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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다희 Dec 08. 2020

캐나다의 겨울, 영하 40도의 참맛을 알게 되었다.

그 해 겨울은 무시무시했다네

한국의 겨울은 보통 11월 중순부터 시작해서 봄이 오는 3월에 끝난다. 가끔 꽃샘추위까지 합쳐진다 해도 4월 초쯤에는 끝나고 봄이 찾아오는데, 캐나다의 겨울은 한국에 비해 겨울의 기간이 매우 매우 길다. 반면에 캐나다의 겨울은 그 기간이 한국보다 훨씬 더 길다. 캐나다 겨울 시즌은 보통 10월 말부터 피부에 와 닿기 시작한다. 가을이 보통 9월 초부터 시작하는데 이때부터 기온이 확 변하더니 갑자기 10월 말부터 기온 자체가 달라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11월에 첫눈이 오기 시작한다.


그렇게 연말이 지나 3월이 되면 절기상 봄이 찾아오긴 하지만 체감은 여전히 겨울이다. 4월이 돼도 마찬가지인데 4월에도 눈이 오는 걸 본 적이 있다! 그렇게 5월 초가 되어서야 겨우 봄이 왔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다. 그래서 캐나다의 겨울은 무려 8개월이나 된다는 웃지 못할 농담도 종종 들려온다. 사니아에 살았을 때도 겨울이 참 길었었다. 11월에 눈이 오고 소복이 눈이 쌓이고, 그리고 4월까지 눈이 오고 말이다. 사니아에서 나름 캐나다 겨울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고, 토론토로 이사 갈 준비를 하던 때에 주변 사람들이 모두 한결같이 이렇게 말해줬다.



토론토의 겨울은 여기보다 더 추울걸!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말했으니 많이 추울 것이라 예상은 했다. 하지만 그래도 '추우면 얼마나 더 춥겠어?' 하는 생각도 있었다. 그렇게 토론토로 이사를 오고 첫겨울을 맞이했던 때,



내 인생에서 가장 추운 겨울을 맛보게 되었다.






"크리스마스인데 별로 안 추운데?"


11월이 되기 무섭게 날씨가 확실히 겨울 기온으로 바뀌었다. 옷도 반팔에서 긴 팔, 그리고 바로 코트를 입어야 할 정도로 체감상으로도 추위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12월 말이 되어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데 목도리까지 할 정도로 춥지는 않았다. 심지어 크리스마스이브와 크리스마스 당일에 걸쳐서 보슬비가 내렸는데, 이 때는 체감 날씨도 가을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물론 그전에 눈이 한 번 오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겨울이 따뜻할 수 있는 건지 의문이 들었었다. 최근에 지구 온난화 때문에 캐나다 겨울이 가끔 따뜻해지는 경우도 있다는 말도 들었었는데, 이 현상도 지구 온난화 때문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생각보다 별로 안 춥겠는데?


이런 생각을 하면서 겨울을 여유롭게 보낼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새해가 오고 1월로 넘어가면서 저 생각이 얼마나 아둔한 생각이었는지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게 바로 토론토의 겨울이구나..."


1월이 넘어오기 무섭게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기 시작했고 나는 그제야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됐다는 걸 알게 되었다. 특히 이때부터 눈이 많이 오기 시작했는데 소복하게 쌓일 때도 있고 폭설이 올 때도 있었다. 이 폭설이 참 골 때리는 문제들을 많이 일으키는데 출퇴근길을 눈밭으로 만드는 것은 둘째 치고, 종종 인터넷과 와이파이를 먹통으로 만들기도 했었다. 첨언하자면 캐나다의 인터넷 서비스는 한국보다 질이 낮기 때문에 가끔 이유 없이 먹통이 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이렇게 폭설이 쏟아지는 날에는 거의 한 두 번은 인터넷이 끊긴다고 각오하기도 한다. 그러면 나는 어쩔 수 없이 핸드폰 데이터를 써야 하는데 이게 4GB 요금제라서 유튜브나 페이스북 같이 데이터를 많이 쓰는 앱은 쓸 수도 없었다.



하지만 제일 혹독했던 것은 역시 출근길이었다.


폭설이 온 다음날 아침 출근길

캐나다 스타벅스에서 일할 때 폭설이 온 다음 날 아침에 출근하는 날이 많았다. 내가 일하던 가게는 오픈 시간이 5시 반이었는데, 아침 근무를 가게 된다면 5시나 7시 즈음에 스케줄이 잡힐 때가 있었다. 평일에는 폭설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었다. 토론토 지하철과 가까워서 지하철을 이용하면서 폭설이라도 상당히 편하게 출근할 수 있었다.



문제는 주말에 아침 근무가 잡혔을 때였다.


