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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망트망 Mar 12. 2021

맛있어야만 하는 것

'처음'과 음식에 대해




마라를 무슨 맛으로 먹는지 모르겠어.



정말 그랬다. 왜 그렇게들 마라에 열광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안 먹어본 건 아니었다. 갑자기 유행하기 시작하는 마라가 궁금해서 일부러 먹으러 간 적이 있었다.



그 당시만 해도 마라탕 집이 프랜차이즈로 생길 만큼 흔했을 때는 아니었다. 간판부터 직원까지 현지 포스를 풍기는 마라탕 집에 갔다. 탕과 볶음 중에 고를 수 있다길래 볶음을 골랐다. 그렇게 난생처음 마라샹궈를 접했다. 자극적인 맛을 좋아하는 편이라서 빨갛게 볶아져 나온 마라샹궈를 보니 만족스러운 기분이 올라왔다. 분명 맛있을 수밖에 없는 비주얼이었다. 한껏 기대하고 한입 먹어봤다. 입에 넣자마자 느껴지는 자극적이고 매운맛, 그 맛에 감탄하기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향이 있었다.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알싸하면서도 묘한 향이었다.



참고로 말하자면 그 당시 난 하루가 멀다 하고 비누를 만들고 있었다. 그런데 마라 특유의 향이 비누 만들 때 사용하던 페퍼민트 천연 에센셜 오일의 알싸한 향과 비슷하게 느껴졌다. 음식에서 비누에 넣는 향이 나다니,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며 다시 먹어봤다. 하지만 먹으면 먹을수록 내 입안에는 '비누에 넣는 향'이 진하게 남을 뿐이었다. 그때부터였다. 마라를 멀리하기 시작한 것은.




왜 이렇게까지 유행하나, 싶을 정도로 크게 유행하다가 시간이 지나면 그런 게 있었냐는 듯 자취를 감추는 것들이 있다. 마라도 그럴 줄 알았다. 



그런데 내가 '마라는 나랑 안 맞아'의 입장을 고수하는 동안 마라탕 집은 우후죽순처럼 늘어나며 세력을 확장시켜 나갔다. 1,2년 유행하다 사라지기는커녕 짜장면, 짬뽕의 자리까지 넘볼 정도라니, 이쯤 되면 다시 한번 도전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음식의 '처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마라는 내 취향이 아니라서 못 먹는다고 했던 그동안의 시간이 민망해질 정도로 지금은 마라가 좋아졌다. 요즘은 한국인 입맛에 맞춰 마라향을 조절한 식당들이 많이 생겨서 그런지 몰라도 몇 년 전과는 다르게 알싸한 마라향이 견딜만했다. 그리고 재료를 선택할 수 있다는 점도 크게 작용했다. 비건을 지향한 이후로 고기 아니면 해물 때문에 짬뽕을 못 먹은 지 꽤 되어서 자극적인 빨간 국물이 그리웠는데, 내 취향에 맞춘 야채와 다양한 두부류로 채운 마라탕은 그 그리움을 해소시켜줬다.



처음 먹었던 마라샹궈가 별로였다는 이유로 온 나라가 마라 열풍으로 들썩거려도 몇 년 동안 마라는 쳐다보지도 않았던 나의 지난 모습을 떠올리며 '처음'의 영향력을 실감했다. 그러면서 나의 '첫 음식'들을 떠올려봤다. 



나의 첫 돈가스는 유치원생 시절이었다. 갑자기 첫눈이 펑펑 쏟아지던 날, 부모님은 첫눈이 내릴 때는 외식을 해야 한다며 경양식집에 데려갔다. 그리고 돈가스를 주문해줬다. 평범했던 저녁, 첫눈을 맞으며 예정에도 없던 외식을 하러 가던 날을 난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그리고 난생처음 먹은 돈가스는 너무 맛있었다. 



그 이후로 돈가스는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 되었고, 난 시도 때도 없이 돈가스를 찾았다. 하지만 매번 돈가스가 맛있었던 건 아니다. 어떤 돈가스는 눅눅했고, 어떤 돈가스는 기름에 절어있었고, 어떤 돈가스는 비린내가 너무 심하게 났다. 그렇지만 그럴 때마다 '그 식당이 돈가스를 맛없게 하는 거'였고, '그 브랜드의 돈가스가 별로'라고 생각했다. 돈가스라는 음식이 그렇게 맛있는 음식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처음'을 바꾼다는 것



아무리 떠올려보려고 해도 언제 처음으로 고기를 먹었는지는 생각나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 특별한 음식으로, 맛있는 음식으로 고기를 접했을 것이다. 그리고 난 '특별하고 맛있는' 고기를 유난히 좋아했다.



만약 고기를 '맛있는 음식'이 아니라 '동물'로 먼저 접했다면 어땠을까. 분명 고기를 동물로 인식했던 순간은 있었다. 백숙을 처음 봤던 날, 적나라하게 드러난 닭의 피부를 보며 경악했다. 삼겹살에 박혀있는 돼지의 털을 발견한 날, 애써 준비한 고기를 먹지 않는다며 어른들에게 혼났었다. 



고기가 동물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단서들은 곳곳에 있었고, 그것들은 "고기 = 맛있는 음식"이라는 공식에 조금씩 균열을 일으켰다. 하지만 고기는 계속 맛있는 음식이어야만 했다. 처음부터 그랬으니까.




점점 커지는 균열을 못 본 채 하면 몇십 년을 살다가, 고기가 되기 위해 태어나고 길러지는 동물의 삶을 적나라하게 들여다본 후로는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었다. 결국 고기를 먹지 않기로 결심했다.



고기보다 해산물을 더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고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난 어느 쪽도 아니었다. 해산물보다는 무조건 고기였고, 고기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오히려 이해되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 내가 고기를 끊는다니, 엄청나게 힘들 거라고 예상하고 마음의 준비도 단단히 했다.



그런데 당황스러울 정도로 힘들지 않았다. 고기 없이도 충분히, 아주 잘, 지낼 수 있었다. 이렇게나 쉽게 고기 없이 살 수 있었는데, 왜 그전에는 고기를 먹지 않고 살 수 있을 거라는 생각 자체를 하지 못했는지 의아할 정도였다.


 




맛있어야만 하는 음식



처음에 별로였던 마라를 좋아하기까지 몇 년이 걸렸다. 처음에 특별하고 맛있는 음식으로 만난 고기를 동물로 인식하고, 고기 없는 밥상을 마주하기까지는 몇십 년이 걸렸다. 이처럼 '처음'은 우리네 삶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다.



이렇게 중요한 첫 경험을 대부분 어렸을 때 겪어야 한다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벌어졌던 그때의 기억 속에서 자유롭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니 말이다. 내가 좋아한다고 말하는 음식들은 정말 맛있어서 좋아하는 걸까. 아니면 어떤 기억 때문에 반드시 맛있어야만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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