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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망트망 Feb 04. 2022

명절 노동, 비건 지향하면서 해방되다

비건 지향인에게 찾아온 뜻밖의 선물




옛날 옛적에



명절이 마냥 즐거웠던 시절이 있었다. 그 당시 나에게 명절은 '노는 날'이었다. 평소에 만나기 힘든 사촌들도 명절만 되면 다 만날 수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거라 처음에는 조금 어색했지만 한두 시간만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서로 깔깔거리며 놀기 바빴다. 헤어질 시간이 되면 처음에 쭈뼛거리느라 놀지 못하고 허투루 보냈던 시간이 얼마나 아까웠는지 모른다.



아홉 살 쯤이었을까? 사촌과 방방 뛰며 놀고 있는데 누군가 우리를 보며 말했다. (무슨 말을 했는지는 기억이 나는데 누가 말했는지는 기억에 남아있지 않은 것도 참 묘하다.)

 

"그렇게 노는 것도 곧 끝이다. 지금 실컷 놀아둬."


그런 말을 듣고 실컷 놀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이미 흥은 깨져 버렸고 왜 곧 놀지 못한다는 건지 찝찝하면서도 불길한 느낌만 남았다.



 



'명절 논리'



얼마 지나지 않아 미스터리는 풀렸다. 어느새 난 전을 부치는 엄마나 이모 옆에서 보조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소금, 후추로 밑간을 하는 것을 시작으로 밀가루, 달걀 담당 등 해가 지날수록 점점 막중한 역할을 맡았다. 그리고 불을 맡겨도 될 만큼 컸다고 판단되었을 때는 작은 프라이팬 하나가 내 담당으로 할당되었고, 몇 년 지나지 않아 나는 완연한 '전 담당'이 되었다. 명절 때마다 전을 담당하다 보니 점점 명절이 싫어졌다. 이제 더 이상 명절은 노는 날이 아니었다. '전을 부쳐야 하는 날'이었다.




명절 노동에서 벗어나고 싶어 얼마나 다양하게 반항했는지 모른다. 그럴 때마다 나를 굴복시킨 논리가 있었으니 "그래도 명절인데 이 정도는 해야지"와 "너도 먹을 거잖아"다. 맨날 있는 날도 아니고 일 년에 한두 번 있는 명절에 특별한 음식을, 그것도 다른 사람만 먹는 것도 아니고 너도 먹을 음식을 하는 건데 뭐가 그리 불만이냐는 '명절 논리'로 밀어붙이기 시작하면 나도 할 말이 없었다.



머리가 크면서 페미니즘을 들먹이며 새로운 방식으로 반란을 시도해봤다. 하지만 서로 목소리만 커지다 빈정만 상할 뿐, 설에도 추석에도 내 자리는 불 앞이었다.






뜻밖의 선물



영영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불과의 동거도 예상하지 못한 시점에서 갑자기 끝나버렸다. 육전, 명태전, 산적같이 '명절에만 먹는 특별한 전'을 전 담당이 안 먹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전 담당이 동물과 동물의 알을 먹지 않자 "너도 먹을 거잖아"가 통하지 않기 시작했고 명절 논리는 힘을 잃어갔다.



그래도 처음 한두 해에는 '그래도 명절인데'의 기세가 워낙 등등했기 때문에 전 담당의 권한으로 '나도 먹을' 전을 만들기 시작했다. 팽이버섯전, 애호박전이 육전과 명태전의 자리를 대신했다. 그다음 해에는 버섯튀김과 고구마튀김이었다. 그런데 동물도, 닭알도 들어가지 않은 전은 혈육들 입맛에 맞지 않았나 보다. 아니면 버섯이나 고구마는 '그래도 명절에' 먹을 음식이 아니었는지도 모르겠다.



전 부치는 노동까지 떠안을 여유가 있는 여성 혈육은 없었고, 노동을 감수하면서까지 '명절 전'을 사수할 남성 혈육도 없었다. 덕분에(?) 우리 집은 올해 처음으로 전 없는 설을 보냈다.




불 앞에 서 있지 않아도 되는 명절엔 할 수 있는 게 정말 많았다. 마음껏 쉴 수도 있었고, 해야지- 해야지-라고 다짐만 하고 미뤄뒀던 것들도 시도해 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 온몸에 기름 냄새를 뒤집어쓴 채 허리나 어깨의 통증을 호소하지 않아도 되었다. 명절이란 게 이렇게 산뜻한 것이었다니. 전 담당에서 해방되고 나서야 비로소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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