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하는 자아와 기억하는 자아
2010년대 YOLO (You Only Live Once) 열풍이 불면서 '인생은 오직 한 번뿐'이라는 의미로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전전긍긍하기보단 현재의 삶에서 최대한 즐거움을 누리겠다는 풍조가 만연했던 시기가 있었다. 2022년 이후 전세계적인 물가 상승 이후 YOLO 열풍은 많이 사그라들긴 했지만 여전히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을 즐겨라"라는 말을 자주 듣곤 합니다. 소셜 미디어와 대중 문화는 '현재를 즐기는' 이미지를 끊임없이 강조하고, 즉각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이 마치 이상적인 삶인 것처럼 나타냅니다. 이러한 문화는 현재의 만족감을 극대화하려는 경향을 강화시키며, "지금 이 순간만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물론 '현재'에 대한 강조가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순간에 충실하고, 현재를 충분히 누리면서 우리의 삶을 보다 풍요롭게 만드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현재를 즐기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이 지속되면 오히려 장기적인 목표와 삶의 균형을 잃을 위험이 있습니다. 특히 지속적인 소비나 과한 일탈을 통한 순간적인 즐거움은 재정적인 측면이나 건강에 해로운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습니다. 따라서 지속적인 삶의 만족을 위해서는 그보다 더 넓은 시각이 필요합니다.
심리학자 필립 짐바르도는 균형 잡힌 '시간 관점'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삶의 만족은 현재의 즐거움과 미래를 위한 준비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데서 나옵니다. 지나치게 현재에만 집중하는 사람은 장기적인 성공과 성취감을 경험하지 못할 수 있고, 반대로 지나치게 미래에만 집착하면 현재의 소소한 행복을 놓치게 됩니다. 실제로 현재를 즐기는 데에만 몰두한 사람들이 아니라 과거, 현재, 미래를 균형 있게 바라보는 사람들이 더 높은 삶의 만족도를 보인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심리학자이자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대니얼 카너먼은 자아를 '경험하는 자아(experiencing self)'와 '기억하는 자아(remembering self)'로 나누어 설명했습니다. 경험하는 자아는 인생을 실시간으로 경험하는 자아로서 기쁜 일이나 쾌락을 즐기고 고통을 피하려 합니다. 반면 기억하는 자아는 지나간 경험을 회상하고 평가하는 자아입니다. 현재의 자아는 기쁘고 즐거운 경험을 하며 만족하지만, 기억하는 자아는 때론 과거의 고통스러웠던 경험을 돌이켜보며 인생에 있어 중요한 밑거름이었다는 평가를 내리며 만족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기억하는 자아는 힘들더라도 의식주의 해결을 위해 돈을 벌려고 애쓰며, 만족을 나중으로 미루는 것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경험하는 자아가 아무리 기쁜 경험을 얻더라도, 기억하는 자아가 그 기억을 좋은 경험으로 평가할 수 없다면 우리는 불만족합니다. 우리는 현재 뿐만 아니라 시간의 흐름 속에서 행복해야 하며, 그와 동시에 나중에 좋게 평가할 기억을 만들어 내야 합니다. 진정한 행복은 단순히 현재의 즐거움에서만 비롯되는 것이 아닙니다. 현재에 충실하되, 미래의 자신에게도 배려를 아끼지 않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오늘의 순간을 충분히 누리되, 내일을 위한 준비도 게을리하지 않을 때 궁극적으로 더 큰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