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중 불행지수가 가장 높은 시간대를 꼽으라면 단연 아침이다. 해파리처럼 둥실둥실 꿈속을 떠다니다가도 알람 소리만 울리면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잠 속에 푹 빠져있는 나를 수면 위로 쑤욱 건져내는 것 같은 알람 소리가 그렇게 싫을 수 없다.
직장에 다닐 때에는 아침 불행지수가 피크를 찍었다. '평생 이렇게 살 수밖에 없는가'에 대한 고찰을 매일 아침마다 진지하게 했더란다. 그때에는 직장만 때려치우면 괴로운 아침 시간도 끝날 거라고 생각했다.
직장이라는 시스템과 멀어진 지 몇 년이나 지났지만 나는 요즘도 알람 소리와 함께 무거운 몸을 일으킨다. 아이러니하게도 '내 일'을 시작하고 나서 늦잠 자는 것도 쉬는 것도 더 힘들어졌다.
이미 만들어진 시스템에 내가 맞춰가야 하는 게 직장 생활이라면,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에 나만의 시스템을 만들어가야 하는 게 '내 일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둘 중 뭐가 더 좋을지는 각자의 성향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직장을 그만둔다고 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고 해서, 파라다이스가 펼쳐지는 건 아니라는 사실이다.
나 같은 경우 직장 다닐 때보다 '쉼'에 있어서 더 각박해졌다. 아직 갖추어진 게 아무것도 없어서, 할 일이 많이 남아서, 매출이 시원치 않아서, 새로운 걸 기획해야 해서 등등 달려야 하는 이유는 차고 넘치는데 멈춰야 할 이유는 도통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루 종일 쌩쌩하길 바랐다. 직장 다닐 때에는 비몽사몽 일어나 출근길에 나섰지만 내 일을 시작한 뒤로는 그렇게 허비할 시간이 없었다. 아침부터 머리가 팽팽 돌아가도록 일어나자마자 커피를 들이켰다. 공방에 출근해서 한 잔, 점심 먹고 나서 한 잔, 몸이 조금이라도 늘어질 듯싶으면 부리나케 카페인을 공급했다.
그렇게 5년 이상 지내자 몸에 이상 신호가 오기 시작했다. 특별한 이유 없이 속이 쓰리고 메슥거렸다. 커피가 의심되긴 했지만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마법의 물을 포기할 순 없었다. 그래서 몇 달 동안 무시했더니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을 만큼 증상이 심해졌다. 속이 아파서 잠들기도 힘들어지자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느꼈다.
커피를 그만 마시긴 해야겠는데 일종의 의식처럼 되어버린 커피 마시기를 하루아침에 끊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대체재로 보리를 커피처럼 로스팅해서 '커피스러운' 맛이 난다는 보리 커피를 구입했다.
카페인이 들어가질 않아서 아침부터 축 쳐져있으면 어쩌나, 머리가 안 돌아가고 멍하게 있으면 어쩌나, 일에 지장이 생기면 어쩌나 등등 수많은 걱정이 올라왔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었기에 보리 커피로 하루를 시작했다.
걱정과 달리 보리 커피를 마셔도 크게 달라지는 건 없었다. 하루 종일 꾸벅꾸벅 졸지도 않았고, 컨디션이 너무 다운되어서 일에 지장이 생기는 경우도 없었다.
그래서 도전을 조금 더 확장시켜봤다. 출근해서 마시는 커피도 디카페인으로 바꿔봤다. 디카페인 커피는 카페인만 제거한 커피 원두라서 커피 맛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심지어 유기농에 공정무역 제품이라 그런지 맛도 더 좋다.)
보리 커피와 디카페인 커피로 지낸 지 4개월째, 카페인 없이는 하루가 시작되지 않는다고 믿었던 과거의 내가 허무해할 정도로 아무렇지도 않다.
돌이켜보면 커피를 일종의 연료처럼 생각했다. 연료만 채워주면 24시간 돌아가는 기계처럼 카페인을 들이부으며 계속 '좋은' 컨디션으로 일 해주길 바랐다. 매정할 정도로 스스로를 다그치기만 했다. 조금만 지치거나 피곤한 기색을 내비치면 카페인을 먹이며 계속 달리게 했으니까.
다그치는 걸 멈추니 나만의 속도를 찾아가기 시작한 것 같다. 달리다가도 힘들면 천천히 걷기도 하고, 잠시 앉아 쉬기도 한다. 좀 더 달려야 하는 건 아닌지, 이러다 나만 뒤처지는 건 아닌지, 걱정들이 불쑥 올라오는 일도 있지만 이제는 스스로를 그만 다그치고 조금 더 상냥해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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