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신한은행 취업 후기
어느덧 스타벅스 바리스타로 취직한 지 6개월이 흘렀고, 바리스타 직무에 꽤 익숙해져서 이제 모든 포지션을 다 소화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 바리스타들은 근무하면서 3가지 포지션(캐셔, 바, 고객지원)을 돌아가면서 맡게 된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세 포지션이 모두 익숙해지는데 평균 3개월에서 6개월 정도 걸린다고 한다. 내 경우에는 3개월 차부터 모든 포지션에 배치되기 시작하여 6개월 차가 되었을 때 대부분의 일을 마스터할 수 있었다. 이때가 2019년 2월 즈음이었고 당시 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제 본격적인 직장 생활을 해보고 싶다.
사실 스타벅스도 나에게는 단순한 알바가 아니라 엄연한 직장이다. 이 생각은 한국으로 귀국한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다만 스타벅스 바리스타로만 지내기보다는 기업체 내에 취직을 해서 좀 더 커리어를 발전시키고 싶었던 마음이 컸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계획이 세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스타벅스 내에서 슈퍼바이저가 되어서 관리자 직무로 발전하는 것,
두 번째는 토론토 내 한국 브랜드 기업에 취직하는 것,
그리고 세 번째는 캐나다 로컬 기업에서 인턴을 하는 것.
이렇게 세 가지 계획을 세워놓고 저 중 하나는 반드시 이뤄내 보기로 결심했다. 물론 지금 몸 담고 있는 스타벅스 일에도 충실하면서 말이다. 그러던 중 정말 뜻밖의 기회가 찾아오게 되었다.
가게에서 이른 새벽부터 저녁 늦은 마감 때까지 모든 시간대에 일을 하면서 아침 단골손님과 저녁 단골손님까지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었다. 그중에서 유독 특별한 사람이 한 명 있었는데, 그 사람의 이름은 'Mary'였다. 그 사람이 특별했던 이유는 바로 아침, 낮, 저녁 시간대에 모두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가게가 비즈니스 빌딩 안에 있었기 때문에 직장인들은 주로 아침이나 낮에 자주 오고, 밤에는 근처 주민들이 단골손님들이었는데, Mary라는 사람만 항상 아침이건 낮이건 저녁이건 항상 스타벅스로 찾아왔다. 그리고 음료도 특이했었다. 녹차라테를 베이스로 자기만의 레시피로 만든 커스텀 라테였는데 조금 복잡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래서 이름과 얼굴을 외우기도 수월했다.
캐나다 스타벅스는 바리스타들에게 손님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는 것을 권장한다. 단순히 업무용 대화뿐만 아니라 정말 이웃처럼 일상 대화를 나누기를 권장하는데 이것을 커넥션(Connection)이라고 한다. 이것은 제3의 공간이라는 스타벅스의 미션을 달성하기 위한 캐나다 스타벅스의 전략 중 하나이다. 그 시점에 나는 나름 익숙해졌고 자주 보는 사람이니 한 번 말을 걸어보고 친해지자는 생각으로 커넥션을 시도했다.
안녕, Mary! 오늘 기분 어때? 난 Jay라고 해!
그리고 돌아온 반응은 너무 호의적이었다. 서로 간단하게 재밌는 대화를 나눴고 통성명을 하게 되었다. 그 이후로도 자주 가게에서 손님으로 만나 대화를 나눴고, 음료뿐만 아니라 다른 서비스도 도맡아서 적극적으로 서포트해줬다. 어느새 난 그 사람의 전담 바리스타 같은 사람이 되어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들과 저녁을 먹고 우리 가게에서 잠시 앉아서 수다를 떨고 있었다. 잠시 바람을 쐬러 밖에 나갔다 오면서 여느 때와 다름없이 Mary와 마주쳤다. 이제는 거의 일상이라 그리 놀랍지도 않았었다. 근무가 없을 때 만나는 거라 마음도 더 편했었고, 대화 분위기도 이전보다는 훨씬 여유 있었다. 자연스레 토론토에서의 내 생활에 대한 얘기가 나왔고, 나는 당당하게 나의 커리어 발전 계획에 대해서 얘기했다. 그리고 정말 반신반의하면서 질문을 하나 했는데, 이게 토론토에서의 내 미래를 크게 바꿔놓았다.
