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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망트망 Dec 30. 2020

완벽한 내향형에게 '말하기'란

도저히 가벼워지지 않는 그대




무대체질?



한창 오디션 프로그램이 유행할 때 심심치 않게 보이던 장면이 있다. 무대에 올라가기 전 잔뜩 긴장해서 얼어있던 참가자가 무대에만 올라가면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공연을 펼치는 모습이다. 남들 앞에서 노래 부르는 걸 싫어해서 노래방도 별로 안 좋아하는 나에게는 그것처럼 신기한 장면도 없었다. 



사실 나는 '무대체질'이란 단어에 전혀 공감하지 못한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나서는 것 자체를 싫어하기 때문에 무대에 올라가면 활기가 돈다는 그들의 마음이 어떤 상태인지 감히 짐작도 못하겠다.






완벽한 내향형



완벽하다는 표현은 거의 사용하지 않지만, 여기에서는 완벽하다는 표현을 써도 될 정도로 나는 완벽한 내향형이다. 사람을 만나는 데에도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래서 내 휴식의 범주에는 친구를 만나는 것이 포함되지 않는다. (사실 친구라고 부르는 사람도 굉장히 소수다.) 친구와 만나기 위해 밖에 나가고, 만나서 무언가를 하는 행위 자체가 '휴식'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사람이 많은 곳도 싫어한다. 아무리 좋아하는 장소도 사람이 많으면 피하고 싶을 정도이다. 그 예로, 주말의 놀이공원은 기피하는 장소 1위다. 반대로 한산한 놀이공원만큼 가고 싶은 곳도 없다. 



이런 나에게 몇 년째 이어지는 고민이 있는데, 바로 '사람들 앞에서 말하기'다. 그렇다고 말하는 것 자체를 싫어하는 건 아니다. 고민이 있어 끙끙댈 때 제일 하고 싶은 것은 친한 친구에게 말하는 것이다. 내 마음을 다 보여도 될 상대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고민의 원인은 변함이 없을지라도 마음만큼은 몽글몽글해져서 새로운 무언가를 받아들일 여유가 생기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친구와의 '대화'가 아니라 불특정 다수 앞에서 '말하기'는 또 다른 문제이다.

 





말의 위력



한때 다양한 워크숍에 참가하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는 '나'에게 집중하던 시기여서, 다양한 활동을 통해 내면을 바라보는 워크숍에도 참가했었다. 나에 대해 들여다보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는 취지의 워크숍이었기 때문에, 참가자도 진행자도 서로가 서로를 '판단하지 않는 것'이 중요한 규칙 중 하나였다.



그런데 워크숍이 진행될수록 나를 포함한 누군가를 판단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깨닫게 되었다. 매 순간순간 입 밖으로 나오는 말 중에 나의 판단이 들어가지 않은 것을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그런 것들을 깨달을수록 말을 하기 전 한번 더 생각해보게 되고 더 조심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 깨달은 것 중에 꽤 충격적인 것이 있었는데, '말'이라는 것이 너무나 쉽게 왜곡된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가'라는 뜻으로 한 말을 상대방은 '갸'로 받아들이거나 '겨'로 받아들이는 상황을 종종 겪었다. 심지어 '냐'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었다. 이 상황을 반대로 적용해보면, 내가 상대방의 말을 '다'로 받아들였다고 해도, 그가 정말 그 뜻으로 한 말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미였다. 



그때 비로소 말이 지닌 위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말을 듣는다'는 것, '말을 한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고, 특히나 내가 능동적으로 하는 행위인 말하기는 더욱 조심스러운 자세로 대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벽한 내향형의 사람이 말의 위력을 실감해버렸으니 말을 많이 하는 직업은 피하고 싶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나는 말을 주축으로 하는 일을 하고 있다. 공방에서 다양한 클래스를 진행하고, 외부출강 제의가 들어오면 불특정 다수 앞에서 강연도 한다.



자연, 동물과의 공존을 고민하며 오픈한 클래스는 종류도 늘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진행 횟수도 점점 쌓이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말하는 것은 어렵게 느껴진다. '나의 말하기'를 중심으로 하는 활동이기에 늘 조심스럽다. 강연이나 클래스를 할 때면 늘 PPT를 준비하는 편인데, 혹여 내 말이 온전히 전달되지 않더라도 시각적 자료로 보완하고 싶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요즘은 클래스를 통해 진심이 전해지는 경험을 하고 있다. 많이 고민하고 조심스럽게 다가갔는데, 그 진심이 잘 전달됐다는 말을 수강생에게 들을 때면 그렇게 감격스러울 수가 없다. '사람들 앞에서 말하기'는 아직도 나에게 무거운 고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갈 이유를 사람에게서 찾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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