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트망트망 Jul 22. 2022

카페인을 줄였더니 매정했던 내가 보이더라




불행한 아침



하루 중 불행지수가 가장 높은 시간대를 꼽으라면 단연 아침이다. 해파리처럼 둥실둥실 꿈속을 떠다니다가도 알람 소리만 울리면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잠 속에 푹 빠져있는 나를 수면 위로 쑤욱 건져내는 것 같은 알람 소리가 그렇게 싫을 수 없다.



직장에 다닐 때에는 아침 불행지수가 피크를 찍었다. '평생 이렇게 살 수밖에 없는가'에 대한 고찰을 매일 아침마다 진지하게 했더란다. 그때에는 직장만 때려치우면 괴로운 아침 시간도 끝날 거라고 생각했다.



직장이라는 시스템과 멀어진 지 몇 년이나 지났지만 나는 요즘도 알람 소리와 함께 무거운 몸을 일으킨다. 아이러니하게도 '내 일'을 시작하고 나서 늦잠 자는 것도 쉬는 것도 더 힘들어졌다.






파라다이스는 없다



이미 만들어진 시스템에 내가 맞춰가야 하는 게 직장 생활이라면,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에 나만의 시스템을 만들어가야 하는 게 '내 일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둘 중 뭐가 더 좋을지는 각자의 성향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직장을 그만둔다고 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고 해서, 파라다이스가 펼쳐지는 건 아니라는 사실이다.



나 같은 경우 직장 다닐 때보다 '쉼'에 있어서 더 각박해졌다. 아직 갖추어진 게 아무것도 없어서, 할 일이 많이 남아서, 매출이 시원치 않아서, 새로운 걸 기획해야 해서 등등 달려야 하는 이유는 차고 넘치는데 멈춰야 할 이유는 도통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루 종일 쌩쌩하길 바랐다. 직장 다닐 때에는 비몽사몽 일어나 출근길에 나섰지만 내 일을 시작한 뒤로는 그렇게 허비할 시간이 없었다. 아침부터 머리가 팽팽 돌아가도록 일어나자마자 커피를 들이켰다. 공방에 출근해서 한 잔, 점심 먹고 나서 한 잔, 몸이 조금이라도 늘어질 듯싶으면 부리나케 카페인을 공급했다.






플라세보 효과라도,



그렇게 5년 이상 지내자 몸에 이상 신호가 오기 시작했다. 특별한 이유 없이 속이 쓰리고 메슥거렸다. 커피가 의심되긴 했지만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마법의 물을 포기할 순 없었다. 그래서 몇 달 동안 무시했더니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을 만큼 증상이 심해졌다. 속이 아파서 잠들기도 힘들어지자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느꼈다.



커피를 그만 마시긴 해야겠는데 일종의 의식처럼 되어버린 커피 마시기를 하루아침에 끊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대체재로 보리를 커피처럼 로스팅해서 '커피스러운' 맛이 난다는 보리 커피를 구입했다.


 



카페인이 들어가질 않아서 아침부터 축 쳐져있으면 어쩌나, 머리가 안 돌아가고 멍하게 있으면 어쩌나, 일에 지장이 생기면 어쩌나 등등 수많은 걱정이 올라왔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었기에 보리 커피로 하루를 시작했다.



걱정과 달리 보리 커피를 마셔도 크게 달라지는 건 없었다. 하루 종일 꾸벅꾸벅 졸지도 않았고, 컨디션이 너무 다운되어서 일에 지장이 생기는 경우도 없었다.






그래서 도전을 조금 더 확장시켜봤다. 출근해서 마시는 커피도 디카페인으로 바꿔봤다. 디카페인 커피는 카페인만 제거한 커피 원두라서 커피 맛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심지어 유기농에 공정무역 제품이라 그런지 맛도 더 좋다.)






조금 더 상냥하게,



보리 커피와 디카페인 커피로 지낸 지 4개월째, 카페인 없이는 하루가 시작되지 않는다고 믿었던 과거의 내가 허무해할 정도로 아무렇지도 않다.



돌이켜보면 커피를 일종의 연료처럼 생각했다. 연료만 채워주면 24시간 돌아가는 기계처럼 카페인을 들이부으며 계속 '좋은' 컨디션으로 일 해주길 바랐다. 매정할 정도로 스스로를 다그치기만 했다. 조금만 지치거나 피곤한 기색을 내비치면 카페인을 먹이며 계속 달리게 했으니까.



다그치는 걸 멈추니 나만의 속도를 찾아가기 시작한 것 같다. 달리다가도 힘들면 천천히 걷기도 하고, 잠시 앉아 쉬기도 한다. 좀 더 달려야 하는 건 아닌지, 이러다 나만 뒤처지는 건 아닌지, 걱정들이 불쑥 올라오는 일도 있지만 이제는 스스로를 그만 다그치고 조금 더 상냥해지기로 했다.









이전 11화 코로나 시대와 '저렴'한 재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