어느 날 처음으로 폭설이 온 일요일 아침 7시에 근무가 배정되어서 지하철을 타러 핀치역으로 걸어갔었다. 이때 나는 핸드폰으로 운영 시간을 검색도 안 해보고 당연히 지하철이 열려있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하철 역 문이 닫혀있었다.


너무나도 당황한 나머지 문 앞에서 잠시 동안 멍 때렸던 게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알고 보니 주말에는 8시쯤 되어서야 운영을 시작한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출근시간 전에 도착을 해야 했기에 일단 급한 대로 걸어가기로 결정했다. 마음이 조급해져서 뛰어가고 싶었지만 바닥이 온통 눈길이라 뛰어갈 수는 없었고, 펭귄 걸음으로 최대한 빠른 속도를 내서 걸어가고 있었다. 그나마도 중간에 한 번 얼음 때문에 미끄러져서 넘어질 뻔했다. 하지만 차도 위의 눈들은 눈이 온 지 채 몇 시간도 안됐는데 꽤 제설이 되어있었다. 캐나다 사람들이 다른 건 느릴지 몰라도 제설 작업 하나만은 확실히 빠른 것 같았다. 이렇게 30분을 펭귄 걸음으로 겨우겨우 제시간에 맞춰서 출근을 했는데 그 날 하루 운동은 다 끝낸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체감 영하 40도라고???"


1월 말에 겨울 폭풍(Winter Storm)이 들이닥칠 것이라는 뉴스 기사가 떴었다. 겨울 폭풍이 도대체 무엇인지 감이 안 잡혔는데 기사 내에 당일 체감 기온이 영하 40도까지 떨어질 수도 있다는 문구를 보고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 한국에서 영하 10도라면서 매서운 겨울 추위라 했던 것은 캐나다 겨울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가게 밖에서 본 겨울 폭풍


겨울 폭풍이 온 그날도 난 어김없이 출근을 했다. 다행히 그 날은 오후 근무여서 지옥이 될 뻔한 아침 출근길은 피할 수 있었다. 나름 겨울 폭풍을 대비해서 만반의 준비를 해서, 그야말로 완전 무장을 해서 밖을 나왔는데 당시 내가 입었던 겨울 옷들은 이렇다.




내복 상, 하의

겨울 기모 바지

셔츠 & 두꺼운 니트 스웨터

극세사 목도리

오리털 파카 점퍼

두꺼운 겨울 장갑과 양말

겨울 귀마개 & 모자

고어텍스 방한 부츠




이 정도 되면 보통 사람들은 추운 게 아니라 더워서 땀날게 더 걱정이라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나에게 영하 40도의 겨울 폭풍은 이렇게 옷을 입고도 너무나도 추웠었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 살기 위한 전신 무장이었다. 이 날은 출근은 했지만 손님이 정말 없었던 하루였다. 다들 겨울 폭풍 때문에 커피 마시러 나올 엄두를 못 냈던 것이다. 눈도 문제였지만 폭풍에 우박까지 날아다녔으니 당연한 거겠지. 밖에서 제설반이 쉬지 않고 제설을 해도 눈은 금방 다시 쌓였고, 다른 날보다 바람이 너무 셌던지라 제설 자체도 쉬워 보이지가 않았다.


저녁 시간에도 계속된 겨울 폭풍


아침부터 시작됐던 겨울 폭풍은 저녁이 되어서도 멈추지 않았다. 저녁에는 폭풍을 뚫고 가려는 퇴근길 차들이 도로에 몰려서 정체가 나기 시작했다. 지하철 역시 겨울 폭풍을 피하기 위해 사람들이 몰린 탓에 평소보다 더 많은 승객들이 줄 서 있었다. 버스를 타고 출퇴근을 하는 사람들의 경우 밖에서 버티지 못하고 우리 가게 안에 들어와서 버스가 오기만을 기다렸는데, 이때 가게 문 앞쪽이 가득 찰 정도로 사람들이 넘쳐났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거의 재난 영화를 보는 것만 같았다.



근무가 끝나고 시간을 확인해보니 어느새 늦은 저녁이었다. 정말 다행히도 내가 퇴근할 때가 되니 겨울 폭풍이 점점 가라앉기 시작했다. 지하철에서 내려서 집으로 돌아오면서 눈이나 우박은 더 이상 쏟아지지는 않았다. 그래도 바람은 매우 세차게 불었다. 하지만 이 정도로 끝나는 게 정말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다. 이런 날 자동차나 버스로 출퇴근을 하면 눈과 우박 때문에 도로 위에 정체되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신세가 됐었을 것이다. 그나마 집이 지하철 역과 가까웠고 퇴근 시간에 맞춰서 겨울 폭풍이 잠잠해졌기에 무사히 퇴근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 날 이후로 더 이상 캐나다의 겨울을 얕보는 일도 즐기는 일도 없었다. 나에게는 너무나도 무시무시했던 겨울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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