어졌다. 전날 밤 잠을 못 잤던 탓에 아주 예민해져 있던 나. 그녀의 느려터진 답변에 짜증을 내려고 하던 순간, 갑자기 머릿속에 한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오전 중 클라이언트와 전화를 하고 있던 그녀는 클라이언트에게 욕을 한 바가지 먹고 있었다. 수화기 너머로 클라이언트 고함 소리가 다 들릴 정도였으니 아무래도 무슨 큰 실수를 저지른 모양이었다. 하지만 모두들 자기 업무가 바빠 그녀에게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고, 나 또한 힐끗 쳐다본 후 다시 내 모니터에 집중했다.
예상대로 그녀는 그날 오전 중 클라이언트에 넘긴 데이터 자료의 숫자를 틀리게 제공했고, 다시 한번 데이터 산출하는 방법을 나에게 물어보고 싶었나 보다.
“네, 시간 있어요. 이 자료 필요할 거 같은데, 내가 메일 보내 놓을 테니까 읽어보고 있어요. 그리고 조금 있다가 설명해 줄게”
신입 사원은 너무나 고마워하며 연신 인사를 해댔다. 그 후 나는 틈만 나면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모두 정리해서 그녀에게 가르쳐 주었고, 저녁도 사주며 한층 더 친해졌다. 그녀 또한 나를 선배이자 좋은 친구로 대했다.
하지만, 어느 에피소드 하나로 인해 나는 조금씩 그녀와 거리를 두기로 했다. 솔직히 말하면 나한테만 에피소드이고 그녀는 아마 영문도 모른 채 내가 서서히 멀어져 갔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업무 성격상 주말에도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오전에 집에서 일을 봐야 했는데, 몸이 너무 좋지 않아 쉬고 싶었다. 상사에게 허락을 받고 내가 팀원 중 대타를 구하고 쉬겠다고 했다. 물론 머리에 가장 먼저 떠오른 대타 후보는 나와 친해진 신입사원. 부탁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 너무나 미안해하며 그녀에게 사정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예상 밖의 답변이 돌아왔다.
“진짜 죄송해요. 저 약속이 있어서 못 해 드릴 것 같아요”
결국 다른 팀원이 대신 주말에 일을 봐주기로 했지만, 난 여간 서운한 게 아니었다.
‘난 이렇게나 잘 해줬는데, 내가 아플 때 오전에 잠깐 일도 못 봐줘?’
괘씸하고 왠지 여태까지 내가 손해 본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나도 이제 필요 이상 잘해 주지 않을 거라고 혼자 마음의 문을 닫아버렸다.
어릴 때부터 유난히도 측은지심이 많은 나였다. 초등학교 시절 반에 가정 형편이 어려운 친구들을 보면 간식을 하나 더 사서 주거나, 내가 가지고 있던 물건들 중 그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것이 있으면 아낌없이 주기도 했다. 어른이 되어서도 친구가 힘들어 하는 것을 보지못하는 나는 항상 고민을 들어주는 귀가 되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러한 관계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항상 똑같은 패턴이다. 나는 간과 쓸개까지 다 빼 주고, 그들은 받는 것을 당연히 여기고, 어느 순간 나는 서운해 져서 내가 관계를 정리하는 식의 관계가 반복되었다. 처음에는 나같이 착한 애를 이용하는 나쁜 사람들이라고 나 편할 대로 생각해 버렸다. 그리고 주고 베푸는 행위는 좋은 것이라 믿었기에 문제라 못 느꼈지만, 내가 자꾸 퍼주고 서운해하면서 이건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대개 무언가를 주는 행위는 상대방보다 내가 조금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있을 때 나온다. 돈이던, 시간이던, 능력이던, 내가 남보다 많아야 상대방에게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정이 많은 나는 자꾸 남에게 퍼주려고 하는 조금 과한 오지랖도 가지고 있어 조금 가까워지면 자꾸 뭔가를 해주고 싶어진다. 그렇다면 이렇게 퍼주면서 난 얻는 게 뭘까. ‘나는 상대방에게 도움이 되었어’, ‘나로 인해 얘가 행복해하네’ , '역시 난 좋은 사람이야' 라는 뿌듯함을 느낀다. 그런데 이 뿌듯함이 그냥 뿌듯함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우월감으로 바뀌는 것을 내 스스로 인지하지 못한 것 같다. 특히나 친구처럼 대등한 관계에서 내가 무언가를 해줌으로써 내 위주로 관계를 끌고 나가려고 했던 것이다. 그리고 상대방은 받는 것에 익숙해져 그것이 당연하고 좋은 것이 되어 버린 것이고. 내가 그렇게 길들였던 것인데... 이렇게 내 위주로 관계를 끌고 나가며 얻는 뿌듯함은 결국은 내가 상대방보다 더 많이 가졌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어 하는 내 안의 무의식적인 행동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자존감을 키워오던 것은 아니었을까?
지금은 연락을 하지 않는 친구 중에 나만 보면 항상 자기 힘든 일만 이야기하는 친구가 있었다. 내 이야기를 하려고 하면 그녀는 바쁘다며 그냥 가버린다. 처음엔 친구니까 난 얘가 힘들 때 항상 옆에 있어 주어야 한다는 생각에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만 하다가, 결국 지쳐 서서히 거리를 두고 결국 연락도 하지 않는 사이가 되었다. 이렇게 친구 사이를 일방적으로 끌고 가면 좋은 결말을 볼 수 없게 된다.
인간관계를 오래 지속하려면 ‘주거니 받거니’ 하며 어느 정도 균형을 이루어 나가는 것이 현명하다. 특히 친구 관계에서는 더더욱 그런 것 같다. 아마 그토록 퍼주고 싶어하는 천상 giver 들은 나 말고도 세상에 많을 것이다. 그리고 관계의 균형 맞추는 것에 서툴러 상처도 많이 받아 왔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왜 상처를 받고 이를 반복하는지 생각해 보자. 아마도 그 원인이 자신한테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