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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망트망 Dec 11. 2020

사실은요,

비건 비누 공방을 시작하게 된, 아주 사적인 이유 - 에필로그




상상해본 적도 없는



누구나 어렸을 때부터 꿈꿔온 모습이 있을 것이다. 나 역시 막연하게 어른이 되면 이럴 거라고 그려온 모습이 있다. 한 권의 책으로, 한 편의 드라마로 그 모습은 휙휙 바뀌곤 했지만. 그중에 '사업을 하는 나' '공방을 운영하는 나'는 전혀 없었다.



그런 내가 혼자서 창업을 하기까지는 수많은 요인들이 작용했지만, 돌이켜보면 '본의 아니게'라는 표현이 가장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의지가 약하거든요.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동물과의 관계에 대해 고민하고,
그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해 노력했으면 좋겠다.



이 고민이 '일'로 연결된 가장 큰 이유는 내가 의지가 약한 편이기 때문이다. 의지와 열정이 아주 강한 사람이라서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이런 고민들을 펼쳐낼 수 있었다면 적당한 곳에 취업했을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동물과의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해 무언가를 하고 싶다고 열정에 불타오르던 그 시절에도 알고 있었다. 지금 타오르는 이 열정도 언젠가는 사그라들 것을. 그 당시에는 영원할 것 같던 열정과 에너지는 시간이 지나면 어느샌가 사라지곤 했으니까.



이번만큼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나의 짧은 열정 때문에, 약한 의지 때문에 언젠가 이 문제를 소홀하게 다루는 스스로를 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일'이라는 것으로 스스로를 묶어두고 싶었다. 직업이라는 것으로 강제성을 확보하고 싶었고, 시간과 노력, 체력을 쏟는 것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받고 싶었다. 






참 잘했다.



청년 사업가나 창업에 관심이 높아지는 요즘, 간혹 나에게도 어떻게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묻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내가 창업을 했다고 하면 대단하다는 반응이 돌아오곤 한다. 그럴 때면 '제가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서 이 일을 하고 있는 건데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오지만, 구구절절 설명하기가 어려워 겸연쩍은 미소만 짓는다.



그래도 요즘 들어 이 일을 시작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비건 비누 공방을 시작할 당시, 먹는 문제만큼은 페스코가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랬던 내가 지금은 식생활에서도 (완벽하진 않아도) 비건을 지향하고 있다. 내가 알고 싶어서 시작한 동물권, 환경, 비거니즘에 관한 공부들은 클래스 자료로 알차게 활용하고 있다. 거기다 아무리 바빠도 공부를 계속해야 할 핑계가 보장된다. 그 공부들이 결국 일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클래스에 온 분들은 이런 줄 몰랐다고, 덕분에 많은 것을 알았고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나 역시 그분들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자극받는다.



 



버티기



직장 다닐 때는 1년을 버티지 못하고 퇴사를 선택했다. 그럴 때마다 "그렇게 성급하게 결정하는 거 아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사계절은 겪어봐야 한다. 그래야 진가를 알 수 있다."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곤 했다. 나름 진지하게 고민하고 퇴사를 결심한 것이었지만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정말로 나의 인내심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사회생활 적응하는 데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랬던 내가 올해로 5년째 트망트망을 놓지 않고 있다. 직장 다닐 때보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훨씬 어려운 건 말할 것도 없고, 전 세계를 휩쓴 팬데믹 상황까지 겪었다. 그런데도 이 일을 계속하고 있는 나를 보면 예전의 나와는 참 다른 사람 같다. 




사계절을 겪기도 전에 퇴사를 선택했던 과거의 나는, 무의식적으로 느낀 게 아닐까 싶다. 이곳은 내가 있을 곳이 아니라는 걸. 있을 곳이 아닌 곳에서 사계절을 겪은들, 십 년을 버틴 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지금 하는 일이 나의 천직인지 아닌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가고 싶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건 확실히 느낄 수 있다. 현실적으로 생각해보면 당장 다음 달의 내 모습도 그려지지 않지만, 그래도 변함이 없다. 이 일을 시작하길 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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