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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망트망 Jan 27. 2022

신념을 지키며 ‘사업’을 한다는 것은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소상공인의 구구절절




일단 많이 만들어라?



소위 '사업화' 하려면 대량생산은 필수라고 말한다. 대량생산 대량소비는 자본주의의 핵심이라고도   있기에 이런 시스템에서 돈을 벌려면 대량생산은 필수일 것이다. 물론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많이 만든 ‘무언가  팔기 위해서는 너도나도 그것 원하도록 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소비를 촉진하기 위한 조치들이 따라와야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생각해보면 난 대량생산 대량소비보다 '과잉생산' '과잉소비'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내가 운영하는 브랜드가 자본주의의 공식과는 너무나 동떨어져 있다는 점이다. 일단 대량생산이 힘들다. 1인 기업으로 제품 기획, 제작, 포장, 배송 작업까지 모든 것을 기계도 없이, 홀로 해야 하기 때문에 대량생산은 아예 불가능하다고 보는 것이 더 적합하겠다.



혹자는 그럼 외주를 하면 되지 않겠냐고 반론하겠지만 나 스스로가 과잉소비를 비판하는 입장이라는 게 더 큰 문제라면 문제겠다. 꼭 필요하다고 보기 어려운 것들을 일단 많이 만들어 놓은 후 '소비하게끔' 만드는 것이 자본주의의 큰 문제점 중 하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맥락에서 과잉소비를 촉진하기 위한 활동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비건'이 트렌드?



팜프리 비건 비누를 처음 선보였던 5년 전은 '비건 비누'라는 용어도 생소했던 시기였다. 플리마켓이나 페어에 참가하면 제일 많이 듣는 질문이 "비건 비누가 뭐예요?"였다.



그런데 '비건 비누', '팜프리 비누'가 돈이 되기 시작했나 보다. 언제부턴가 '비건' '팜유 프리' 타이틀을 단 비누들이 쏟아져 나왔다. 사업 초기부터 지켜봐 왔던 사람들 중에는 이런 현상을 안타까워하며 나도 대량생산으로 전환하라고 진심 어린 충고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대량생산을 하기 위해서는 '트망트망'이라는 브랜드를 통해 전하고 싶었던 가치와 수익 사이에서 타협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시작한 일이었다면 그 누구보다도 재빠르게 대량생산으로 전환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시작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제품에 담고 싶었던 가치가 훼손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다시 처음부터,



다른 곳에서는 '사업화'를 위해 고민할 때 난 재료에 대한 고민부터 다시 시작했다. 자연과 동물에게 해가 되는 재료는 사용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기 위해 동물 학대 여부가 확인되지 않는 일반 코코넛 오일을 과감하게 포기하고 공정무역 제품으로 바꿨다.



덕분에 수익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사업화는 더 어려워졌다. 하지만 팜프리 비건 비누를 만들기 시작한 이유 - 자연과 동물에게 해가 되지 않는 제품을 만들고 싶다 - 에는 한 걸음 더 가까워졌다.






소품종 소량 생산



'공존'이라는 가치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필요로 할 때 유용하게 쓰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비누를 만들고 있다. 꼭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꼭 필요한 만큼만 만들기로 결심하면 제품의 가짓수도 많을 필요가 없고, 수량도 많을 필요가 없다. 그래서 트망트망은 지금도 소품종 소량 생산을 고집하고 있다.



소량생산으로 수량이 많지 않기 때문에 입점 업체를 마구 늘리기도 어렵다. 방부제 같은 합성 화학 성분도 사용하지 않고, 비닐 같은 플라스틱 포장도 하지 않기 때문에 유통이나 보관에 신경 써야 할 것들도 많은 편이다. 심지어 나도 까다로운 편이라 입점 제안이 와도 입점을 결정하기 전에 많은 것들을 따져본다.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 업체인지, 어떤 제품들을 취급하는지 등 이것저것 확인하고 결정한다.


(이렇게 까다로운 제품과 대표임에도 불구하고, 팜프리 비건 비누에 담긴 가치를 보고 함께해주는 협력업체에게 늘 감사하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그렇게 이상적인 이야기만 해서 어떻게 먹고 살 거냐고. 부정하진 않겠다. 실제로 트망트망을 시작한 이래로 순탄했던 적은 없었고, 지금도 근근이 버티고 있다.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상황에 암울해질 때도 있다.



하지만 누군가 신념을 담아 진심으로 만든 비누를 찾을 때, 누군가 자연과 동물을 해치지 않는 이상적인 비누를 찾을 때 - 그린 워싱하는 기업 말고, 비건이니 친환경이니 타이틀뿐인 제품 말고 - 그 이상을 충족시켜줄 비누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럴 때 내가 만든 팜프리 비건 비누가 옆을 지키길 바라며, 오늘도 비누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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