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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망트망 Oct 04. 2022

내가 선택한 사과가 정답이 아닐지라도

갇히지 않고, 멈추지도 않고, 계속 나아가는 삶




얼마 전 지인의 블로그에서 리뷰를 보고 흥미가 생겨 읽기 시작한 책이 있다. 비거니즘이나 동물권에 관련된 책은 아니었는데, 그래서 더 새로운 시각을 엿볼 수 있었다. 이야기는 저자가 미국의 한 시골마을에서 ‘친환경’ ‘유기농’ 농사에 도전하면서 시작된다.






친환경적인 농사는 없다. 농사는 원래 환경 파괴를 기본으로 한다. 자연 상태라면 함께 존재해야 할 다양한 생물 개체들을 인간이 먹고 싶은 몇 가지로 줄이는 행위는 이미 부자연스럽다. 이런 깨달음을 얻게 된 건, 사슴과 토끼와 두더지와 민달팽이 덕분이었다. 무엇을 심어도 재빠르게 초토화시키는 녀석들이었다. 나눠 먹을 수 있을 만큼 많이 심어도 소용없었다. 귀신같이 새순만 뜯어먹었기 때문에 어떤 작물도 충분히 자랄 기회를 얻지 못했다.

(중략)

이 동물들에 대한 증오심은 세상에 태어나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무시무시한 감정이었다. (…) 사실 이 동물들이 파헤친 작물을 돈으로 따지면 소소했다. 그런데도 이 동물들을 당장 죽여버리고 싶었다. (…) 굳이 농사를 짓고 싶다면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예를 들어 과일나무에 하나씩 망을 둘러주는 것이다. 하지만 그쯤 되면 나무를 아낀다는 마음보다는 내가 먹을 것을 지키기 위해 투쟁하는 마음과 나를 이렇게까지 귀찮게 하는 사슴을 격렬하게 미워하는 마음이 훨씬 커져 버린다.


숲 속의 자본주의자, 박혜윤, p.25-26




내 생활에 들어오기 전 사슴은 동화책이나 TV에서 접했던 모습처럼 마냥 귀엽고 사랑스러운 존재일 것이다. 그랬던 사슴이 '내 작물'의 새순을 뜯어먹는 순간 사랑스러움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저자가 “태어나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무시무시한 증오심”이라고 표현할 정도이니, 짐작하기도 무서울 정도이다.



나와 직접적으로 얽혀있지 않은 곳에서는 ‘공존’을 외치기 쉽다. 하지만 내 생활에 얽혀 들어오기 시작하는 순간, 그 동물과의 공존을 논하는 건 한층 더 어려운 문제가 된다. 소나 돼지, 닭 같은 농장동물에 대해 말했을 때 공감받기 어렵고, 심지어 공분을 사는 경우가 많은 것도 ‘나와 직접적으로 얽혀있는’ 식생활을 건드려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사슴을 증오하며 농사를 짓는 대신 사슴처럼 살기로 했다. (…) 팔 만한 것을 경작하는 대신, 준 야생 상태의 텃밭을 꾸리고 채집을 하면서 먹고살아 보기로 한 것이다.

준 야생 상태의 텃밭이란 이런 것이다. 텃밭에 씨앗이나 모종을 심을 때가 되면 부지런히 심는데, 그 후 가뭄이 들든 벌레를 먹든 철저히 내버려 두고 나중에 먹을 수 있는 것만 골라 먹는다. 그래서 인근의 야생 동물이 건들지 않는 깻잎이나 허브류, 호박류, 방울토마토 등을 많이 심는다.


숲 속의 자본주의자, 박혜윤, p.26-27




비인간 동물과의 관계를 고민하기 시작한 이래로 공존, 동물권, 비거니즘은 내가 나아가야 할 지향점이었고, 지금도 지향하고 있다. 그런데 난생처음 느껴본 증오심이 싫어 ‘친환경 농사’를 포기하면서까지 사슴과의 공존 방식을 찾아낸 저자를 보며 생각이 많아졌다. 동물을 먹지 않기 위해 내가 선택한 과일 혹은 채소가 ‘정답’이 될 수 있을까?



어떤 것을 추구하며 나아가는 것과 그것 안에 갇히는 것은 또 다른 얘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요즘 경각심을 갖고 유의하는 점이 있다면, 스스로 박스 안에 갇혀 버리지 않는 것이다.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갇히게 되면 그때부터는 고민을 멈추게 된다. ‘정답’이니까.



하지만 ‘정답’인 삶은 없다. 그래서 삶과 관련된 거의 모든 문제들에서는 정답을 찾기가 어렵다. 지금 내가 추구하는 무언가도 딱 떨어지는 정답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모든 문제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얽혀있어서 여기서 봤을 때는 정답처럼 보이는 것도 다른 곳에서 바라보면 정답과 거리가 멀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멈추지는 말자고 다짐한다. ‘어차피 아무 소용없다’는 허무주의에는 빠지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나 혼자 움직인다고 해서 세상이 바뀔 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나조차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거라는 건 확신할 수 있다.



정답은 아닐 수 있지만 지금 내가 생각하는 최선을 추구하며 계속 나아가는 것, 그것은 놓지 않으려고 한다.






10월 2일, 세계 농장동물의 날

10월 4일 세계 동물의 날



10월은 각자가 생각하는 최선을 위해 움직이는 달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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