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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망트망 Oct 02. 2021

비인간 동물을 좋아하는 인간 동물이 되고 싶어서

세계 농장동물의 날을 맞이하여




동물을 좋아한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던 시절이 있었다. 



기억이 닿는 한 나는 언제나 동물과 함께 살고 싶어 안달이었다. 학교 앞에서 병아리를 팔면 그냥 지나치지 못했고, 생일 선물로 뭘 갖고 싶냐고 물을 때마다 개를 사달라고 졸랐고, (지금 생각해보면 천만다행으로 그 소원은 한 번도 이루어진 적이 없다.) 길에서 고양이를 보면 그냥 지나치질 못했다. 동물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이유로 장래희망으로 수의사까지 고려할 정도였으니 그 생각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난 동물을 좋아해.




그런 나였기에 '동물의 행동과 복지'라는 강의 제목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비록 수학 때문에 수의사는 포기했을지언정 동물들에 대해 더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영어를 좋아하지 않고 그래서 잘하지도 못하는 내가 (동영상 강의이긴 했지만) 영국에 있는 대학의 강의를 들으려고 했다니, 지금 생각해보면 무슨 배짱으로 그렇게 무턱대고 시작했는지 모르겠다. 30분짜리 동영상 강의를 이해하려면 몇 시간이나 필요했고, 한 챕터를 끝내고 나면 반나절이 훌쩍 지나가 있곤 했다. 학점을 받는 것도 아니었고, 자격증을 주는 것도 아니었다. 중간에 그만둬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 강의였는데 그만할 수가 없었다. 




동물을 더 알고 싶어서 듣기 시작한 강의. '더 알고 싶다'는 속뜻에는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는 오만이 깔려 있었다. 강의를 듣기 시작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알 수 있었다. 난 동물들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동물들은 집 앞이 고속도로로 변해 차에 치여 죽기 일쑤였고, 산 채로 잡혀 투명한 유리 안에 갇혀 평생을 구경거리로 살아야 했다. 공장처럼 변해버린 축사에서는 그들을 고기로 만들어내기 위해 '생산'하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나는 '좋아하는' 동물을 먹고 있었다. 






나는 정말 동물을 좋아하는 걸까?



집에 동물을 들이고 싶어서 안달이었던 나, 알고 보니 난 하루가 멀다 하고 집에서 동물을 만나고 있었던 것이다. 아침, 점심, 저녁 끼니때마다 그들은 다양한 형태로 식탁에 올라왔다. 난 그들을 '내가 좋아하는 동물'로 인식하기를 꺼렸다. 그리고 그들이 식탁에 오르기 위해 어떤 일들을 겪어야 하는지 몰랐다. 아마 알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한번 알고 난 다음에는 돌이킬 수 없었다. 그때부터였다. 고기가 동물로 보이기 시작한 것은.




한동안 동물을 좋아한다는 말을 감히 입에 올릴 수 없었다. 좋아한다면서 난 그들에 대해 너무 몰랐고,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무관심은 그들을 착취하고 학대하는 시스템에 가담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내가 어떤 일에 가담되어 있는지 알아야 했다. 내가 구입하고, 먹는 것들이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 알아야 했다. 그리고 내 결정에 책임을 져야 했다.



그때부터였다. 인생이 조금 불편해진 것은. 그리고 조금 가벼워진 것도. 






10월 2일은 세계 농장동물의 날

10월 4일은 세계 동물의 날



우리는 무지를 변명 삼을 수 없다. 그것은 무관심일 뿐이다. 오늘날 세대는 더 많은 것을 안다. 우리는 공장식 축산업에 대한 비판이 대중의 양심 속으로 파고든 시대에 사는 기회와 부담을 다 안았다. 우리는 동물을 먹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진실을 알았을 때 어떻게 하셨나요라는 질문을 받게 될 사람들이다. 


-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 조너선 사프란 포어




지금은 말할 수 있다. 난 동물을 좋아한다고. 그래서 그들에게 해가 되지 않는 삶을 살고 싶다고.

10월에는 비인간 동물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인간 동물이 더 늘어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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