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모르게 포기해 버린 것
처음부터 남들과 다른 삶을 살고 싶었던 건 아니다. 다만 취업했던 곳에서는 숨 쉬는 것조차 쉽지 않았기 때문에 벗어났을 뿐이다. 그런데 평범한 삶, 남들 같은 삶의 폭이 그리 넓지 않았는지 거기서 벗어나자마자 나는 '이탈자'가 되어있었다.
남들과 다른 길을 택하면서 '안정'과는 점점 멀어졌다. 돈도 시간도 그야말로 들쭉날쭉했다. 남들은 월급의 몇 퍼센트를 적금으로 넣을지 고민할 때, 나는 다음 달에 얼마를 벌 수 있을지 가늠하기도 어려웠다. 남들은 일 년 전부터 휴가 계획을 세울 때, 나는 당장 다음 주 언제 쉴 수 있을지도 몰랐다.
코로나가 터지면서 불안정은 극에 달했다. 지금은 일을 하고 있어도 다음 달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 반복됐다. 매일 확진자 수를 확인하며 절망과 희망을 오고 가길 수십 번, 근 일 년을 그렇게 지내고 나니 지치는 것도 질려버렸다.
남들 같은 삶에서 벗어나려고 할 때 주변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있다. "나가서 뭐 해 먹고 살 건데. 그래도 여기에 있으면 월급 꼬박꼬박 나오잖아." 그들은 안정적인 삶을 내세우며 나를 어르고 달랬다.
그런데, 정말 남들과 다른 선택을 하면 안정과도 멀어져야 할까?
나도 모르게 그렇게 단정 지었던 것 같다. 남들과 다른 삶을 택했으니 '안정'은 포기해야 한다고. 안정적인 삶은 이제 내 이야기가 아니라고. 그리고 실제로 그 생각을 뒷받침할만한 일이 벌어질 때마다 그 생각에 확신을 더하곤 했다. '이것 봐. 안정적일 수가 없다니까.'
사회는 안정을 미끼로 '이탈자'를 막는다. 나는 미끼를 물진 않았으나 그들의 사고방식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이탈자가 되었으니 안정은 포기한 것이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택한 그 단념이 점점 더 불안정한 삶으로 몰고 간 건 아닌지 되짚어본다.
엄밀히 말하면 내가 원한 건 불안정한 삶이 아니다. 숨 쉬는 것조차 힘들어서 벗어났고 그곳에서 멀어지고 나니 내 이야기를 하고 싶어 졌을 뿐이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안정적인 환경에서 내 목소리를 마음껏 내는 것이다. (그리고 안정적인 환경이어야 그 목소리를 더 잘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가 "그래서 현실적으로 어떻게 안정적으로 살 건데?"라고 묻는다면 아직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내 마음가짐부터 바꿔보려고 한다. '안정'은 내가 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부터 버리려고 한다. 그래서 남들과 다른 삶을 살아도 안정적으로 살 수 있다는 것을, 그 누구도 아닌 나에게 보여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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