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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망트망 Jan 05. 2021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고 했다

<데미안> 헤르만 헤세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고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데미안> 헤르만 헤세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이 뭔지도 모르던 시절이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이 가장 편했다. 고민할 필요도 없었고 사회가 요구하는 대로 살아가면 주변 사람들의 인정과 실질적인 보상이 돌아왔다.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느낀 순간, 편한 시절은 끝이 났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던 것들이 하나도 자연스러워 보이지가 않았다. 남들은 그냥 넘어가는 문제를 나는 넘어갈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난 타인들에게 까탈스럽고 예민하고 유난스러운 사람이 되어갔고, 내 안에는 해결되지 않은 무엇이 가득 차기 시작했다.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의 실체를 마주한 순간, 이제 됐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남들과 다른 길을 선택했다는 이유로 나는 그들에게 왜 이 길을 걸어야 하는지 끊임없이 설명해야 했다. 공격 아닌 공격을 막아내기 위해 논리적으로 무장해야 했다. 이 길이 나의 길이라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렸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압락사스.

<데미안> 헤르만 헤세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을 살아낸다는 것은, 내적으로도 외적으로도 결코 쉬운 길이 아니다. 하지만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이 무엇인지, 나는 어떤 길을 걸어야 하는지 그 고민들을 외면한다면 언젠가 똑같은 고민이 또 찾아올 것이다. 그때는 '그것'을 살아내기가 더 어려울지도 모른다. 



지금 고민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나중에 더 많은 고민을 하게 된다. 알은 더 단단해지고 그것을 깨뜨리기는 더 어려워진다.




나를 보고 누군가는 묻는다. 알을 깨뜨리지 않고 그 안에서 살면 되지 않냐고, 왜 그렇게 피곤하게 사냐고. 하지만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을 살아내는 것, 그것을 위해 알을 깨뜨리는 것이야 말로 나를 살게 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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