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즘이론 #조직문화 혁신활동 #혁신확산이론 #문화적 안전지대
조직에 새로운 리더십이 세워지거나 조직이 위기 상황을 감지했을 때 의례적으로 하는 것이 '조직문화 혁신활동'입니다. 조직 내 위기감을 조성하고, 변화를 위한 동력을 끌어내기 위해 새로운 문화적 지향점을 수립하여 핵심가치나 행동규범을 재정의한 후 전사 전파 활동을 추진하는 것이 보통이죠. 새롭게 만든 문화적 지향점에 대한 교육 및 내부홍보, 우수사례발굴 및 포상, 새롭게 만든 문화진단 툴을 활용한 진단 및 피드백 등 진행 양상은 회사마다 비슷한 모습을 보입니다.
특히, 초기에는 기존 문화에 젖어 있는 구성원들이 '문화적 안전지대(Cultural safety zone)'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도를 해볼 수 있도록 촉진하는 롤모델이 중요합니다. 변화가 주는 이점과 필요성에 대해 아무리 강조해도 구성원들은 선언이 아닌 눈에 보이는 무언가를 갈구하기 때문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인지부조화 이론을 주장한 페스팅거(Leon Festinger)의 말처럼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과 능력을 평가할 수 있을만한 객관적 기준을 찾기 어려울 때, 주변의 정보를 기준으로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즉, 내가 무엇인가를 해보고자 할 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하는 것 혹은 남들이 하기를 바라는 것을 기준으로 행동을 맞춰간다는 뜻이죠.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남(타인)'을 잘 만들어주는 것이 조직문화 혁신활동의 성패를 좌우합니다. 기업문화 혁신활동은 다른 혁신활동과 달리 혁신으로 인한 '상대적 이점(relative advantage)'이나 '실험가능성(trialability)', '관찰 가능성(observability)'이 떨이지기에 '상징적인 인물(symbolic manager)'을 앞세워 문화적 어젠다를 눈에 보이게 만들어줘야 합니다. 메시지뿐만 아니라 메신저의 역할이 크다할 수 있습니다.
'혁신확산이론(Diffusion of Innovaion Model)'에서는 이런 롤모델을 '혁신가(innovators)'라 부릅니다. 약 2.5%에 해당되는 사람들로 이들은 새로운 혁신을 빠르게 흡수하여 자기 것으로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이들을 뒤따라 초기 채택자(early adopters. 13.5%), 초기 다수채택자(early majority. 34%), 후기 다수채택자(late majority. 34%), 최종 채택자(laggards. 16%)로 확산됩니다. 혁신확산모델은 이러한 전파가 연속적으로 일어난다고 봤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유명 컨설턴트인 제프리 무어(J. A. Moore) 혁신을 수용하는 사람들 사이에 단절(캐즘. chasm)이 존재한다고 주장합니다. 캐즘이란 원래 지리학에서 사용하는 용어로 지각 변동에 의하 나타난 균열 또는 단절을 말하는 단어입니다. 혁신적 제품이 수용되는 과정에서 초기 혁신가에서 다수 채택자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일시적 정체나 후퇴, 단절되는 현상을 발견하고 '캐즘'이라 명명한 것이죠.
문화 혁신활동에서도 비슷한 캐즘(chasm) 즉 단절이 발견됩니다. 우리는 문화 혁신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주도권을 갖고 조직 전체의 변화를 이끌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제 변화는 연속적으로 나타나지 않으며 수많은 정체와 후퇴, 단절의 과정을 겪습니다. 초기 거창한 선포식이나 인사혁신, 조직 개편을 추진하면서 시작했으나 결과는 미흡했던 경험들이 다들 있을 것입니다. 과감하게 추진했던 비전 재정립 같은 사업도 결국 흐지부지되고 해당 팀원들이 바뀌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경우도 많이 봤습니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원인을 보면 '문화적 캐즘'으로 인한 경우가 많습니다. 초기 변화를 열망하는 혁신가들은 변화 자체에서 희열을 느끼고 열정을 받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리고 이들은 조직 내부에서 주목받을 것이고, 승진과 같은 인센티브를 받게 될 확률이 높습니다. 이를 바라보는 다수채택자들은 자신이 가져야 하는 것을 빼앗기고 있다는 느낌이 들 수밖에 없고 당연하게 저항하는 것이죠. 이런 저항으로 인해 소수의 혁신가들이 주도했던 문화가 조직으로 퍼지지 못하고 특정인들만 공유하는 '하위문화(sub-culture)'로 자리 잡으면 조직 내 파벌 형성과 같은 부작용이 나타납니다. 혹은 문화 혁신을 주도했던 소수들이 다수의 힘을 견디지 못하고 새로운 시도를 포기하게 될 경우 문화 혁신 활동은 그 동력을 바로 상실하게 됩니다.
조직문화 혁신을 주도하는 팀이나 리더들은 '문화적 캐즘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노베이터나 얼리 어댑터까지 간 문화 혁신활동이 조직 전체로 퍼지지 못하고 있다고 느끼거나 문화 혁신이 부정적 방향으로 움직일 때 '문화적 캐즘' 상황에 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이때 주의해야 할 것이 주저하고 있는 다수를 반대 세력이라 규정하고 억압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이들은 문화적으로 절단된 틈을 절대 건너려 하지 않습니다. 이때는 기다리고 시간을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토드 로스(Todd Rose)는 "모든 공동체에는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를 지니고 있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그 해법을 공유하고 실천하는 것은 외부의 누군가가 아니라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이다"라고 했습니다. 이들에게 긍정적 관심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피드백을 원하지 않습니다. 단지 관심이 필요한 것뿐입니다. 관심을 갖고 무엇이 주저하게 만드는지 알아봐 줘야 합니다. 그리고 구성원 스스로 답을 찾게 해야 합니다.
목표했던 혁신활동이 속도를 내지 못할 때 많은 리더들이 불안해합니다. 그리고 곁가지에 해당하는 것들에 주목합니다. 별로 필요도 없는 것에 갑자기 이런저런 제한을 가하는 것이죠. 하지만 이는 캐즘을 더욱 넓고 깊게 하여 구성원들이 더욱 건너지 못하도록 만들 가능성이 높습니다. 문화적 이노베이터와 얼리 어댑터가 잘 만들어졌다면 캐즘을 건너갈 수 있도록 기다려주십시오. 기다림의 시간이 바로 가장 높은 수준의 혁신 활동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참고자료]
Diffusion of Innovation. Rogers. 1962
Crossing the Chasm. Moore. 1991
톰 피터스의 비즈니스 인사이트. 2023
혁신확산과 캐즘이론에 기초한 디지털 전환 확산모형. 양재영 외.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