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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망트망 Feb 01. 2021

육수에 익숙한 우리, 왜 '채수'는 낯설까

국물의 민족이 하는 은근한 차별




국물의 민족? 육수의 민족!



요리를 어느 정도 하는 사람이라면 육수 내는 것도 익숙할 것이다. 국물 요리가 많은 한국에서 육수는 기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TV 프로그램에서 육수 대신 채수를 사용하는 모습이 나오면서 화제가 되었다. 그리고 그 프로그램의 연관 검색어로 '채수 뜻'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단언하건대 그 프로그램에서 육수를 사용했다면 '육수 뜻'이라는 연관 검색어는 올라오지 않았을 것이다. 멸치, 디포리, 사골 등 온갖 것으로 육수를 내는 것에는 익숙한 우리, 왜 야채로 국물을 내는 것에는 익숙하지 않을까?



 



어쩔 수 없이 친해진 채수



난 사골로도, 디포리로도, 그 흔한 멸치로도 육수를 내 본 적이 없다. 해장할 때가 아니면 국을 찾는 일이 거의 없고 일이 바쁘면 간단하게 해결하는 걸 선호해서 국이나 찌개를 끓여본 횟수가 손에 꼽기 때문이다. 그렇게 요리와 친하지 않던 내가 비건을 지향하고 난 후부터는 요리하는 날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아무리 국 없이 밥을 잘 먹는다고 해도 가끔 국물이 그리울 때가 있다. 감자랑 애호박이 듬뿍 들어간 된장찌개, 콩나물이 한가득 들어간 콩나물국, 모두 언뜻 보기에 비건 음식으로 보이지만 여기에는 대부분 멸치 육수가 들어가기 때문에 비건이 아니다. 그래서 국물을 먹고 싶을 때는 직접 만들어 먹어야 했다.



멸치 육수 없이 국물 요리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야채를 넣고 채수를 내면 된다. (물론 그냥 물이나 쌀뜨물을 활용해도 된다.) 잘 생각해보면 멸치 육수를 낸다고 해도 멸치만으로 국물을 내지는 않는다. 대부분 멸치와 함께 다시마, 표고버섯, 대파, 무 등 다양한 야채를 활용한다. 채수를 만드는 건 어렵지 않다. 멸치 육수 내는 재료에서 멸치만 빼면 된다.






맛있는 맛? 익숙한 맛!



우리는 국물 요리에는 익숙하지만 채수로 만든 요리에는 익숙하지 않다. 배추나 감자 등 야채만 넣어 만드는 된장국도 국물만큼은 왜 멸치 육수를 고집하는 걸까?



대부분 육수가 없으면 감칠맛이 안 난다고 생각한다. 나도 채수로 요리를 해보기 전에는 그 생각을 철석같이 믿었다. 감칠맛을 위해서 육수는 어쩔 수 없는 거구나, 다른 건 몰라도 국에 멸치 육수는 필요하구나,라고. 그런데 채수로 요리를 해 보니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걸 몸소 느꼈다. 오히려 채수에는 육수에서는 맛볼 수 없는 깔끔하고 담백한 매력이 있다.



사실 난 몇 년 전까지 스스로가 담백한 맛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심심하고 담백한 건 맛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는 채수와 불린 떡, 대파만 넣고 담백하게 끓인 떡국이다. 몇 년 전의 나였다면 가차 없이 맛없다고 평했을 맛인데 요즘에는 그 깔끔한 맛이 어찌나 좋은지, 나도 당황스러울 정도다.




우리는 '익숙한 맛'을 '맛있다'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멸치, 디포리, 사골 등등 수많은 육수에 길들여졌던 나는 살짝은 비리고 끈적한 맛을 감칠맛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맛이 맛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것들과 거리를 두기 시작하자 요즘은 그 냄새조차 조금 힘들어졌다.



채수와 친해지면 깔끔하고 담백한 맛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그것에 익숙해지면 즐기게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육수를 '정답'이라고 생각할까? 왜 무조건 동물성 재료가 들어가야 '맛'이 난다고 생각할까?


동물성 재료가 들어가야 맛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 탓에 아예 다른 걸 시도해 보지 않은 건 아닐까? 그리고 그 때문에 육수의 맛에만 익숙해진 건 아닐까?




그동안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차별한 것 같다. 채수에게는 별 이유도 없이 친해질 기회조차 주지 않았고, 육수와는 지나칠 정도로 친하게 지냈다. 덕분에 채수와는 점점 멀어지고 육수는 지나치게 익숙해져서, 채수 특유의 깔끔한 맛은 생소해져 버렸다.



이제 색안경을 벗고 채수에게도 친해질 기회를 주면 어떨까? 그동안 맛보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가 열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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