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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망트망 Nov 03. 2021

편리한 시대가 퍽 불편합니다

우리가 '편리'와 맞바꾼 것




커피 마실래?


응, 나는 커피 둘, 설탕이랑 프림은 하나
나는 프림 빼고 커피 둘에 설탕 하나



지금은 듣기 어려운 대화지만 어렸을 때만 해도 집에서 종종 듣던 소리였다. 우리 집 식탁 한 켠에는 커피, 설탕, 프림이 각각의 유리병에 들어있었고, 식사를 마치고 나면 어른들은 취향대로 커피를 타 마시곤 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한 봉지 안에 커피, 설탕, 프림이 다 들어있다는 믹스커피가 등장했다. 간편함을 강조하며 온갖 광고를 도배하기 시작했는데, 그 광고를 보며 '집에 커피 다 있는데 저런 걸 누가 사지?'라고 생각했던 게 기억난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한 건 나뿐이었나 보다. 어느새 식탁에는 커피병 대신 믹스커피가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편리한 시대



몇십 년 전 믹스커피 바람이 분 것처럼 몇 년 전부터는 배달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짜장면, 떡볶이, 아이스크림부터 시작해 대파부터 상추까지 필요한 건 그게 무엇이든 집 앞에 배달해 주는 시대로 바뀌었다. 덕분에 우리는 클릭 몇 번으로 온갖 음식이 배달되고, 작은 봉지만 뜯으면 온갖 종류의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배달 어플과 믹스커피는 우리를 덜 움직이게 만들고, 그래서 우리는 편리하다고 느낀다.



예전에는 짜장면을 먹고 나면 그릇을 깔끔하게 헹궈 집 앞에 내놓곤 했다. 떡볶이가 먹고 싶으면 분식집으로 향했다. 커피가 마시고 싶으면 티스푼을 들고 커피, 설탕, 프림을 계량해가며 커피를 타서 마셨다. 지금은 짜장면을 먹고 나서 그릇을 내놓을 필요가 없다. 멀리 떨어져 있는 분식집 떡볶이도 클릭 몇 번이면 집에서 먹을 수 있다. 커피를 마시고 싶으면 카페모카부터 마끼아또까지 다양하게 나온 '믹스커피' 중 고르면 된다. 대신 우리가 먹고 마신 자리에는 항상 무언가가 남는다.






우리가 '편리'와 맞바꾼 것



인류가 본격적으로 플라스틱을 사용하기 시작한 건 1950년대라고 한다. 그런데 플라스틱이 썩기까지 필요한 시간은 500년. 이는 인류가 처음으로 사용한 플라스틱도 아직까지 썩지 않고 남아있다는 뜻이다. 덕분에 바다에는 플라스틱 쓰레기로만 이루어진 '섬'이 등장했다. 플라스틱 쓰레기는 동물의 배에 들어가도 분해되지 않고 그대로 남아 그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다.




Photo by Tim Mossholder on Unsplash






편리함이 불편하다.



이쯤 되면 저절로 떠오르는 의문이 있다. 티스푼으로 계량하던 그 시절, 커피 타는 게 그렇게 불편했을까? 떡볶이가 먹고 싶으면 분식집에 직접 가야 했던 그 시절은 견디기 어려울 만큼 힘들었을까?



만약 그렇지 않다면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편리'해져야 하는 걸까?



혹자는 그냥 편리하게 살면 되지 왜 이런 걸 생각해야 하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흔히 '홀로 살 수 없다.'라고 한다. 이는 혈혈단신으로 혼자 살기 힘들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인간'만' 살 수 없다는 뜻으로도 들린다. 동물인 우리는 인간이 아닌 동물과 함께 살아야 하며, 모든 동물은 자연 안에서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지구에 인간만 있는 것처럼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우리가 선택하는 '편리함'이 다른 동물과 자연에게는 어떤 영향을 끼칠지 전혀 고려하지 않는 시대다. 편리함에 중독된 사회는 더 편해지라고만 말한다. 편리함 뒤에 희생되고 파괴된 것들은 보여주지 않는다. '편리'하기만 하다면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추앙받는 사회다.






플라스틱은 자연과 동물에게 죽음을 선사한다.

플라스틱은 오직 인간에게만 편리하다.



Photo by Julia Joppien on Unsplash




우리는 '편리'를 위해 주변의 모든 것을 죽이고 있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모든 것을 살리기 위해서는 우리가 좀 더 불편해져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플라스틱으로 죽어가는 자연과 동물을 살리기 위한 행동이라고 해서 거창한 것만 있는 건 아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해 보는 건 어떨까. 떡볶이가 먹고 싶으면 어플부터 열 게 아니라 개인 용기를 들고 분식집에 직접 가는 것, 레트로 스타일로 티스푼으로 계량해 커피를 타 마시는 것 등 사소한 것부터 시작해도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일 수 있다.



'편리함'을 무기 삼아 자본을 축적해 온 기업에게 책임을 요구하는 방법도 있다. 배달 어플에서 다회용기를 사용하도록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불필요한 편리함을 마케팅 삼는 제품은 보이콧하는 등 기업이 건강한 사회를 위해 책임을 다하도록 요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하나하나 실천해가다 보면 지금보다 불편해질 것이다. 지금보다 더 많이 움직이고 훨씬 많이 고민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기꺼이 그 모든 번거로움과 불편함을 즐길 때 동물이 살고 자연이 살 수 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우리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혼자 사는 존재가 아니다. 자연이 숨 쉴 수 있을 때, 인간이 아닌 동물도 행복할 때 우리도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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