네가 일하는 그 회사 혹시 인턴 뽑아?
솔직히 엄청나게 큰 기대는 하지 않았었다. 알아봐 준다거나 아니면 취업 조언을 해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일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 순간부터 Mary는 나의 전공과 경력, 그리고 스타벅스에서의 활동 경험에 대해서 자세하게 묻기 시작했다.
마치 인사담당자처럼.
그렇게 나에 대해 짤막하게 자기소개한 후 Mary가 말해준 자신의 직장은 바로 '캐나다 신한은행'이었다. 그것도 본인이 바로 인사부의 부장이었던 것이다! 세상에 이런 황금 같은 타이밍이 또 있을 수가 있을까?!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온 몸에 소름이 돋는다. 그리고 Mary는 마침 한 지점에서 Customer Service Representative(CSR), 의역하면 지점 행원 채용 공고가 올라와있는데 지원해보겠냐고 물어봤고, 나는 당연히 YES라고 대답했다. 그야말로 하늘이 준 기회를 걷어찰 수가 없었다. Mary는 자기 이메일로 레쥬메와 커버레터를 보내라며 명함을 주었고, 며칠 채 걸리지 않아 나는 바로 이메일로 영어 레쥬메를 보내줬다.
이메일을 보내고 나서 한동안 아무 연락이 오지 않았다. 이메일에 오타는 없었는지, 제대로 된 주소가 맞았는지 몇 번을 확인했지만 아무런 이상도 없었다. 원래 캐나다 채용 시스템이 레쥬메를 보내고도 한 달은 기다려야 한다고 했었다. 그래서 별다른 연락 없이 한 달은 기다려보기로 했다. 2019년 3월, 한 달이 다 되어갈 무렵 Mary에게서 이메일로 회신이 왔다. 회사 내에서 해결해야 할 일들이 있어서 먼저 처리하고 있었고, 이제 채용 프로세스를 시작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채용 프로세스는 상당히 체계적이었다. 총 3번의 면접을 거치게 되는데, 첫 번째는 인사부 전화 면접, 두 번째는 인사부 대면 면접, 세 번째는 지점장 대면 면접이었다. 다행히 인적성 시험 전형 같은 절차는 없어서 따로 공부를 더 해야 할 필요는 없었다. 인사부와의 면접에서는 주로 고객 서비스 관련 역량과 레쥬메 내용에 관해 많이 물어봤었다. 은행 지점 직원도 엄밀히 말하면 고객 서비스니 내가 그 직무에 얼마만큼의 역량을 가지고 있나 확인해보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 그리고 내가 같은 건물에서 일하면서 한 번씩 다 봤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인사부 사람들도 나를 엄청 반가워했었고 덕분에 면접 분위기도 밝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갔다. 그렇다고 면접 준비를 절대 대충 하진 않았고 예상 질문과 모의 면접 등을 통해 철저히 준비했다.
마지막 지점장 대면 면접은 거의 인성 면접이었다. 기술적인 질문보다는 그동안 지내왔던 생활이나 경험에 관해서 대화하듯이 물어봤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나는 새로운 커리어 발전에 기대된 상태였기 때문에 에너지도 넘쳤고 매우 상기된 상태였다. 아마 그 기운 덕분인지 지점 사람들도 나를 다 좋게 봐줬던 것 같다. 마지막 지점장 대면 면접 후 약 2,3일 후에 인사부에서 연락이 왔다.
축하합니다! 캐나다 신한은행 직원으로 채용되셨습니다.
목표를 이뤄냈다는 생각에 날아갈 듯이 기뻤다. 스타벅스 출근하기 10분 전이었는데 그 전화를 받고 너무 신나서 그 날 근무도 전에 없이 잘됐던 것도 기억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제 진짜 직장인으로서 성장하게 됐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만족스러웠다. 몇몇 주요 서류 제출 요청을 받았고 첫 출근 날짜는 4월 말로 잡혔다.
그렇게 나는 은행원이 되었다.
그리고 스타벅스와의 첫 번째 이별을 준비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